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DGET JONES SYNDROME
브리짓 존스 시리즈가 네 번째 속편 〈브리짓 존스의 일기 : 뉴 챕터〉로 돌아왔다. 그때 그 시절 연애에 서툴러 아이스크림을 퍼먹으며 싱글로서의 불안을 해소하던, 통제 불능의 아이콘 브리짓은 여전히 그대로일까.
지난 2월 12일 영국에서 브리짓 존스의 네 번째 이야기, 〈브리짓 존스의 일기 : 뉴 챕터〉가 개봉했다.(한국에서는 4월 16일 개봉 예정이다.) 브리짓 존스의 첫 시즌이 개봉한 지 24년 만의 일이다. 밸런타인데이를 이틀 앞둔 개봉 날짜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연애 실패의 아이콘 브리짓 존스는 또 한 번 솔로들에게 위로가 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이번 편에서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포스터만 봐도 알 수 있다. 왼쪽 하단에는 브리짓의 과거 연인들이 있다. 왼쪽에는 콜린 퍼스가 연기한 강박적인 변호사 마크 다시(1편에서 마크 다시는 침대에 올라가기 전 속옷을 네모반듯하게 접는다)가 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브리짓 존스의 아이 아빠가 되지만, 이번 편에서는 죽어버려서 여주인공을 50대 초반의 미망인이 되게 했다. 오른쪽은 휴 그랜트가 연기한 다니엘 클리버다. 1편에서 여성 편력을 자랑하던 바람둥이로 등장했는데(이 부분은 이어서 다시 얘기하겠다) 이번 편에선 브리짓의 오랜 친구로 등장한다. 한 명은 죽었고, 다른 한 명은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는 남사친이 되어버린 남자 주인공들. 브리짓 존스의 네 번째 이야기에서는 50대 남성의 비중이 확연하게 줄었다.
브리짓 존스에게도 변화가 있다. 폐경을 겪었고, 미망인이자 엄마가 되었다. 짐작했겠지만, 그렇다고 사랑을 포기했을 리는 없다. 이번에는 포스터 우측 상단으로 눈을 돌려보자. 브리짓 존스는 잘생긴 두 명의 연하남 사이에 있다. 한 명은 미국 드라마 〈화이트 로투스〉에 출연했던 금발의 레오 우달, 다른 한 명은 영화 〈노예 12년〉에 출연했던 섹시한 흑인 추이텔 에지오포다. 그렇다. 브리짓 존스는 이제 연하 킬러가 된 것이다. 덧붙이자면, 틴더의 즐거움에 푹 빠진! 나이 든 여성이 젊은 남성과 사랑에 빠지는 설정, 그중 한 명이 흑인이라는 요소까지. 작가는 이번 편에서 시대의 흐름을 적극 반영했다.
이 기사를 쓰기 위해 2001년 개봉한 〈브리짓 존스의 일기〉 1편을 다시 봤다. 숱한 장면에서 화면을 꺼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당시 영화에 등장한 유색인종은 살만 루슈디 작가가 유일했다.(그가 아직 테러 공격으로 한쪽 눈을 잃지 않았던 시절이라 카메오로 출연했던 모습에 마음이 아렸다.) 극 중에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은 마크 다시의 전 부인은 브리짓 존스의 엄마가 ‘잔인한 민족’이라고 부르는 일본인이었다. 그때는 이 대사가 웃겼을 수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남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특히 휴 그랜트가 연기한 인물이 그런데, 당시엔 가벼운 바람둥이로 묘사되었지만 지금은 그저 나르시시스트 성향의 변태 캐릭터로 보인다. 브리짓 존스를 침대로 끌어들이기 위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는 것은 법정에서 처벌받을 만한 일이 아닌가. 최악인 것은 브리짓 존슨의 일기이니만큼 브리짓의 시점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서사가 진행될수록 극의 흐름이 온전히 두 남자, 변호사 마크와 사장 다니엘에 의해 흘러간다는 점이다.
그러나 브리짓 존스의 일기 시리즈는 꾸준히 사랑받으며 후속작을 내놓았다. 2004년 〈브리짓 존스의 일기 - 열정과 애정〉, 2016년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그리고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까지. 다시 말해 브리짓에겐 시간을 관통해 공감을 주는 무언가가 있다는 얘기다. 이를 이해하려면 브리짓 존스는 원래 1990년대 영국의 소설가 헬렌 필딩(Helen Fielding)이 신문 〈더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와 〈데일리 텔레그래프(The Daily Telegraph)〉에 연재한 칼럼에서 탄생한 캐릭터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후 소설이 된 작품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몇몇의 여성 감독에 의해 영화로 각색되었다. 처음엔 샤론 맥과이어가, 이후에는 비번 키드론이 연출을 맡았다. 하지만 결국 브리짓 존스라는 캐릭터를 완성시킨 건 르네 젤위거다. 그는 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영국식 영어 악센트를 구사했으며 역할을 위해 8kg을 증량하며 캐릭터에 몰입했다.
르네 젤위거를 비롯한 여성 감독들은 기꺼이 자신의 가장 연약한 면면을 보여주고자 했다. ‘연애 루저’의 모습 말이다. 브리짓이 어설픈 플러팅을 할 때 말리고 꾸짖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데이트하기 전 무슨 팬티를 입을지 고민해본 적 없는 사람들만 브리짓 존스에게 돌을 던지길.(영화 개봉 이후 판매량이 폭증했다는, 그 유명한 ‘대형 팬티’는 역설적이게도 다니엘 클리버의 환상을 자극했다.)
정리하자면, 진실은 하나다. 살면서 우리 모두 한번쯤은 브리짓 존스였다는 것. 기억나지 않는 원 나이트, 두 남자 사이에서의 머리 아픈 고민,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을 하고서 남자와의 중요한 저녁 식사 자리에 나간 경험을 떠올려보라. 브리짓 존스는 연애 루저의 척도나 다름없다. 그의 문화적 영향력은 현대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속 계보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섹스 앤 더 시티〉부터 〈플리백〉, 블랑슈 가르댕의 스탠드업 코미디, 도리아 틸리에의 〈이리스〉까지. 이제는 자신의 루저 기질을 숨기고 부끄러워하기보다 당당하게 인정하는 여성 캐릭터들이 넘쳐난다.
토요일 저녁, 내게 가장 편안한 장소에서 추리닝을 입고 늘어져 쉴 때 어떻게 브리짓 존스에게 고맙지 않을 수 있을까. 거울 속 내 모습을 보고 한심하다는 생각 대신 피식 웃음을 터뜨리게 하고 외롭다는 생각이 끼어들 틈 없이 언제나 솔직한 모습으로 곁에 있어주는, 이토록 사랑스러운 여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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