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삼 포스코경영연구원 철강연구센터장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철강산업 지원 특별법 국회 입법 토론회’에서 “철강이 무너지면 모든 제조업 경쟁력이 약화하고 지역과 산업 붕괴가 걷잡을 수 없이 전개될 것”이라며 “국내 제조업체들이 수입산 철강재에 의존하게 되면 안정적 공급을 담보할 수 없어 생산 차질과 비용 부담 우려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철강업계는 경기 침체로 수요가 크게 위축된 상태다. 지난해 철강재 내수 물량은 4720만톤(t)으로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4920만t)보다 아래로 떨어지며 15년 내 최저치를 기록했다. 총생산량도 6590만t으로 10년 내 최저 수준이다. 국내 시황 부진을 수출에 의존한 탓에 수출 비중은 20201년 36.8%에서 지난해 43.1%로 상승했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산 철강에 세운 25%의 높은 관세 장벽은 국내 철강사들에 치명상을 입혔다. 트럼프는 미국 제조업 부흥을 위해 철강산업 부활에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철강을 단순 산업이 아닌 공급망과 직결하며 안보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박 센터장은 “트럼프가 세계 관세 전쟁 포문을 철강으로 연 것은 우연이 아니다”며 “미국과 유럽, 일본은 철강을 여러 제조업 중 하나로 치부하지 않고 모든 제조업의 근간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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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철강 부흥’ 총력전 펴는데…韓은 기간산업 소외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2001년 이후 산업 지원 정책을 반도체, 인공지능(AI)과 같은 첨단산업에 집중해온 탓에 철강과 같은 기초소재산업은 소외를 당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산업이 고도화할수록 고부가 철강재의 역할과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 센터장은 “철강은 방위산업, 전기차, 수소 인프라 등의 필수 소재로 고품질 철강재의 안정적 공급은 미래산업 성장의 근간이 될 것”이라며 “특히 미래에는 탄소 배출량을 줄인 저탄소 고기능 소재 수요가 늘텐데, 해외 철강업체와 함께 이런 기술을 개발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저탄소 공정 전환은 국내 철강업계가 마주한 가장 시급한 문제로 꼽힌다. 유럽연합(EU)은 철강을 산업 부흥의 열쇠로 보고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친환경 규제를 강화하며 역내 철강 산업 보호에 나서고 있다. 박 센터장은 “유럽은 ‘선진국이 (개발도상국)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규제를 통해 집요하게 철강산업을 지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도 ‘잃어버린 30년’을 되찾는다는 목표로 수소환원제철과 전기로 전환에 향후 10년간 3조엔을 지원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미국은 신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저지하며 자국 산업 보호에 나서고 있다. 트럼프는 “누구도 US스틸 지분의 과반수를 가질 수 없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우리나라 철강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 요구가 거세지는 이유다. 먼저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 지원책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단순 기술 개발뿐 아니라 새로운 생산체제가 시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전방위적인 인프라 구축도 필수다. 민동준 연세대 신소재공학과 명예교수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개발해도 에너지원인 수소가 비싸면 제품 가격이 오르게 되고 이를 소비자들에게 전가하기 어렵다”며 “시장 전 주기를 아우르는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수소환원제철, 시장 안착까지 ‘전주기’ 지원 필요
국내 대표 철강사인 포스코는 2050년 제철소 고로 설비를 수소환원제철로 전환한다는 목표다. 향후 25년간 긴 호흡이 필요한 만큼 정권 변화에 좌우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준호 고려대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수소환원제철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예타) 예산도 상당히 부족한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이마저 줄어들 수 있다”며 “특별법을 통해 지원이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밖에 전문가들은 △철스크랩(고철) 등 저탄소 원료의 안정적인 조달 방안 마련 △저탄소 철강 제품의 정부 조달 프로젝트 사용 시 인센티브 부여 △열연·후판 등 저가 수입재 대상 무역구제 조치 시행 △한국산 철강 수출 시 원산지 관리 강화 △고용 위기와 지역경제 위축 대응을 위한 세액공제·금융 지원 강화 △고부가 철강재 개발을 위한 철강업계 전문 인력 양성 지원 등을 특별법에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현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부총장은 “미중 무역전쟁 속 철강과 같은 후방산업 전략 자산을 쥐지 못하는 국가는 사라지게 될 것”이라며 “국가는 안보를 위해 우리의 100년 전략 자산인 반도체·AI와 철강·에너지 분야에 대한 특별법 제정 의무를 다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정부는 올해 1월 철강산업경쟁력강화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고 지원책 마련을 검토 중이며 오는 6월 중 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송영상 산업통상자원부 철강세라믹과 과장은 “현재 있는 법 테두리 내에서 지원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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