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이수민 기자] 길어지는 내수침체와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정치적 격변기 속 유통업계가 생존 기로에 섰다. 지난 반년 사이 티메프(티몬·위메프), 홈플러스, 발란 등 굵직한 유통기업들이 줄줄이 기업회생을 신청하고, 최근에는 애경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애경산업 매각 소식까지 겹치면서 업계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여기에 내란사태로 인한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이 4월 4일 선포되면서 정치·경제적 파장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티메프부터 홈플·발란까지...유통가 덮친 기업회생 쓰나미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온라인 명품 플랫폼 1위 기업인 발란이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발란은 올해 1분기 계획된 투자 유치를 일부 진행했으나, 추가 자금 확보가 지연되면서 단기적인 유동성 경색에 빠졌다. 발란 측은 "입점사 상거래 채권을 안정적으로 변제하고 발란의 지속 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해 회생을 신청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이는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은 지난 7월의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대규모 미정산 사태를 초래한 티메프는 미지급 논란 초기 전산 오류상의 문제라고 대응했으나, 결과적으로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지금까지도 과정을 밟아오고 있으며 입점업체와 소비자 등 피해 역시 현재진행중이다. 당시 티메프 사태로 구매자 47만명(1300억원), 판매자 5만6000명(1조3000억원) 등 53만명이 1조5000억원의 피해를 봤다.
온라인 플랫폼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 3월에는 국내 대형마트 2위 홈플러스가 돌연 기업회생절차를 밟으면서 업계 파장을 불러왔다. 홈플러스는 지난달 4일 신용등급 하락으로 인한 잠재적 자금이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당시 홈플러스 관계자는 "2월 공시된 신용평가에 온·오프라인 매출 증가와 부채비율 개선 등 많은 개선사항들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신용등급이 하락했다"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애경그룹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핵심 계열사인 애경산업을 매각 검토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애경산업의 경우 생활용품 브랜드 케라시스, 뷰티 브랜드 루나 등을 전개하는 애경그룹의 모태사업이라는 점에서 업계 충격을 안겼다. 그룹 모태까지 매각 검토 대상에 오른 것은 애경그룹 계열사 실적 부진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재무구조 개선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을 위해 이 같은 방안을 선택한 것으로 해석된다.
반년 사이 유통업계를 덮친 법정관리와 매각 등 경영 리스크는 단순히 단일 기업만의 문제가 아닌, 온·오프라인 유통업계 전체의 위기를 시사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백화점, 대형마트, 면세점, 이커머스 등 주요 유통 기업 대부분이 실적 악화 등의 어려움을 겪었다. 길어지는 내수침체와 출혈경쟁으로 롯데·신세계 등 대형 유통기업들마저 흔들리면서 비용 감축을 위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대통령 탄핵 결정...'혼란 정국' 속 유통가 향방은
이런 상황 속 4월 4일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선포 사태 이후 지속적으로 이어진 정치적 불확실성이 일부 해소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다만 쪼그라든 소비심리와 얼어붙은 내수시장이 회복되기까지는 예상보다는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발표한 3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3.4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95.2) 대비 1.8p 하락한 수치다. CCSI는 100을 기준으로 그 이상이면 낙관적, 이하면 비관적으로 본다. 지난해 12월부터 4개월 연속 CCSI는 100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 내수 의존도가 높은 유통업계의 타격 또한 불가피했다.
앞서 지난 2016년 불거졌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때보다 경기 전망은 부정적이다. 2016년 10월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당시 소비자심리지수는 102.7에서 2017년 1월 93.3까지 떨어졌다. 탄핵 인용이 결정된 2017년 3월에는 96.7으로 4월에는 101.8로 나타나며 100선을 회복했다.
다만 유통 시장이 약 8년 전인 2017년과는 완전히 달라졌고, 코로나19 여파, 고금리·고환율 등 대내외로 불안정한 환경이 이어지고 있어 과거만큼의 회복세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5말·6초 예정된 조기대선까지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최근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서 발표한 상호관세 대응과 관련해 사실상 무정부 상태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대부분의 국내 기업들은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유통업계는 향후 정치적 수습과 소비심리 변화 등을 예의주시하며 대응책을 마련한다는 입장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관세 문제, 외교적 공백 등이 남아있어 불확실성이 여전히 큰 상황이다. 탄핵 이후 수습이 어떻게 되느냐가 중요한 것"이라며 "소비를 위해선 경제 상황부터 안정돼야 하는데 이는 탄핵 이후 어떻게 수습이 되고 진행되느냐에 따라 달렸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소비심리는 탄핵과 별개로 불경기 등 때문에 계속 좋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커머스보다는 당분간 도심 지역 오프라인 매장 매출 감소가 불가피해보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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