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소속 조종사들이 해외 체류 중 정치적 견해 차이로 인해 주먹다짐을 벌이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들이 회사로부터 중징계를 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개인 간의 갈등을 넘어,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항공사 조종사들이 항공편 운항 이후에도 품위 유지 의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서 항공업계 내외부적으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해당 사건은 지난해 12월 대한항공의 인천발 브리즈번행 항공편을 운항한 기장과 부기장이 브리즈번 도착 후 호텔에서 체류하던 ‘레이오버’ 기간 중 발생했다.
당시 이들은 현지 호텔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소추 관련 정치적 주제를 두고 대화를 나누던 중 의견 차이로 말다툼을 벌였고, 결국 감정이 격화되면서 물리적인 폭행으로까지 비화됐다.
정치적 입장 차이를 견디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주먹을 휘두른 이 사건으로 인해, 기장은 현지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고 부기장 역시 부상을 입었다.
사건의 심각성은 이들이 항공편 운항 직후 휴식을 취하는 기간에 발생했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이들은 곧 다음 항공편을 맡을 예정이었으나, 폭행으로 인한 부상과 경찰 조사 등의 이유로 결국 운항에 참여하지 못하게 됐다.
대한항공은 즉각 대체 인력을 본사에서 호주로 파견하여 예정된 운항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조치했으나, 항공업계의 기본 가치인 안전과 신뢰를 훼손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웠다.
대한항공은 이후 중앙상벌위원회를 개최하고 이 사건에 연루된 기장과 부기장 각각 1명에게 면직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또한 현장에 있었던 또 다른 기장에게는 폭행 상황을 중재하지 못했다는 책임을 물어 3개월 정직 처분을 내렸다.
장거리 비행의 경우 보통 기장 2명과 부기장 1명으로 팀이 꾸려지며, 해당 팀은 장시간 비행 이후 반드시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 복귀편에 투입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이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하면서 시스템의 허점까지 드러낸 셈이 됐다.
대한항공은 징계 사유에 대해 “레이오버 기간은 단순한 자유시간이 아니라 다음 비행을 위한 필수 휴식 시간이자 정신적, 신체적 안정이 요구되는 시간이며, 이 시간 동안 승무원은 회사의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이 호텔이라는 사적인 공간에서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면직이라는 가장 강력한 조치가 내려진 것은 조종사라는 직업의 공공성과 도덕성, 안전 책임이라는 무게를 고려한 결정이었다는 것이 사측의 입장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징계 수위가 과도하다는 반발도 제기되고 있다. 해당 사건은 유니폼을 착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했으며, 기내나 공식 업무 중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개인적인 감정 다툼으로 보기에는 징계 수위가 과도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해당 조종사들의 동료들은 상벌위 이전 선처를 요청하는 서명운동을 벌이며 기장과 부기장의 면직을 막기 위한 움직임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항공은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내부 지침을 재정비하고 교육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항공사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단순한 개인 간 다툼이 아니라, 승무원 간 불화가 항공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점을 감안해 판단한 것”이라며 “향후 비슷한 사안이 재발하지 않도록 내부 규율을 강화하고, 해외 체류 시 승무원 간 커뮤니케이션 가이드라인도 함께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조종사들이 레이오버 중에도 단순한 개인이 아닌 항공사 대표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특히 정치적인 주제를 두고 극단적인 대립으로까지 이어졌다는 점은 사회 전반의 분열된 분위기가 일선 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조종사들은 단순히 항공기를 운항하는 기술자가 아닌, 수백 명의 생명을 책임지는 직책을 맡고 있는 만큼 고도의 자제력과 품위가 요구되는 자리다.
대한항공은 현재 해당 조종사들에 대한 징계가 확정된 이후에도 유사 사례 방지를 위해 규정 정비와 예방 교육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레이오버 동안의 행동 수칙과 승무원 간 갈등 관리 체계를 정비 중이며, 특히 장시간 해외 체류가 동반되는 장거리 노선에서는 심리적 안정과 스트레스 관리에 대한 새로운 시스템 도입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폭행 사건을 넘어서, 항공사 직원의 직업윤리와 조직문화의 문제까지도 함께 제기한 사례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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