지난 4일 오전 11시 22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탄핵됐다. 광장에서 일터에서 수많은 국민들이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누군가는 환호했고 누군가는 탄식했다. 역사적인 순간.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대한민국 헌정사 두 번째 탄핵 대통령이 나왔다.
책 『나쁜 권력은 어떻게 무너지는가』는 탄핵의 성공 요건을 ‘당파적 갈등을 넘어서는 대중적 합의’로 본다. 과거 대통령들의 탄핵 심판 사례로 볼 때 '의회가 대중적 호응 없이 권한 행사 차원으로 탄핵을 밀어붙인 경우엔 실패했고, 대중적 요구를 수용해 반응 차원으로 탄핵에 나선 경우엔 성공했다.'
그의 파면을 지켜보던 독립서점들은 안도했다. 12·3 비상계엄 후 광장의 주축이 된 2030 여성들의 연대를 담은 에세이 『다시 만날 세계에서』에서 강유정 문학평론가는 ‘토요일 집회가 있을 때마다 독립서점들의 매출이 줄어든다는 서점 관계자의 푸념’을 언급한다. 책을 고르며 일상적인 주말을 보내던 이들이 그날 이후 응원봉을 들고 광장으로 나아가, 빛의 일부가 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자들이 토요일 집회에 나간다. 책을 읽는 문해력이 문화와 독재를 읽고, 자유를 갈망하는 집회가 문화와 연결되고 닿아 있는 것이다.
- 『다시 만날 세계에서』
그것은 아마 에릭 리우가 책 『민주주의의 정원』에서 말한 ‘올바른 종류의 전염성’일 것이다. ‘나 지금 광장’이라는 카톡 하나, 현장을 공유한 인스타그램 스토리 하나하나가 ‘다른 이들이 당신을 모방하도록 적극적으로 이끄는 행동’이 되었다. 책은 우리 사회와 민주주의의 번성에 필요한 건 ‘합리성’과 ‘보이지 않는 손’으로 대변되는 ‘기계형 지성’이 아닌 ‘정원형 지성’이라고 말한다. 사회를 다종다양한 구성원을 포함하는 생태계로 인식하며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 정원사의 역할은 정원을 방치하거나 ‘장미가 저절로 피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심을지 결정하고 제대로 된 씨앗을 심는 것.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구분해 내는 것. 정원이 잘 가꾸어지려면, 즉 사회가 건강하려면 ‘신뢰’를 기반으로 한 ‘시민의식의 습관과 문화’는 필수다.
그리고 우리 모두, 우리가 행동하는 대로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사고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 『민주주의의 정원』
202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런 애쓰모글루는 저서를 통해 ‘좁은 회랑’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좁은 회랑이란 ‘제대로 기능하는 국가기관들이 부재하는 체제’와 ‘그들이 사회를 지배하는 독재적인 체제’ 사이의 공간을 이른다. 그 안에서 사회와 국가는 균형을 이루고, 서로를 신뢰하고 협력할 수 있으나, ‘좁은’이라는 수식어를 통해 그러한 지평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님을 짐작하게 된다. ‘시민들이 부단히 경계하고 조직화하고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며 열심히 노력해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일. 회랑 안에 들어서고 거기에 영원히 머물기란 쉽지 않다. 민주주의의 눈부신 성취를 자랑스러워하되, 더욱 중요한 건 앞으로 좋은 선택을 해나가는 것이다.
역사는 예정된 것이 아니라 선택과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 『좁은 회랑』
[독서신문 이자연 기자]
Copyright ⓒ 독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