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 선고를 앞둔 가운데 윤석열 사단의 막내로 불렸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취임 초와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검사 시절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린 그는 금감원장 취임 후에도 강도 높은 개혁을 이끌었다. 금융권을 상대로 줄곧 강경한 태도였던 그였다.
하지만 당분간 마지못해 임기를 이어가게 된 이 원장은 곧 나올 대통령 탄핵 결과에 거취를 결정할 모양새다. 정치권 진출 가능성은 어느새 희미해졌다.
윤석열 사단 막내 이복현 금감원장
이 원장이 금감원장에 오른 2022년 6월부터 금융권에 긴장감은 상당했다. 과거 검찰 출신이란 점이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 데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와 서울중앙지검에서 굵직한 금융범죄 수사를 맡으며 ‘재계 저승사자’로 불렸던 영향이다.
당시 이 원장은 취임사에서 “시장교란 행위에 대해서 종전과 같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라며 “불공정거래 행위 근절은 시장 질서에 대한 참여자들의 신뢰를 제고시켜 종국적으로 금융시장 활성화의 토대가 될 것”이라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 원장은 취임 이후 가계대출 규제를 비롯해 최고경영자(CEO) 선임 과정 논란 등을 해소하기 위해 지배구조 모범관행을 도입했으며 금융사고에 대해서는 발본색원해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특히 우리금융지주 손태승 전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사건에서 강경한 태도가 돋보였다. 이 원장은 당시 “더 이상 신뢰가 힘든 수준”이라며 경영진을 강하게 질타했다. 이 원장이 이끄는 금감원은 우리금융에 대한 경영실태평가 등급을 강등하는 결정도 내렸다.
홈플러스 사태를 둘러싸고 대주주인 MBK파트너스에 칼날을 겨누기도 했다. 지난달 말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그는 “MBK파트너스를 믿을 수 없다”며 “홈플러스가 자산유동화전자단기사채(ABSTB) 4000억원을 전액 변제한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비판을 내놨다.
강경에서 유화적 태도로…용두사미란 오명도
검사 출신인 이 원장이 금감원장으로서 연일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갈 수 있던 배경엔 사실상 윤 대통령이라는 비빌 언덕이 있었다. 과거 검사시절 윤 대통령과 수사를 맡은 인연으로 이 원장은 윤 대통령 사단 막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이 원장은 2013년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에서 윤석열 당시 특별수사팀장과 신뢰를 쌓았다. 이후 주요 특수수사에서도 윤 대통령과 함께한 그는 윤 정부 출범 이후 금감원장이 되면서 대통령 최측근으로 공공연히 알려지게 됐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지난해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탄핵 요구가 빗발치기 시작한 가운데 이 원장은 알게 모르게 전과 같은 위신을 세우기 어려워졌다.
일례로 이 원장은 지난해 농협중앙회와 농협금융 간 지배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지만 정작 농협금융 이석준 전 회장을 비롯해 자회사 6곳의 대표가 교체되는 과정에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우리금융에 대해서도 내부통제 책임을 엄중하게 보고 보험사 인수에 지장을 초래하는 경영실태평가 등급을 내리긴 했지만 금융위원회가 예외 승인을 둘 수 있는 가능성이 거론된 데에 반발하지도 않았다.
또 그간 주요 문제들에 대해선 이 원장이 직접 입장을 밝혀왔으나 MBK파트너스 수사 발표에서는 금감원 함영일 자본시장·회계 부문 부원장이 나섰다. 대통령 탄핵선고를 앞둔 지난 1일 금감원장직 사의 의사도 표명했다.
사의 표명 이후 날 선 반응들
이 원장이 사의를 표명한 건 그가 직을 내걸며 거부권 행사를 막겠다고 했던 상법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한 영향이 없지 않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상법개정안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다음날 이 원장은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현해 금융위원장에게 사의를 표명한 사실을 언급했다.
상법 개정은 기업 지배구조 투명화와 주주권익 보호를 위한 조치로 자본시장법만으론 부족한 제도적 한계를 보완하는 대안으로 평가돼왔다. 이는 1년여간 숱한 논란 속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좌초된 만큼 이를 지지한 이 원장 입장에서도 아쉬움과 허탈감은 클 수 있다.
다만 당장 코앞인 대통령 탄핵 선고가 이 원장이 사의를 표명한 보다 결정적인 이유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뉴스쇼에서 “현실적으로 4월 4일 대통령이 오시는지 안 오시는지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임명권자가 대통령인 이상 어떤 입장 표명을 하더라도 대통령님께 말씀드리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애초에 윤 대통령 사단으로 세워졌으니 윤 대통령에게 입장을 전하겠다는 얘기다. 탄핵 선고 결과가 주목되는 이유다. 앞서 사의 표명 후 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가 만류해 이 원장은 임기를 이어가는 중이지만 그 결과에 따라 임기 만료 전 또 다시 사의를 표명하거나 돌발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없지 않아 보이는 대목이다.
이 원장을 향해 취임 초만 해도 정계 진출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으나 그를 이끌어준 대통령이 사실상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면서 그 가능성도 이제는 희미해 보인다. 이 원장은 임기 만료 후 민간에서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이 원장은 뉴스쇼에서 “22대 (총선 때) 출마를 권유하신 좀 분들이 있었다”라며 “가족과 상의했을 때 (정치는) 안하는 게 좋겠다고 결론이 났다”고 말했다. 이어 “25년 넘게 공직 생활을 했으니까 혹시 할 수만 있으면 민간에서 좀 더 시야를 넓히는 일들을 하면 좋겠다”라고 언급했다.
한편 이 원장 발언에 각계에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이 계셨으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 원장 발언에 대해 “그것마저도 오만한 태도라고 본다”라며 “어떻게 금융감독원장이 대통령을 운운하면서 대통령과 자기 생각이 같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지 공직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는 있을 수 없는 태도다”라고도 비판했다.
이밖에도 한 금융권 관계자는 더리브스 질의에 “정부 부처들은 서로 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하는데 이번에는 금융위가 일관되게 말하는 상황에서 이 원장도 개인의 의견으로 계속 반론을 펼쳐왔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개인의 소신과 정부의 입장은 다를 수 있는데 금융 의사결정을 하는 감독기구의 수장이 대통령을 들먹이면서 입법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권한을 갖고 있나”라며 “금감원장으로서 계속 지적받았던 가계대출 문제뿐만 아니라 시장개입에 대해 부작용 지적을 받아왔는데 그 연장선에 있는 행동 같다”라고 지적했다.
한 경영학과 교수도 더리브스와 통화에서 “지금 주요한 의사결정에 공백사태가 일어난 상황에서 어떤 돌출 행동은 도움이 안 된다”라며 “아무리 본인의 의사가 명확하다 하더라도 전국이 안정된 이후 해야 했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국정 공백 사태에서 본인이 어떤 행동을 한다는 건 공직자로서의 처신으로는 매우 부적절하다”고 강조했다.
한지민 기자 hjm@tleav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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