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의무기록 보관기간 10년…성인 환자는 급여 가능성 희박
심평원, 국정감사 지적 후 의무기록 외 자료 ‘종합검토’ 계획 밝혀
국정감사 출석 환자 A씨, 행정소송 승소 후 지난달 첫 급여치료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합리적이지 못한 심사기준으로 인해 과거기록을 찾느라 애써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지난해 10월 16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 국정감사 현장.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간사 강선우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따끔하게 지적하며 경종을 울린 이 질환은 ‘척추성근위축증(SMA)’이다.
강선우 의원은 당시 현장에 SMA환자 A씨를 참고인으로 소환해 발언기회를 제공하고 심평원 강중구 원장에게 SMA치료제 급여를 위한 사전심사제도 개선방안을 요구했다. 급여대상이 확대됐는데도 비현실적인 기준으로 인해 환자들이 줄줄이 불승인 통보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SMA는 근육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SMN단백질이 정상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아 전신 근육이 점차 약화·위축되는 신경근육계 희귀질환이다. 현재 국내에서 사용되는 SMA치료제는 척수강 내 주사하는 ‘스핀라자(성분명 : 뉴시너센나트륨)’, 경구제인 ‘에브리스디(성분명 : 리스디플람)’, 정맥으로 주사하는 ‘졸겐스마(성분명 : 오나셈노진 아베파보벡)’ 등 3가지로 모두 급여가 적용돼 있다. 이에 심평원에 사전승인 신청 후 사전심사분과위원회 심의를 통과하면 급여 치료를 받을 수 있다.
2023년 10월에는 치료제 급여기준이 만3세 이전에서 만18세 이전으로 확대됐으며 급여기준 판단을 위해 시행하던 운동기능 평가도구도 다양화돼 환자들 사이에서도 기대감이 커졌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새로운 급여기준 도입 후 승인율은 오히려 떨어졌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 중 다수가 ‘SMA 관련 임상증상 및 발현시점 미입증’을 사유로 불승인 통보를 받았다(하단 사전심사현황 자료 참고). 기존에는 의무기록 외에도 증상 발현시점을 증명할 수 있는 다양한 증거자료를 인정했지만 급여 확대 이후엔 18세 이전에 증상이 발현했음을 입증하는 의무기록을 제출하도록 기준을 한층 강화했기 때문이다.
이에 SMA환자들은 의사의 진단소견이 담긴 병원 기록을 제출해도 발병한 당시의 과거기록이 아니면 ‘증상과 징후 발현시점이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승인 통보를 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출석한 환자 A씨(1975년생, 49세)는 14세 때 SMA 증상 발현을 명시한 본인의 22세 때 입·퇴원 기록을 첨부, 에브리스디 급여를 신청했지만 역시 ‘증상과 징후 발현시점이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아’ 약제 급여를 불승인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14세 발병했으면 사실상 그때 진단받은 기록을 가져오라는 것인데 의료기관의 법적 의무기록 보관기간이 10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진단 10년이 넘는 환자(1994년 이전 출생자, 30세 이상)들은 자료가 폐기돼 방도가 없다. 의료기관 자체가 폐업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SMA환자들은 진료기록이 아니더라도 18세 이전에 증상이 있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과거 기록을 찾기 위해 학교, 병무청, 보건소, 보호시설 등을 방랑하고 있다.
환자 A씨는 당시 국정감사 현장에서 “14세에 증상이 발현했다고 주치의가 직접 적은 내용이 명확히 기재돼 있는데도 22세 때의 자료라는 점에서 탈락시켰다”며 “직접 의사가 적은 기록도 믿지 않고 30년도 훨씬 지난 과거 기록만 요구하면 타임머신이라도 타야 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에 강중구 심평원장은 심사기준의 불합리성에 대한 논의 필요성에 공감을 표하며 개선 의지를 밝혔고 실제로 국정감사 이후 세 차례 전문가 논의를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강선우 의원실 역시 국정감사 이후 두 차례 추가 질의를 통해 명확한 개선방안을 요구했고 마침내 심평원은 3월 “척추성근위축증 증상 발현시점을 확인하기 위해 의무기록뿐 아니라 의무기록 외 제출된 장애진단서, 학교생활기록부, 병적기록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판단하겠다”는 답변서를 최종 제출했다. 사전심사에 의미심장한 변화를 예고한 것이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변화 기조를 감지할 수 있는 첫 신호탄이 터졌다. 국정감사 현장에 출석한 환자 A씨가 불승인 통보에 대해 국민권익위 행정심판 및 심평원에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하고 3월 17일 첫 급여 치료를 승인받은 것.
이에 대해 강선우 의원은 “지난 국정감사 지적 이후 성인 SMA환자에게 ‘바늘구멍’ 같던 치료의 길에 한 뼘 볕이 들었다”라고 평가하며 “의약품 사전승인제도 심사평가과정이 허술해선 안 되지만 제출 불가능한 서류를 요구하는 등의 절차로 급여가 적용되지 않는 일은 더는 없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심평원이 환자와 의료진 모두 납득할 수 있는 관련 기준을 제대로 수립하도록 계속 살펴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사례는 성인 SMA환자들에게 큰 희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심평원이 종합적 검토 의지를 표명한 만큼 과거 기록의 부재로 급여 신청조차 하지 못했던 SMA환자들도 적극 용기를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성인 SMA환자들은 과거 질병코드도 없던 시절에 발병해 병명도 모른 채 진료를 받아왔다. 따라서 주치의 소견을 비롯해 신경근육의 퇴행으로 임상진료 및 물리치료 등을 받은 이력, 장애판정 이력, 불편한 신체활동으로 인한 병역면제 기록 등 다양한 자료로 발병시점을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SMA환우회 문종민 회장은 “의무기록이 아닌 다양한 자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심평원의 답변은 매우 고무적”이라며 “환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발병시점 입증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만큼 심평원이 말 그대로 종합적인 상황을 고려한 심사를 해주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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