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메디먼트뉴스 이혜원 인턴기자] 2013년 개봉한 파벨 파블리코브스키 감독의 영화 ‘이다(Ida)’는 폴란드 영화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다. 흑백 화면을 통해 고요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를 선사하는 이 영화는 1960년대 폴란드를 배경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소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 안나는 고아원에서 자라고 수도원에서 신의 부름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서원식 전에 자신에게 혈육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 유일한 혈육인 이모 ‘완다’를 찾아간다. 그리고 이모가 알려준 두 가지 사실을 듣고 안나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첫 번째는 안나의 원래 이름은 ‘이다(Ida)’이고 유대인이라는 것. 두 번째는 안나의 부모가 제2차 세계 대전 중 죽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부모에 대해 알고 싶어진 이다는 이모와 동행하며 부모님의 유골을 찾아나선다. 부모님의 유골이 묻혔을법한 장소를 탐색하던 도중 이다는 이모가 무자비한 판사였음을 알게 되기도 하나, 기본적으로 수녀원에서 절제된 삶을 유지하며 살아왔던 자신과는 달리 방탕한 삶을 살아가는 이모와도 조금씩 충돌하게 된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은 영화 ‘이다(Ida)’의 전개 방식이다. ‘이다(Ida)’는 일종의 ‘로드 무비’ 형식을 취한다. ‘로드 무비’는 장소의 이동을 따라가며 이야기가 진행되는 영화를 의미한다. 여행, 도주 등을 중심 플롯으로 사용하며, 여러 공간을 경유하여 만나게 되는 사람들, 사건들을 통해 어떤 자각, 의미를 터득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영화 ‘이다(Ida)’ 역시 안나가 부모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리스’라는 색소폰 연주자를 만나게 되고, 부모님이 살던 집을 찾아낸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펠릭스’라는 남자와 그 아내가 살고 있었고 이 만남을 통해 알고보니 펠릭스의 아버지 ‘시몬’이 안나(이다)의 부모님을 밀고해 죽게 만든 자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둘은 펠릭스를 추궁하여 결국 부모의 유골을 찾게 된다. 이 장면은 영화의 가장 극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카메라는 땅이 파이는 모습, 유골이 드러나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땅을 파는 행위를 보여준다. 이 구도가 보여주는 한정적인 정보는 오히려 인물의 표정, 몸의 떨림 등 비언어적 행동에 집중하고 몰입하게 한다. 그리고 펠릭스는 고백한다. 사실 이다의 부모님을 죽인 것은 시몬이 아닌 펠릭스 본인이었으며, 그 당시 갓난아기였던 이다는 유태인 티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살려주었던 것이라고. 그리고 그날 완다는 자신의 아들을 안나의 집에 맡기고 전쟁에 참전했었는데, 완다의 아들 또한 안나의 부모가 죽은 날 함께 죽었다는 것도. 완다는 이다와 함께 루블린에 있는 유대인 가족 공동묘에 유골들을 매장해주고,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진다.
수녀원으로 돌아온 이다는 속세에서 겪은 경험과 자신의 부모님이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는 충격 때문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한다. 그리고 완다는 자기 아들이 끝내 죽게 되었음을 안 이후 더 이상 삶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주피터 교향곡을 크게 틀어놓은 채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다.
이다는 이모의 사망 소식을 듣고 다시 수녀원 밖으로 나온다. 이모의 장례식을 치른 뒤, 수녀복을 벗고 이모가 그랬듯 술을 마시고 담배를 핀다. 그날 저녁 이다는 리스와 우연히 재회하게 되고, 그와 성관계를 가지게 된다. 앞으로 어쩔 생각이냐는 이다의 물음에 리스는 결혼해서 남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자고 이야기한다. 다음날 아침, 이다는 리스 몰래 수녀복을 다시 입고 나온 채 그를 떠나 수도원을 향해 걸어간다. 길 위를 터벅터벅 걸어가는 이다의 얼굴을 카메라가 클로즈업으로 찍으며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의 엔딩씬은 내내 정적이던 카메라가 유일하게 흔들리는 장면으로 연출된다. 내내 무표정하던 그녀의 표정도 그 순간만큼은 어떠한 의지가 느껴진다. 안나는 어쩌면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삶을 제대로 찾게 된 건지 모르겠다. 물론 안나가 계속 안나로서 살아갈지, 이다로서 살아갈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어떠한 의지가 보여서일까. 묵묵히 걸어갈 그녀의 모습만이 떠오를 뿐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이제 그녀의 삶은 오로지 그녀의 의지와 발길에 달렸다.
영화 '이다(Ida)'는 감독 특유의 이방인적 감수성과 느릿한 호흡으로 한 개인과 사회의 아픈 역사에 대한 탐구를 담아낸 작품이다. 고전 영화에 주로 쓰인 1.37 : 1 사각 화면비율 속에서 우카시 잘과 리샤르트 렌체프스키 촬영감독이 고정된 흑백화면으로 담아낸 촬영도 무척 아름답다는 평을 받았다. 그해 아카데미 촬영상에 후보로 오르고 전세계에서 최고의 촬영을 가리는 에너가 카메리마쥬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개구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시간 22분의 짧은 러닝타임으로도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었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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