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바꾸다’, ‘반전시키다’를 뜻하는 리버스(Reverse)는 한 장면에서 두 대상이 서로 마주 보고 있을 때 사용되는 영화적 기법이다. 이러한 의미를 차용한 리버스는 책과 영화를 교차로 감상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책영화 모임이다. 리버스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과 가치관이 뒤바뀌는 장(場)이 되고자 한다.
【투데이신문 전세라 기자】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소설, 영화의 제목으로도 사용된 이 유명한 문장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이 한 말이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18세에 발표한 데뷔작 『슬픔이여 안녕』부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사랑, 허무주의, 세련된 감성을 담아내며 당대 프랑스 젊은 층으로부터 열광을 받았다.
리버스의 시즌1 마지막 모임은 도서 『한 달 후, 일 년 후』와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2003)을 통해 ‘사랑’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조제,>
『한 달 후, 일 년 후』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작품으로. 아홉 남녀의 각기 다른 사랑과 삶을 통해 사랑의 본질과 인생의 덧없음을 그렸다. 『한 달 후, 일 년 후』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에서 주인공이 좋아하는 작품으로 등장하며, ‘쿠미코’라는 주인공의 본명을 놔두고 책 등장인물인 ‘조제’라는 이름을 사용할 만큼 책에 대해 동경과 애정을 보였다. 조제,>
리버스 모임에 참여한 조서연(가명)씨는 책에 대해 “여러 인물들이 얽히는 관계를 보여줘서 책의 서술과 심리를 따라가기에 복잡했다”며 “주변에서 보기 힘든 욕망의 충실한 인물들에 작가의 어떤 의도가 담겨있는지 궁금했다”고 전했다. 이어 “책에서 전하는 허무주의에는 공감하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고통을 주는 인물들의 행동에 연민이 느껴지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은 하반신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던 여자주인공 ‘조제’와 남자주인공 ‘츠네오’가 우연히 만나 사랑과 이별의 과정을 그린 로맨스 영화다. 2003년에 개봉한 작품이지만 사랑을 통해 성장한 연인의 모습과 이별의 감정을 섬세하게 다룬 작품으로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조제,>
사랑 앞엔 장애가 없다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의 스트레스가 신체적 손상으로부터 야기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장애인들의 스트레스는 비장애인들의 장애에 대한 거부적인 반응, 부정적인 시선 등과 같은 반응으로 발생되는 것이며 이는 결국 스스로에 대한 혐오와 분노로 이어진다.
영화에서도 장애인으로 등장하는 조제를 둘러싼 차별적인 시선이 등장한다. 조제와 함께 사는 할머니는 ‘남에게 피해가 되지 않게 행동해라’라고 말하며 조제의 장애가 주변 사람들의 피해를 야기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츠네오는 조제를 한 명의 여성으로 의식하는 동시에 조제의 장애를 신체의 ‘차이’로서 받아들인다.
이에 대해 모임에 참여한 채민서(가명)씨는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이별을 선택한 츠네오의 행동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평가했다면, 시간이 지나 영화를 다시 보니 이별보다도 조제와의 만남을 선택하고 사랑을 이어갔던 츠네오의 사랑과 용기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조 씨는 “어릴 때 본 조제는 독특한 행동이나 철없어 보였는데, 나이가 든 후 다시 본 주제는 용기와 씩씩함이 크게 느껴졌다”며 “장애라는 한가지 이유보다 특수함을 가진 한 인간의 사랑과 이별이라는 보편성이 두드러졌다”고 전했다.
사랑을 통해 성장한 두 남녀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은 같은 제목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소설보다 영화가 더 큰 사랑을 받는 이유는 소설에 없는 이별 장면을 새로 추가해 주인공들의 ‘성장’에 초점 맞췄기 때문이다. 조제,>
조제와 츠네오는 여느 연인들처럼 사랑을 시작했지만, 끝끝내 이별을 맞이한다. 이별의 장면에서 츠네오는 “이별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사실은 단 하나다. 내가 도망친 것이다”라며 현실적인 갈등을 겪고 이를 솔직하게 내비치는 모습은 관객들로 하여금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조제 또한 츠네오와의 연애를 통해 가장 무서워하는 호랑이 함께 보며, 호랑이와 다를 바 없었던 세상을 직접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이로써 사랑을 했던 여성과 남성은 서로를 통해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책 『한 달 후, 일 년 후』도 사랑의 짧음과 덧없음에 대해 조망하고 있지만, 사랑을 부정적인 것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조제와 츠네오가 서로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사랑이라면 사랑의 끝이 허무하다고 할지언정 그들의 사랑이 가치 없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책과 영화에 대해 토론을 나누며 이도연(가명) 씨는 “사랑에 대해 인색해진 사회를 살아가던 중, 이번 모임에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던 기회가 귀했다”며 “사강의 사랑은 모든 것을 휩쓸고 가는 자연재해 같은 것이라면, 조제의 사랑은 성장통과 같았다”고 전했다. 이어 “수많은 이유로 청년들은 사랑의 우선순위를 뒤로 미루지만, 사강과 조제가 사랑의 양면을 표현한 것처럼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회복하고 사랑을 전제하는 것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채 씨도 “리버스의 마지막 모임에서 사랑에 대해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어 좋았다”며 “『한 달 후, 일 년 후』처럼 사랑에 대해 냉소적인 입장이었는데, 조제와 츠네오가 성장한 모습을 보고 사랑을 조금 믿어보고 싶었다”고 전했다.
Copyright ⓒ 투데이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