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하는 미지, 임민욱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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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하는 미지, 임민욱의 세계

더 네이버 2025-04-03 10:22:14 신고

3줄요약

‘솔라리스’ 작품을 배경으로 선 임민욱 작가.

작가 임민욱의 길은 곧 비결정성의 흔적을 추적해온 궤적이다. 그는 재개발, 분단 등 파괴된 땅의 역사를, 국가 폭력과 그로 인해 이별을 겪은 공동체의 상실을 조명해왔다. 2015년 삼성미술관 플라토 전시 <만일의 약속> 이후 10년 만의 국내 미술관 개인전 <하이퍼 옐로우>를 4월 20일까지 일민미술관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일본 오바야시 재단 리서치 그랜트를 계기로 ‘도시의 비전’이라는 주제 아래 진행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다. 그간 장소성과 흐름에 대한 질문을 던져온 작가는 한중일 3국이 공유하면서도 해체하는 색깔 ‘옐로우’에 집중한다. 이는 국제 사회에서 동북아시아의 인종적 함의이자 황해에 대한 상징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때 황해는 한국과 중국 사이 바다를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다. 작가의 물음에 AI가 답하길, 황해는 ‘핵전쟁 이후 새롭게 생겨난 바다’, 즉 실재하지 않는 바다다. 이 같은 아이디어는 리서치 단계에서 피어났다. 그간의 정치적 질문이 한국 근현대사의 맥락 안에서 탄생했다면, 리서치를 위해 찾은 일본에서 작가에게 허락된 자리는 이방인이자 관광객의 위치였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동안 태동한 전시는 필연적으로 관람객 역시 관광객의 자리에 데려다 놓는다. 


3개 층의 전시실 가운데 1층에는 거대한 설치 작품 ‘솔라리스’가 펼쳐진다. 2층의 전시 해설 텍스트를 마주하기 전 세계관을 감각으로 인식하는 입구인 셈이다. 스타니스와프 렘의 SF 소설 <솔라리스>의 제목을 빌린 행성에는 두 개의 태양이 떠 있고 시간이 흐르며 차츰 가까워진다. 작가는 여기에 일본 나라현의 사찰 도다이지 법당 도면을 겹쳤다. 곡면의 사구에 직선의 건물 구조가 포개진 전시장을 거니는 동안 관람객은 자연스레 미지의 공간을 관찰하고 해석하는 관광객의 자리에 선다.


2층에는 ‘동해’, ‘서해’, ‘황해’, 일본 ‘나라’를 형상화한 4점의 조각 작품 ‘포터블 키퍼’와 3채널 영상 ‘동해사’가, 3층에는 수집품을 옮겨둔 ‘정원과 작업장’이 중심에 있다. 갑오징어뼈처럼 전시장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자연의 재료부터 시대를 가늠할 수 없는 작은 소품까지, 미술관 건물 구조를 본뜬 진열장에 배열했다. 3층 안쪽 프로젝트 룸에서는 영상 작품 ‘S.O.S.-달려라 신신’이 재생 중이다. 이는 2009년 한강 유람선에서 진행한 퍼포먼스 ‘S.O.S.-채택된 불일치’에 이어, 일본 스미다강을 나란히 달리는 배 두 척에서 펼쳐진 관객 참여 퍼포먼스를 담은 영상이다. 오후에서 밤으로, 영상의 배가 강을 달리는 동안 ‘관광객 되기’를 수행한 관람객의 여정도 서서히 저문다. 그 길로 미술관을 빠져나와 광화문의 인파 속으로 섞여 들어서는 순간 일시적으로 빌린 관광객 신분을 탈피하고 익숙한 도시로 내던져진다. 수행은 끝났지만 완전히 현지인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이의 시간, 어쩌면 당신은 비로소 ‘하이퍼’ 상태를 경험할 것이다. 탈각의 순간을 지연하고자 작가에게 대화를 청했다. 일본 나라현의 사찰 도다이지에서는 봄의 도래를 알리는 ‘불의 축제’가 한창일 3월 초순의 어느 날이었다.

2층에 전시된 ‘나라 포터블 키퍼’.


리서치를 위해 일본을 오가며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궁금합니다.
한국 사회가 일본에 대해 느끼는 양가적 감정이 있잖아요. 그게 작업의 동력이었던 것 같아요. 사적으로는 외할머니 가족이 일본으로 이주했다고 하는데 교류가 거의 없어 할머니가 돌아가실 즈음에야 그 사실을 알았어요. 이전에도 존재하지 않는 조상에 대한 생각이 있었어요. 일본에서는 5~7세기경 한반도에서 이주한 고구려, 백제인을 도래인이라고 부르더라고요. 그 이름에 대한 상상이 여행의 한 축에 있었고요. ‘도시의 비전’이라는 과제가 주어졌기에 여러 장소를 방문했지만 언어의 벽에 부딪히다 보니 관광객 위치를 넘어 접근할 수 없었죠. 그러한 한계는 한 걸음 더 들어가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 같아요.


기자간담회에서 사회학자 김홍중의 저서 <은둔기계> 속 문장 “자연은 아니지만 자연처럼 느껴지며, 언젠가는 소멸할 것이지만 그 소멸을 역사적으로 상상하기 힘든 세계”를 인용하며 전시의 세계관과 부합하는 표현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김홍중 교수는 이를 ‘타연’이라 명명하며 21세기 테크노 자본주의 문명을 설명했죠.
리서치를 시작하고 역사 감정이 왜 계속해서 현재로 돌아오는지 궁금했어요. 김홍중 교수는 역사에 대한 무지가 그저 현재를 즐기는 행위로 연결되는 관점을 짚어보고자 한 것 같아요. 이를 “현재의 지평선은 끝없이 확장된다”고 했는데, 현재만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는 세태에 공포를 느껴요. 미래에 대한 야심을 가지라고 말하지만, 지구 행성은 한계에 다다랐잖아요. 생명력과 무한한 확장을 향한 욕망이 나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시대예요. 2008년 개인전 <점프 컷>을 통해 근대화 과정에서 근대를 생각한 적이 있는지 주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면, 이제는 능동, 수동과 같은 이분법적 관계에서 벗어나 그 사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주목해야 할 때가 왔어요. 관점의 변화를 도모할 나이가 된 거죠. 


그간의 변화에 대한 좋은 답변이 될 것 같습니다. 1층의 ‘솔라리스’는 전시의 세계관을 느끼게 하는 도입부 역할을 하는데요. 외계 행성과 도다이지를 겹쳐놓는 아이디어는 어디서 출발했나요?
전시 조건이 정해지면 장소에 대한 역사와 맥락을 탐구해요.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교대> 전시 때도 관계 없는 포석정을 끌어왔어요. 미술관에 별자리 모양의 광장이 있었고, 거기에 신라 왕조 멸망의 징조와도 같은 포석정을 가져온 거죠. 비논리적인 대상을 왜 끌어오냐고 묻지만, 전혀 관계없다고 여겨지는 것을 나란히 둘 때 무엇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연결인지 생각해볼 수 있어요. 도다이지 역시 충돌을 유발한 결과예요. 관광객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관광객은 이념이나 정체성을 초월해 기꺼이 타자가 되려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도다이지를 찾은 관광객은 세속적인 일상에서 신성한 것을 체험하는 사람들이잖아요. 또 십일면관음상을 법당에 숨겨뒀다는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도면을 겹쳤어요. 선형적으로 논리가 이어지지 않고 충돌하는 부분을 끌어안는 과정이 제 작업에 늘 존재해요. 


‘솔라리스’에는 코르크, 테라코타 가루, 황토 분말 등 다양한 재료가 사용되었는데 설치 과정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설치미술은 숙명적으로 그 환경에 대한 비전을 담을 수밖에 없어요. 가루 흙이 물을 만나면 형상을 얻을 수 있잖아요. 가루 상태의 질료는 무언가로 변신할 수 있는 잠재력, 변환의 힘을 품은 상태인 거죠. 테라코타 가루를 만드는 과정은 긴 시간과 인내를 요구해요. 옹기토를 수제비처럼 뜨고 말려서 빻은 뒤 체에 걸러 가마에 굽는데, 가마 온도에 따라 색이 달라져요. 보통 흙은 빚어서 무언가를 담는 용기로 만들지만 가루 상태를 제시함으로써 미세한 흔적에도 예민한 일시성과 잠재력을 드러냈어요. 일종의 흙의 몽상 같은 거죠. 

‘삼체문제’, 2024~2025, Acrylic paint, fabric ink on printed silk, wood panel, 130×263cm. ‘S.O.S.-달려라 신신’ 퍼포먼스에 활용된 ‘거울 오미코시’. 3 유리로 제작한 ‘동해 포터블 키퍼’와 테라코타 가루로 덮은 ‘서해 포터블 키퍼’.


1층 전시실 입구 맞은편의 둔덕은 바닥에 조명이 어른거리고 붉은 테라코타 가루로만 덮여 있어요. 어떤 지형을 표현한 것인가요?
일본 박물관에서 조몬 시대(일본의 신석기시대) 토기를 보았는데 꼭 불의 형상같더라고요. 당시 유물인 패총(조개 무덤)과도 연결되는 작업이에요. 갑작스레 사라진 문명에 대한 상상이 이어지면서 화산 속으로 숨은 존재가 사는 무덤을 만들고 싶었어요. 테라코타 흙은 불을 거쳤으니 더는 그곳에서 씨앗이 발아하지 못할 거예요. 단절된 것에서 시작하는 상상을 한 거죠. 또 유리막 아래 어른거리는 불빛을 두어 비결정적인 상태에 대한 응시를 요청하고자 했어요.


‘솔라리스’ 곳곳에 한자와 닮은 가상의 상형문자를 스텐실로 표현했습니다. 문자 체계를 디자인하는 과정은 어땠나요?
평소 갑오징어뼈에 채색도 하고 프로타주나 탁본하듯 찍어내기도 했어요. 갑오징어뼈를 찍으면 표면의 패턴이 꼭 지문처럼 읽혀요. 그 형태를 연결하고 삭제하니 상형문자 같아 보였고요. 12개 문자를 만들었고, 형상을 보며 두려움, 희망 등 의미를 부여했어요.


한국에서 ‘황해’는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단어입니다. 2층에 ‘서해 포터블 키퍼’와 ‘황해 포터블 키퍼’가 나란히 전시되어 있는데요. 테라코타 가루로 작업한 비슷한 형상의 ‘포터블 키퍼’를 왜 두 종류로 완성했나요?
우리는 동해, 서해, 남한, 북한처럼 방위로 이야기하는 현실을 살고 있어요. 여기서 서해와 황해는 방위와 색깔을 담은 단어예요. 테라코타 가루에 내재된 의미를 밝히고자 했고, 유사성을 표현함으로써 변환하는 힘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싶었어요. 차이점은 ‘황해 포터블 키퍼’ 표면에 패턴이 있어요. 이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보면 불확정적 순간의 느낌이 잘 전달될 수 있을지 궁금했어요. 


둘 중 어떤 걸 먼저 완성했나요?
지난해 3월 일본 전시에는 서해, 동해, 나라 포터블 키퍼를 전시했어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황해를 완성한 거죠. 황색의 의미는 극과 극이에요. 황제의 색인 동시에 재앙을 상징하고요. 그래서 ‘황해 포터블 키퍼’를 통해 정치적, 지리적 감각에 대한 질문을 던졌어요. ‘나라 포터블 키퍼’는 도다이지에서 불의 축제를 보고 전시장에 제의적 공간을 겹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의 결과예요. 본래 전시를 9월로 제안받았는데 3월을 택한 이유도 3월 12일까지 도다이지에서 이 축제가 열려서예요. 그곳에서는 각기 다른 배경을 지닌 관광객들이 향나무 냄새를 맡고 불꽃을 가까이하며 질병을 멀리하고 봄을 맞이할 수 있다고 믿어요. 인간의 이런 제스처와 감각이 불확실한 현실을 어떻게 고려하는지 톺아보고 싶었어요.


도쿄 <하이퍼 옐로우> 전시에서는 사각형 전시실의 3면 벽에 ‘동해사’를 영사했어요. 이번에는 사다리꼴처럼 벌어진 형태로 배치했습니다.
도쿄 전시장에 야카타부네(일본의 전통 유람선)와 닮은 좁고 긴 전시실이 있어서 선택했어요. 배를 탄 것처럼 감정이 고양되는 환경이었죠. 일민미술관은 1, 2, 3층 구조인데, 2층은 완결된 형태보다 지상과 천상 사이 중간 지대의 모양새가 어울리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닫힐 수도 열릴 수도 있는 팔 벌린 날개 형태로 설치했어요. 무엇보다 큐레이터 팀이 공간에 대해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들과의 대화에서 지금의 형상이 나왔다고 할 수 있어요. 큐레이토리얼십이 강한 팀과 전시한 경험이 각별해요.


‘동해사’ 말미에 주인공인 십일면관음은 물에 잠긴 스미다 강변에 이릅니다. 현대인이 다다를 미래가 이런 광경일까 상상했어요.
도쿄에서 스미다 강변의 아사쿠사라는 지역을 다니다 유람선을 탔어요. 배가 도쿄만에 닿을 때 보니 오다이바 자유의 여신상이 등을 돌리고 있더라고요. 왜 자유의 여신상이 바다를 향하지 않을까. 무한한 자유가 더 이상 지구와 공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물에 잠긴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상념으로 이어졌어요. 미래를 생각했다기보다 노을이 아름다워서 멜랑콜리한 생각이 피어났나 봐요.

작가의 스튜디오 진열장 속 물건을 옮겨둔 ‘정원과 작업장’.

3층 안쪽 전시실의 ‘S.O.S.-달려라 신신’은 배치상 전시의 마무리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인간은 왜 배를 향해 손을 흔들까?’라는 자막을 읽고 여행의 기억을 떠올렸어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찾았나요?
왜 어떤 제스처는 감정을 유발하는지, 이상하지 않아요? 아직 수수께끼는 안 풀렸어요. 사실 예전부터 궁금했던 질문은 아니고, 교복 입은 학생들이 배를 향해 손 흔드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어요. 이전 작업에서 이산가족이나 민간인 학살 문제를 공부할 때 작별하는 순간을 제대로 맞이하지 못하면 그 시간에 멈춰 있을 수밖에 없다는 난제를 목격했어요. 그래서 손을 흔드는 제스처가 나침반 바늘 같다고 생각했어요. 누구에게나 가슴 아픈 작별의 순간이 아직 멈추지 않은 나침반 바늘처럼 마음속에서 떨고 있지 않을까요.


영상에서 더 이상 만나지 못하는 친구에 대한 이야기와 김민기 선생의 곡 ‘친구’가 연결됩니다. 장영규 음악감독과의 2인전 <교대>에서도 김민기 선생의 작업이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요. 이 요소들은 어떻게 연결되었나요?
친구와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선장의 대사는 철학자 김영민의 저서 <동무와 연인>에 소개된 시인 김지하와 월북한 친구 윤노빈의 이별을 각색했어요. 영영 만날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친구와 김지하 사이에 흐르는 침묵, 그 장면을 오래 품고 있었어요. 또한 장영규 음악감독과 나 사이에는 늘 김민기가 있어요. 2인전에서 비밀리에 제작된 노래극을 중심으로 영상을 만들었다면, 이번에는 장영규 씨와 내가 공통으로 주목한 김민기의 목소리를 작업에 감히 가져오고 싶었어요. 우리가 김민기의 무엇을 좋아하는지 생각하면, 민중가요나 업적보다 그의 목소리가 중요했어요.


한강에서 진행한 ‘S.O.S.-채택된 불일치’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한국 관객이 도쿄의 지리적, 역사적 특수성을 알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또한 일본어, 프랑스어와 한국어 노래 등 다양한 언어의 혼재가 관광객 정체성을 강화하는데, 이 같은 흐름은 어떻게 구상했나요?
구상이랄 게 없었어요. 바라보는 사람, 그게 나예요. 스미다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관광 포인트를 지나다 강이 바다와 만나는 두물머리 지형을 바라봤어요. 물이 갈라지는 지점이 이별의 은유로 다가와 ‘S.O.S.’를 한 번 더 하자고 생각했고요. 한강 작업의 구조를 일본 버전으로 바꾼 거죠. 두물머리처럼 물이 갈라지는 노들섬에서 연인이 배회하는 장면이 나왔으니, 일본은 파리 광장 이름에 맞춰 파리에서 유학 온 커플로 각색했어요. 그 학생들은 도쿄예술대학의 실제 유학생들이에요. 이렇게 우연이 층층이 쌓여 있어요. 


프로젝트 당시 작가님의 위치는 어디였나요?
저는 일본인이 탄 노란 배에, 장영규 감독은 외국인이 탄 파란 배에 있었어요. 각자 음악 부스 안에서 연출과 음악 시작 사인을 주고받았고요. 기막힌 우연도 있었어요. 뒤돌아선 자유의 여신상을 향해 승무원이 S.O.S. 신호를 보내는 퍼포먼스를 했는데, 동상이 등을 돌리고 있는 바람에 우리를 구조하지 못한다는 스토리예요. 그런데 신호의 빛이 밝았는지 동상 아래 누군가 화답을 하더라고요. 촬영해달라고 연락했지만 선박 카메라맨에게 전달되지 못했어요. 그래서 퍼포먼스 기록 영상에 이런 자막이 등장해요. ‘누군가 응답했지만 알아차리지 못하다.’ 전부 허구가 아니라 실재와 허구가 혼재된 퍼포먼스예요.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작업을 갈무리한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이전에는 전시할 때마다 다음이 궁금했고, 늘 다음 작업이 베스트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번 전시는 처음으로 이래도 되나 싶게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홀가분해요. 그래서인지 잠깐 꿈을 꿨다 깨어난 느낌이에요. 

사진(전시 전경) 스튜디오 오실로스코프 자료 제공 일민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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