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최주원 기자】 트럼프 정부의 상호관세 발효에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대응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생산 거점을 활용한 유연한 대응을,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 메모리(HBM)에 집중하는 전략을 취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미국 제조업의 구조적 약점이 오히려 한국 AI 반도체의 글로벌 경쟁력을 공고히 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3일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2일(현지 시간) 모든 국가를 겨냥한 상호관세 부과 방침을 발표하며 한국에도 25%의 관세를 매기기로 결정했다. 다만 철강·알루미늄(25%), 자동차(25%), 반도체·의약품(추후 발표) 등 품목별 관세가 적용되는 제품군은 상호관세 대상에서 제외됐다.
상호관세 적용에서 일단 벗어난 반도체 업계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후속 조치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트럼프발 보호무역주의 파고에 맞서 생존 전략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현재 다양한 시나리오를 준비 중이며 변화 추세에 맞춰 적시에 대응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달 19일 진행된 주주총회에서 당시 한종희 대표이사(부회장)는 “회사는 멕시코와 중국을 넘어 전 세계에 다양한 생산 거점을 확보하고 있으며 생산·판매 거점 간 효율적 물류 시스템을 구축했다”라며 “대미 투자 역시 여러 옵션을 검토 중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글로벌 공급망을 활용한 유연한 대응으로 기업 이익을 극대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미국발 관세 이슈와 이에 따른 보복 관세 움직임이 글로벌 증시와 회사 주가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지만 미국 대선 이전부터 관세 리스크 대응 시나리오를 준비해왔다”며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을 예의주시하며 신속한 대응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메모리 시장에서는 최근 범용 D램 가격 하락세가 2분기 들어 진정 국면에 접어든 반면 HBM 등 고부가 제품은 상승세로 돌아설 전망이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2분기 범용 D램 가격이 전 분기 대비 0~5% 소폭 하락에 그치는 한편, HBM을 포함한 평균 D램 가격은 5세대 제품 ‘HBM3E 12단’ 출하 증가에 힘입어 3~8%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미국발 관세 부과 우려로 최종 소비자 브랜드들이 D램 조달량을 앞당기면서 메모리 공급망 전반의 재고 감소가 가속하는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SK하이닉스는 HBM과 AI 특화 제품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는 한편, 고객 수요를 면밀히 모니터링하며 투자 전략을 조정하고 있다. 시장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면서도 고객 니즈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이중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누적 재고 소진과 공급자 재고 수준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시장 분위기는 우호적인 편이지만 이 흐름이 단기적 현상인지 중장기 추세인지는 관세 정책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어 시장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발효 이후 구체적 정책 방향이 확정되는 대로 유연한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한국 반도체 업계를 크게 위축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화여대 양희동 교수는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 자체가 약화돼 있어 한국의 AI 반도체는 여전히 글로벌 시장에서 강점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양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내 생산시설을 확대하는 ‘온쇼어링(onshoring)’ 전략을 추진하고 있지만 근본적 한계가 존재한다”며 “과거 트럼프·바이든 행정부 시기 대중국 관세가 높아졌음에도 미국의 무역적자는 오히려 증가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4년 임기 내 글로벌 제조업체들이 생산 거점을 급격히 변경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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