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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사상 두 번째 대통령 탄핵은 법치주의의 무게를 새삼 일깨우는 동시에 국가는 무엇을 지켜야 하며 헌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다시 꺼내 들게 했다.
정치권은 이미 개헌 논의에 착수했다. 하지만 정치권의 논의는 여전히 대통령 임기, 국회 권한 강화 등 권력구조 개편에 쏠려 있다. 물론 심리적 내전 수준의 분열과 갈등을 완화하고 시대변화를 반영한 헌정체제를 구축하려면 이러한 사항들도 중요하다. 그러나 정작 국민의 삶과 직결된 기본권 문제는 이번에도 주변부에 머물러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국가적 과제는 무엇일까. 필자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의 보장’이라고 생각한다. 안전의 영역을 재해·재난으로 좁혀보면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 오송 지하차도 침수, 이태원 참사, 영남권 대형 산불 등 대형 인재가 반복되고 있음에도 ‘국민의 생명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라는 헌법적 논의는 좀처럼 본격화하지 못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구조적 취약성을 보여주는 씁쓸한 단면이다.
여기서 우리는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 헌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바로잡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번 개헌은 생명과 안전을 중심에 둔 개헌이어야 한다.
현행 헌법에도 ‘안전’은 등장한다. 헌법 제34조 제6항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노력’이라는 표현은 국민의 권리와 국가의 법적 책임을 담보하지 못한다. 현장에서 생명을 잃는 일이 반복돼도 헌법상 권리 침해를 주장하기 어렵다. 사고 예방과 구조 책임의 상당 부분은 민간에 맡기면서 정작 국가는 구조적으로 책임지지 않는 방식으로 위험을 관리해 온 것이다.
이제는 이러한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국민안전기본권’을 헌법에 명시해야 한다. 국민안전기본권이란 모든 국민이 재해와 재난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을 헌법상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이를 실현할 실효적 책임을 지는 체계를 의미한다.
이는 선언이 아니라 실제 구제 가능한 권리로 작동해야 한다. 개헌 방향은 다음과 같이 설정할 수 있다.
첫째, 국민안전기본권의 명시; “모든 국민은 재해와 재난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
둘째, 국가의 실질적 책무 규정; “국가는 예방·대응·복구 등 전 과정에서 국민의 안전을 실효성 있게 보장하여야 한다.”
셋째, 권리구제 경로의 보장; 안전권 침해 시 헌법소원 등 법적 구제수단을 통해 실질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한다.
넷째, 취약계층에 대한 특별 보호; 아동, 고령자, 장애인, 저소득층 등에게 정보접근권, 대피권, 치료·돌봄권 등을 보장한다.
개헌 논의는 정책과 결합할 때 실효성을 갖는다. 이러한 취지에서 필자는 국민안전기본권 실현을 위한 다음과 같은 5대 정책 공약을 제안한다. 국민안전기본권의 헌법 명문화, 전국민 생애주기별 안전망 구축, 예방 중심의 일터 안전 대개혁, 기후변화·감염병·사회재난 대응체계 강화, 노동·안전 통합 거버넌스 구축(안전 국무회의 정례화 등).
대통령이 바뀌는 지금, 우리 국가와 헌법은 누구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가. 국민의 삶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을 때 그 생명을 책임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지 못한다면 그 어떤 권력 개편도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국민안전기본권 개헌은 단지 헌법 조항을 하나 더하는 일이 아니다. 국가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를 다시 정의하는 일이며 앞으로의 대한민국이 어떤 사회가 돼야 하는지를 선언하는 시작점이다. “모든 국민이 안전하고 존엄하게 일할 수 있는 나라.” 이제는 헌법이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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