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성지 기자] 대선과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자는 우원식 국회의장의 제안에 정치권에서는 개헌의 취지와 내용에는 공감하지만 시기상 대선과 동시 진행하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시기적 문제와 개헌의 내용 등에 다른 의견이 있다면 우 의장의 동시 투표 제안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개헌에 대한 세부적인 입장을 밝혀야 하지만 여야 모두 구체적 입장 표명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국민 과반은 개헌을 원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8일 한국갤럽이 뉴스1 의뢰로 6~7일 전국 성인 남녀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를 바꾸는 개헌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51%, 개헌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38%로 응답자의 절반이 개헌을 원했다.
선호하는 권력 구조로는 ‘4년 중임 대통령중심제’가 45%로 가장 높았다. 이어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이 외치, 총리가 내치를 맡는 분권형 대통령제’가 각 16%로 집계돼 4년 중임제를 원한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현재 대선까지 60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개헌안의 주요 내용 논의를 위한 개헌특위 구성도 쉽지 않은데다 헌법재판소에서 2014년 7월 위헌 결정이 내려진 국민투표법 개정도 과제로 남아 있다.
당시 헌재는 국내에 주민등록이 등록돼 있거나 국내거소 신고가 된 사람만 투표하도록 한정한 국민투표법 14조1항이 재외국민 투표권을 제한한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후 국회가 개선 입법을 하지 않아 해당 조항은 2016년부터 효력을 잃었다.
국민투표법은 대선과 달리 사전투표를 허용하지 않고 있어 국민투표법 개정 없이 대선과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할 경우 개헌에 필요한 ‘투표자 과반수 찬성’도 채울 수 있을지 미지수다.
선관위, 국민투표법 15일까지 개정해야 대선과 동시투표 가능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선 당일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려면 오는 15일까지 국민투표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회 사무처가 지난 4일 대선과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가 가능하냐는 문의에 대해 7일 선관위가 이 같이 답변했다. 선관위는 국회 사무처에 “재외국민 투표 관련 업무 등을 고려했을 때 15일까지 국민투표법 개정이 이뤄져야 업무 추진이 가능하다”고 회신했다.
선관위에 따르면 현행 국민투표법은 사전투표 제도와 재외국민 투표권 보장, 18세로 조정된 선거권 연령 등이 반영되지 않아 15일까지 관련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6월3일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일에 개헌 관련 국민투표가 불가능하다.
현재 국회에는 국민투표법 개정안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김용민·김영배·윤후덕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민투표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해당 법안은 재외국민의 참정권을 보장하고 국민투표도 사전 투표가 가능토록 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오는 15일까지 국회에서 처리돼야 대선·개헌 국민투표 동시 시행이 가능하지만 개헌특위 구성은 물론이고 개헌의 주요 내용에 대한 여야 합의 등이 이뤄지지 않아 국회에 법안이 상정될 가능성도 불투명하다.
정치권 안팎 “개헌 뜻은 공감하나 동시투표는 어렵다”
우원식 의장은 6일 개헌특별담화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대통령 선거일에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시행할 것을 제안한다”며 “국민주권과 국민통합을 위한 삼권분립의 기둥을 더 튼튼하게 세우기 위한 개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 의장은 구체적인 개헌안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큰 틀을 살펴보면 △대통령의 권력 분산 △삼권분립 강화 △국민의 요구 반영 등이며 이번 대선일에 국민 투표를 통해 핵심 내용만 간추려 우선적으로 처리하자는 것이다.
우 의장은 정치적 갈등을 줄이고 협치를 통해 국민 통합을 이루고자 하는 데에 가장 큰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선과 함께 진행되는 만큼 국민들의 관심과 이해도 높아지고 투표율도 올라갈 것으로 예상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개헌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법 개정과 대선까지 남은 일정을 고려한다면 시기상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8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권력구조 개편 등을 포함해 개헌의 내용을 만들어내려면 정당 간 개헌안이 있어야 하는데 없는 상황이고, 국민투표법이 바뀌어야 하는 등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개헌과 동시 투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최 전 수석은 “다음 지방선거에 권력구조 개편 등을 포함해 투표한다면 절차적으로 이해가 되지만 대선이 두 달 남았는데 개헌과 대선 투표를 동시에 하려면 한 달 안에 개헌안이 통과돼야 하는데 (시기상)못한다”고 설명했다.
윤희석 국민의힘 전 대변인도 8일 라디오 대담에서 “우원식 의장이 제안한 국민투표는 우리나라가 헌법 개정이 어렵기 때문에 지금의 권력 공백 상태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인 것 같은데 그 부분은 좋다”며 다만 “너무 시간이 없다, 87년 개헌 논의를 시작하기까지 석 달 이상 걸렸는데 대선까지 두 달도 안 되는 기간 동안 국민투표까지 가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말했다.
국힘 “개헌 논의 서두르자”…민주당 “5·18 정신 수록하고 단계적 개헌”
국민의힘은 개헌 논의를 서두르자는 입장이며 민주당은 개헌에는 공감하지만 단계적 개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개헌특위를 구성하고 차기 대통령의 권한 조정까지 포함하는 개헌안을 제시했다. 국힘은 당내 개헌특위를 꾸려 자체 개헌안을 준비해 왔다고 밝히며 현행 헌법이 대통령과 국회에 많은 권한을 주고 있어 이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개헌특위 위원장인 주호영 의원은 7일 페이스북을 통해 “대통령직에 가장 근접한 사람이 이런저런 이유를 둘러대면서 개헌을 거부하는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며 “입법권과 행정권을 모두 장악한 대통령이 국민 위에 폭군으로 군림하는 장면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며 개헌 논의를 재촉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5·18 정신을 전문에 수록하고 계엄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의 개헌은 곧바로 처리할 수 있다”며 “권력구조 개편은 대선 후보들이 국민에게 약속하고 대선 후 최대한 신속하게 공약대로 개헌하면 된다”고 말하며 단계적인 개헌을 제안했다.
이에 국민의힘 주 의원은 “이 시점에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 계엄요건 강화 등을 거론하는 것은 의제를 늘려 시급한 개헌 논의를 지연시키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우 의장은 양당 간 대립에도 “국회의 양 교섭단체 당 지도부가 대선 동시투표 개헌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개헌은 제 정당 간 합의하는 만큼 하면 된다, 이번 대선에서부터 개헌이 시작될 수 있도록 국민투표법 개정부터 서두르자”고 강조했다.
이재명 극렬 지지층 우 의장에 ‘수박, 제2의 윤거니’ 은어 사용하며 비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극렬 지지층 이른바 ‘개딸(개혁의딸)’로 불리는 이들은 우원식 국회의장에 대한 강도 높은 비난을 이어가고 있다.
우 의장이 제안한 대선‧개헌 동시 투표가 정권 교체를 앞둔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에 실익이 되지 않을 것이란 지지자들의 판단이다. 이들은 우 의장의 페이스북 글에 ‘수박(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이라는 은어를 사용하며 비난했다.
8일 민주당 지지자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도 우 의장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이재명 대표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에는 “우원식의 우매한 개헌에 항의하자, 이래도 모르쇠로 일관하면 제2의 윤거니(육석열+김건희)다”와 같은 원색적인 비난 글이 쏟아졌다.
이 대표의 극단 지지층의 자주 사용하던 공격 방식인 문자 폭탄도 재개됐다. 우 의장에게 “전화기 켜 개헌 수괴야” 등의 메시지를 보냈다는 인증 글이 커뮤니티에 올라오기도 했다.
극렬 지지층의 반발과 더불어 여야 간 개헌에 대한 입장이 다른 데다 조기 대선과 맞물려 있는 등 여야가 합의한 개헌특위를 구성하고 세부안 논의를 완료해 대선과 동시에 국민투표를 시행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상황이다.
개헌 국민투표, 국민이 주체되는 정치적 결정
개헌 국민투표는 헌법 개정을 확정하기 위해 국민이 직접 의사를 표명하는 과정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국민이 하는 중요한 정치적 결정 중 하나다.
개헌 절차를 살펴보면 먼저 국회의 재적 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헌법 개정안이 제안된다. 이후 대통령이 20일 이상 개헌안을 공고해 국민에게 알린다.
공고된 개헌안은 60일 이내에 국회의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되며 이후 국회에서 의결된 헌법 개정안은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부쳐진다. 전체 유권자의 과반수가 국민 투표에 참여해야 하며 투표자 중 과반수가 찬성해야 개헌안이 확정된다.
국민투표에서 개헌 개정안이 찬성을 얻으면 최종 확정되며 대통령은 확정 즉시 이를 공포하고 효력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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