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천만 영화의 기준은 명확하다. 하지만 SNS의 '조회수'는 과연 진짜일까?"
한국 영화계에서 ‘천만 관객’은 흥행 성공의 대표적인 기준으로 통한다. 관객 1천만 명, 즉 국민의 약 20%가 본 영화라는 의미는 제작자에게는 트로피 같은 상징이자, 대중에게는 믿고 볼만한 콘텐츠임을 의미했다. 물론 이는 ‘티켓 판매 수’를 기준으로 집계되는 수치다. 따라서 한 사람이 같은 영화를 두 번 보아도 관객 수는 두 배로 올라간다. 하지만 여전히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영화를 봤는가’에 대한 비교적 명확한 척도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온라인 플랫폼의 콘텐츠 조회수는 다르다. 조회수는 과연 ‘실제 시청자’의 숫자일까? SNS에서 100만 조회수를 넘긴 영상은 흔히 ‘대박’으로 여겨지지만, 진짜로 100만 명이 콘텐츠를 본 걸까?
◇ 1초면 OK?…숏폼 콘텐츠의 ‘조회수 착시’
요즘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 등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숏폼 콘텐츠는 플랫폼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으로 ‘자동 재생’을 기반으로 한다. 사용자가 스크롤만 내려도 영상이 재생되며, 이 순간 ‘조회수 1회’로 잡힌다.
실제로 플랫폼별 조회수 집계 기준을 살펴보면 놀라운 점이 많다.
▲ 인스타그램·페이스북·틱톡·유튜브(2025년 3월 31일 기준): 영상이 자동 재생되기 시작하면 즉시 1회로 집계
▲ X(전 트위터): 영상이 2초 이상 재생되고 화면의 절반 이상이 노출될 때 조회로 인정
▲ 인스타그램 롱폼: 3초 이상 재생
▲ 유튜브 롱폼: 30초 이상 재생
▲ 넷플릭스: 2분 이상 재생
이처럼 짧은 순간에도 ‘조회’로 간주되는 구조 때문에, 실제로 콘텐츠를 ‘보았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에도 수치는 치솟는다. 스쳐 지나간 영상도, 멈추지 않고 넘긴 영상도 조회수에는 포함된다. 한마디로, 플랫폼의 설계에 따라 조회수는 ‘만들어질 수 있는 수치’라는 뜻이다.
◇ 플랫폼은 왜 이런 조회수 기준을 고수할까?
답은 간단하다. 조회수는 플랫폼의 성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조회수가 높아지면 ‘이 플랫폼에서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착시를 유도할 수 있다. 크리에이터는 조회수를 보고 더 많은 콘텐츠를 올리게 되고, 그로 인해 신규 이용자가 유입된다. 이용자가 많아지면 광고주도 자연히 따라온다. 이는 곧 플랫폼의 매출 상승으로 이어진다. 조회수, 크리에이터, 이용자, 광고주가 맞물린 거대한 수레바퀴가 돌아가는 구조다.
플랫폼은 자신들이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알고리즘으로 이 수레바퀴를 조정한다. 알고리즘에 선택받은 영상은 ‘조회수 폭발’이라는 보상을 받는다. 플랫폼이 원하는 콘텐츠만 떠오르게 되는 이 구조에서, 조회수는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은 결과’일 뿐, 콘텐츠의 질이나 대중성과는 무관할 수도 있다.
◇ 숫자에 속지 마세요…36억 조회의 정체
2023년 6월 7일, 틱톡에 올라온 한 10초짜리 영상은 36억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틱톡 역사상 최다 조회수다. 하지만 내용은 아무것도 없다. 검은 화면이 몇 초간 이어질 뿐이다. 이 영상은 화제성만으로 조회수가 쌓였고, “이게 왜 이렇게 많이 조회됐지?”라는 궁금증 때문에 또 다른 사용자가 들어와 본다. ‘재미있는 콘텐츠라서’가 아닌, 단순히 높은 조회수 때문에 클릭되는 역설적인 현상이다.
숫자 자체가 콘텐츠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이 구조는, 마치 실체 없는 ‘속 빈 강정’을 보는 듯하다. 조회수는 이제 콘텐츠의 ‘품질’이 아닌 ‘선택받은 흔적’이자 ‘궁금증 유발 요소’로 기능하고 있다.
◇ 정부 예산도 ‘조회수’에 쏟아붓는다
실제 공공 부문에서도 이러한 조회수 중심 문화가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17개 광역지자체가 유튜브 콘텐츠 제작을 위해 지출한 광고비는 약 113억 원에 달한다. 이 중 약 78%가 ‘애드뷰(ad view)’로 확인됐다. 즉, 유료 광고 집행을 통해 얻은 조회수다.
조회수 자체가 목적이 되면서, 홍보 영상은 실제 시청자의 관심보다는 ‘숫자 채우기’에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예산 집행의 투명성 논란은 물론이고, 시민과 진정한 소통이라는 본래 목적도 훼손된다.
흥미로운 건, 지자체 유튜브 채널 가운데 ‘성공 사례’로 꼽히는 충주시의 ‘충TV’는 광고 집행 없이도 인기를 끌었다. 콘텐츠 자체의 기획력과 유머 코드, 시민과의 소통 전략으로 ‘팬덤’을 만든 것이다. 진짜 성과란 이런 게 아닐까?
◇ KPI는 ‘구독자’와 ‘조회수’? 업계의 숨겨진 진실
유튜브 채널 운영을 대행하는 마케팅 업체들 사이에서는 KPI(핵심성과지표)로 구독자 수와 조회수를 제시하는 것이 관행이다. 그 때문에 외주 비용이 아닌 ‘조회수 구매’가 진짜 거래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구글에 단순히 “유튜브 조회수”만 검색해도, 조회수를 올려준다는 광고들이 줄을 잇는다. 돈을 내면 조회수를 보장받을 수 있는 시대, 조회수가 진정한 ‘성과’라고 말할 수 있을까?
뿐만 아니라, 댓글 조작, 봇 계정 활용, AI를 통한 허수 트래픽 등도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 이런 부정행위들은 플랫폼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나아가 광고 시장 전체의 신뢰성도 위협할 수 있다.
◇ 조회수, 콘텐츠의 진짜 얼굴을 가리다
기업과 광고주, 공공기관은 물론 크리에이터들조차 조회수에 매몰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눈에 보이는 수치’이기 때문이다. 이용자 역시 가장 쉽게 콘텐츠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 바로 조회수다. 그러나 조회수가 곧 ‘실제 소비’나 ‘영향력’을 보장하는 지표는 아니다.
페이스북은 이를 인지하고, ‘3초 시청’과 ‘1분 시청’이라는 복수의 지표를 제공한다. 유튜브도 수익 분배 기준으로는 ‘참여 기반 조회수’를 채택해, 실제 시청 의도가 있는 이용자만을 집계에 포함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플랫폼 내부 정책에 머무를 뿐, 전체 산업의 신뢰도 향상으로 이어지기엔 부족하다. 규제가 없다면, 조회수는 계속해서 허상을 부풀리는 도구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우리는 ‘숫자’에 의존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조회수, 좋아요, 구독자 수가 콘텐츠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런 단편적인 수치로는 콘텐츠의 진짜 가치를 가늠할 수 없다.
이제는 조회수 중심의 경쟁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콘텐츠가 사람들과 어떤 방식으로 소통했는지, 얼마나 진정성 있게 메시지를 전달했는지, 그리고 실제로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켰는지를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지속 가능한 온라인 생태계는 ‘조회수’를 넘어서는 시선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콘텐츠를 대하는 방식, 그리고 성과를 정의하는 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조회수의 착시’는 계속될 것이다.
그 숫자, 과연 진짜일까? 이제는 묻고 따져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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