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환기6] 근대문명은 '인식혁명' 현대문명은 '기술혁명'으로 사회변화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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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기6] 근대문명은 '인식혁명' 현대문명은 '기술혁명'으로 사회변화시켜

저스트 이코노믹스 2025-04-15 04:15: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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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 삽화=최로엡
패러디 삽화=최로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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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에서 가장 먼저 나누고 싶은 주제는 근대 문명을 촉발한 ‘인식혁명’이다. 인류의 역사를 바꿔온 두 축은 인식혁명과 기술발전이다. 근대문명은 인식혁명으로부터 시작됐고 현대문명은 기술발전이 사회변화를 촉진했다. 세계는 안팎의 변화로 인해 새로운 사회로 진입한다. ‘안’은 인식을 말하고 ‘밖’은 기술을 말하는데 방향을 달리하면서 변화를 일으킨다.

 처음 ‘근대의 하늘’을 발견한 서유럽의 인식혁명을 추적하고, 근대화를 이루기까지 거쳐 온 도약의 순간을 네 장면으로 재구성해 위기를 기회로 바꾼 변곡점에 주목했다. 인식혁명은 다음 4단계를 거쳐 사회를 변혁했다.

한 사회가 변화하려면 창조적 소수자가 시대를 관통하는 비전을 제시하고 그 비전을 구체적으로 조직화할 주체세력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주체세력, 즉 유능한 참모진이나 협력자들이 현실에 뿌리내리도록 부단히 노력하며 때로는 적극적으로 세를 형성해서 밀어붙여야 한다. 이러한 작은 노력 하나하나가 조금씩 모이기 시작해 작은 물꼬가 되고 이어 큰 물줄기가 된다. 그렇게 축적되어 임계질량에 도달하면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 중 가장 용기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창조적 소수자는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비전의 영역이다. 용기가 필요한 영역은 주체세력이다. 그들은 창조적 소수자의 생각을 과감히 받아들여 자신을 혁신하고 사회를 혁신하려고 노력한다. 개인이든 회사든 국가든 이런 사람들의 용기가 성패를 가른다. 서유럽 사회도 동양처럼 오랜 전통의 가치관과 인식에 매여 있는 사회였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루터 등 창조적 소수자들이 새로운 세상을 제시했고 이어 주체세력이 형성됐다. 책과 신문 등 공론장을 통해 새로운 지식이 확산하고 공유되면서 기존 지식은 새로운 지식의 도전을 받아 수정되거나 폐기됐다. 그렇게 종교와 정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되어 갔다. 인식혁명이라는 서유럽의 지적 엘리트 문화에서 일어난 변화가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면서 동서양의 대분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밖’에서 일어난 변화는 바로 디지털 기술과 로봇이 중심이다. 이들이 원동력이 된 초거대 인공지능은 이제는 인간의 창의적인 영역까지 침투하고 있다. 소설을 쓰거나 음악을 작곡하는 일은 이미 놀라운 일이 아니다. 챗GPT의 등장은 ‘뭔가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리는 격발장치였다. 인공지능 같은 고도화된 디지털 기술은 산업을 넘어 경제부터 정치와 안보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삶 자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기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동반한다. 인류는 다시 압도적인 변화의 물결 앞에 놓여 있다. 세계적인 석학들은 ‘인공지능 혁명은 증기와 철도로 대변되는 1차 산업혁명이 제기한 문제보다 훨씬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때일수록 역사로부터 통찰을 얻어야 한다. “첨단기술의 발전으로 0~20년 후도 예측하기 어려워지면서 어느 때보다 역사 탐구의 중요성이 커졌다.”라고 말한 유발 하라리의 통찰력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현실은 과거의 원인에 의해서 가장 온전하게 이해되듯이 미래 예측 또한 현재의 참모습을 직시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공지능 혁명이라는 두 번째 인식혁명을 어떻게 대응할지 잘 모른다. 그래서 역사라는 렌즈를 통해서 맥락부터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인류가 경험한 유일한 혁명인 근대 산업혁명을 통해 통찰력을 얻을 수밖에 없다. 근대는 산업혁명이라는 빅뱅의 출발점이고 엄청난 속도로 가속화되는 폭발적인 역사의 대전환점이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산업혁명의 역사와 그 특징을 새삼 거론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산업혁명이 태동하게 된 근원적인 뿌리인 인식혁명에 주목했다. 또한 근대의 인식혁명을 통해 역사의 무대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유대인의 인식혁명 역사를 특별히 분석했다.

사회 말단의 3등 시민으로 천대받던 가난한 유대인이 19세기에 유럽의 지식 사회에 갑자기 출현했다. 서유럽 사회의 정규교육에서도 배제됐고 몇 안 되는 허용된 직업만을 가질 수 있었던 그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라는 시대 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예비한 ‘창조적 소수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당시 18세기 중반의 유럽은 종교개혁 이래 끝없는 혼란과 개혁에 맞닥뜨렸던 격동의 시대였다. 이때 ‘유대교의 루터’라 불린 척추 장애를 갖고 태어난 철학자 모제스 멘델스존(모세 멘델스존으로 많이 알려짐)이 등장한다. 멘델스존은 계몽사상을 기반으로 유대교 전통의 개혁을 부르짖었다. 유대교 당국에는 보편성과 강압적인 권위의 폐지를 요구했고 유대인에게는 계몽주의를 받아들이도록 촉구했다. 더욱이 멘델스존은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유대화하여 다시 편성했다. 선조시대에 제정된 법률이라 해도 그것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시대에서조차 신이 내린 법률로 간주해서 붙들고 늘어져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멘델스존의 이러한 노력으로 유대인 사회가 각성하기 시작했다. 젊은 유대인들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 게토를 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유대교 계몽주의 운동인 하스칼라(Haskalah, ‘지성’이라는 뜻의 히브리어)를 전개했다. 학교 커리큘럼에 세속과목을 추가했고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이디시어 대신에 독일어를 사용했다. 일단 속박에서 벗어나자 유대인들은 학문, 문화, 산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시작했다. 최초의 현대 독일 유대인인 멘델스존은 하스칼라의 상징적 인물로 빛이 되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가 추구한 합리주의와 이성주의는 마르크스 같은 인물에게 유대교와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사상까지 열어주었다.

[대전환기7]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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