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주간으로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건넛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께 따 가주♬"
봄이 되면 자주 듣는 노래 중 하나인, 김동환 작사 김동진 작곡의 '봄이 오면'이다.
봄에는 개나리, 진달래, 목련, 벚꽃, 산수유 등 온갖 꽃이 피어난다. 언제부턴가 벚꽃이 봄의 대명사가 됐지만 이전에는 진달래가 봄의 대명사였다.
진달래는 '달래'에 접두사로 '진'(眞)이 붙은 말로 표준색깔의 진달래, 연한 색깔의 연(軟)달래 (개꽃으로도 불렸다), 아주 진한 난(蘭) 달래라고도 불렀다. 남부지방에서는 참꽃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가난하던 시절, 진달래가 필 즈음이면 대체로 먹을 양식이 떨어져 배고픔이 일상이었는데 굶주린 아이들은 진달래꽃을 따 먹으며 허기를 달랬기에 진짜 꽃이란 의미로 참꽃이라 부른 것이다.
또, 우리 옛 문헌에는 두견화(杜鵑花)로 기록돼 있다. 중국 전설에서 유래했는데 촉나라 망제(望帝) 두우는 자신이 위기에서 구해준 벌령이란 신하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국외로 추방당했다.
억울하고 원통함을 참을 수 없었던 그는 죽어서 두견이가 됐다. 두견이는 촉나라 땅을 돌아다니며 목구멍에서 피가 나도록 울어댔는데, 그 피가 떨어져 진달래꽃이 됐다는 전설이다.
두견이의 울음소리가 중국 사람들에게는 돌아감만 못하다는 뜻의 '부루구이'(不如歸)라고 들려서 이런 전설이 생겼다고 한다.
음력 3월이 되면 마을 부녀자들은 화전놀이를 나갔다. 산이나 냇가를 찾아가 진달래꽃으로 화전병(花煎餠)을 부쳐 먹으려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1849년 홍석모가 쓴 우리나라 세시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3월3일 편에 보면 화전이 나온다. 진달래꽃을 따서 찹쌀가루에 반죽해 둥근 전을 만들고 그것을 기름에 지진 것을 화전이라 한다고 쓰여 있다.
이런 진달래를 우리 조상들이 술의 재료로 사용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중 가장 유명한 술이 '면천두견주'다.
면천두견주는 충남 당진시 면천면에서 전승하고 있는 가양주다. 약주로 만들며 누룩, 찹쌀, 멥쌀, 진달래꽃으로 빚는다.
이 면천두견주에는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1천100여년 전 고려의 개국공신 복지겸 장군이 건강이 나빠져서 면천으로 와 휴양했다. 그래도 건강이 나아지지 않자 그의 딸 영랑이 최후수단으로 아미산에 올라 100일 기도를 드렸다.
마지막 날 꿈에 신선이 나타나 "아미산의 두견화와 찹쌀로 술을 빚되, 반드시 안샘의 물로 빚어 100일이 지난 다음 아버지께 마시게 하고, 뜰에 두 그루의 은행나무를 심어 정성을 들여야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말대로 술을 빚어 마시게 했더니 복지겸이 건강을 되찾았다고 한다.
그때 심은 은행나무 두 그루가 오늘날까지 면천초등학교 교정에 있으며 2016년 천연기념물 551호로 지정됐다. 안샘은 면천초등학교 뒤쪽의 영랑효공원 안에 있다. 그리고 복지겸 장군의 사당과 무덤은 마을에서 약 1㎞ 떨어진 곳에 있다.
또 아미산은 대규모 진달래 군락지가 되어 봄이 되면 온 산이 불이 난 듯이 진달래로 가득 차 있다.
면천두견주는 규합총서와 시의전서, 동국세시기 등 여러 문헌에 그 기록이 나온다. 이 술은 면천 지역에서 계속 전래해 왔다.
따라서 오랜 시간 동안 두견주를 제조할 줄 아는 가문이 여럿 있었다. 일제강점기와 1963년 정부의 양곡주 제조 금지령으로 인해 면천두견주 빚기가 중단됐다.
그 후 1986년 정부의 민속주 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김포의 문배주, 경주의 교동법주와 함께 국가 중요 무형문화재 86-2호로 지정되면서 박승규 명인이 기능보유자로 재생산했다.
하지만 2001년 박 명인의 작고 이후 또다시 생산이 중단됐다. 2003년 당진시가 면천 두견주 재생산 프로젝트를 진행해 두견주 제조 경험이 있는 면천 사람들을 모아 주질 검사를 하고 최종 8개 농가 16명을 선발했다. 곧 다시 면천두견주 보존회를 구성해 이 단체에서 2007년 9월부터 생산하기 시작했다.
2014년 1월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의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지원 국고보조사업'에 면천두견주 전수교육관 건립사업이 선정돼 체계적인 전승 기반이 마련됐다.
2018년에는 4.27 남북정상회담 때 정부의 공식 만찬주로도 쓰였다. 격세지감이다.
진달래가 만개한 4월이다.
진달래 화전을 안주 삼아 면천두견주를 마시며 우리 조상의 풍류를 다시 한번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신종근 전통주 칼럼니스트
▲ 전시기획자 ▲ 저서 '우리술! 어디까지 마셔봤니?' ▲ '미술과 술' 칼럼니스트
<정리 :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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