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박수남 기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포괄적인 관세 조치를 발표하며 글로벌 무역 질서를 흔들어 놓았다. 그러나 그 촘촘한 관세망에서 단 한 나라만이 비켜갔다. 바로 러시아였다.
그 이유는 단순한 누락일까, 아니면 계산된 외교적 침묵일까?
관세의 회오리 속, 러시아만이 바깥에 서다
트럼프 캠프 대변인 캐롤라인 레빗은 Axios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제외 이유에 대해 간결하게 설명했다. "이미 미국의 강력한 제재가 러시아와의 실질적인 교역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수치로 본 현실은 다소 복잡하다. 제재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러시아와 연간 약 35억 달러 규모의 교역을 하고 있다. 이는 마우리티우스, 브루나이 등 관세 대상국에 포함된 국가들보다 더 큰 규모다.
더욱이, 뉴질랜드의 외딴 영토 토켈라우(인구 약 1,500명)나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제도(인구 약 2,500명)조차 관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는 점에서 러시아의 누락은 더욱 도드라진다. 마치 전 세계를 겨눈 레이더에서 유독 러시아만이 그림자 속에 숨은 듯한 모양새다.
교역은 줄었지만, 대화의 문은 닫히지 않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과 러시아 간 무역 규모는 2021년 약 350억 달러에서 지난해 10분의 1 수준인 35억 달러로 급감했다. 이는 각종 경제 제재의 여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세 면제는 외교적 메시지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미국 중재의 휴전 협상에서 일부 제재 완화를 요구해왔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협상은 사실상 교착 상태에 빠져 있지만, 외교의 문은 아직 닫히지 않았다.
표면 아래 요동치는 정치적 파장
트럼프는 이번 주 초 러시아 석유에 대한 ‘2차 제재’ 가능성을 시사하며 푸틴 대통령의 최근 발언에 “매우 화가 났다”고 밝히기도 했다. 관세는 제외됐지만, 러시아가 향후 더욱 강력한 제재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 셈이다.
캐나다와 멕시코도 관세 명단 제외… 그 이유는 다르다
러시아 외에도 북미의 주요 무역 파트너인 캐나다와 멕시코 역시 이번 관세 명단에서 빠졌다. 하지만 이들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이미 트럼프 행정부 당시 25% 관세가 부과되어 있어, 이번 발표에서 새롭게 포함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레빗의 설명이다.
또한, 쿠바, 벨라루스, 북한 등도 기존의 강도 높은 제재 및 관세 조치로 인해 목록에서 빠졌다.
보이지 않는 정치의 퍼즐 조각
이번 조치가 단순한 무역정책의 연장은 아닐 수 있다. 관세라는 경제적 무기를 통해 글로벌 질서를 재편하려는 의도가 있는 동시에, 일부 국가를 의도적으로 제외함으로써 외교적 여지를 남겨두려는 트럼프의 전략이 엿보인다.
러시아의 누락은 어쩌면 그가 구사하는 ‘보이지 않는 대화’의 일환일지도 모른다. 무역보다 깊은 차원의 게임이 진행 중인 것이다. 트럼프의 명단에서 빠졌다는 사실 자체가 러시아에 대한 제재의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조용한 공백 속에서 더 큰 파장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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