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째 접어든 가운데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재취임 이후 종전 협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러시아에 생산거점을 뒀던 국내 대표 가전기업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쟁 내내 러시아 가전 시장의 빈자리를 중국 기업들이 차지한 만큼 LG전자와 삼성전자의 움직임에 따라 시장 판도가 요동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양사는 다소 엇갈린 전략으로 러시아를 보고 있는 양상이다. LG가 적극적인 방향성으로 가닥을 잡은 반면, 삼성은 신중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향후 국내 가전 기업의 러시아 점유율 회복 전망이 안갯속에 빠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자업계에 따르면, 러시아 시장은 ‘구매력’으로 보면 인도에 버금가는 거대 시장이다. 러시아 인구는 1억4000만명. 1인당 국내총생산이 1만4400달러로 인도보다 높다. 시장조사업체 모르도르인텔리전스는 러시아 가전 시장이 2023년 16조원에서 2029년 19조원으로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먼저 LG전자는 전쟁의 상황이 변하자 러시아 가전 공장 일부를 재가동하며 시장 재진입 움직임을 보이며 적극적 공세에 나섰다.
2022년 8월 공장 가동을 멈춘 LG전자는 2021년 러시아 지역 매출 2조335억원으로 2019년 대비 24.4% 성장했다. 공장 중단 전까지 매출 상승세를 이어갔다. 전쟁 발발 당시 판매를 중단하면서 매출이 1조3883억원으로 떨어졌고, 2023년 결국 공장을 닫고 제품 공급을 중단했다. 공장 문을 닫은 것은 2006년 설립 이후 16년 만이다.
그동안 LG전자는 시설을 매각하거나 양도하지 않고 필수 인력만 남긴 채 유지했다. 러시아 시장이 다시 열릴 때를 대비한 것. 지난 3월 LG전자는 모스크바주 루자 지역의 가전 공장 일부를 복원해 세탁기와 냉장고 생산을 시작했다. 공장 가동을 멈춘 지 2년 7개월 만.
LG전자는 관계자는 “법인이 보유한 재고 자재를 활용해 루자 공장에서 세탁기 냉장고 일부 물량을 생산하기 시작했다”며 “공장 가동이 장기간 중단되면서 생산설비 노후화를 방지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LG전자의 러시아 사업 재개는 올 초부터 시작됐다. 지난 1월 노영남 러시아 법인장은 현지 대형 기업 행사에 참석해 B2B(기업간거래) 홍보를 강화했다. B2B 사업은 HVAC, 옥외스크린, 디지털 사이니지 등으로 구성된 LG전자의 미래를 책임지는 중요 분야다.
또 지난 3월 러시아 정부의 제품 규격 인증을 받았다. 러시아·유라시아경제연합(EAEU) 내에서 제품을 제조·판매하기 위한 필수 증서이다. LG전자의 러시아 시장 재진출 전략의 목적으로 분석되는 부분이다.
지난해 4월 현지 러시아 대학과 협력해 냉난방공조(HVAC) 인재 양성에 힘을 쏟았고, 연방생물의학청(FMBA) 헌혈센터, 모스크바 폴리테크닉 대학, 모스크바 통신·정보학 기술 대학(MTUCI), 모스크바국립철도대학(MIIT) 등과 헌혈 캠페인을 진행하는 등 사회공헌 활동도 지속하며 사회적 입지를 다지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러시아 시장에 대해 여전히 관망세를 유지하는 모습이다. 2022년 3월부터 공장 가동을 중단한 삼성전자는 현재까지 브랜드 제품 생산을 재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삼성전자도 LG전자와 마찬가지로 공장 시설을 매각하지 않았다. 일부 라인을 모니터 및 서버 기업에 임대하는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 역시 러시아 시장 재진입을 준비 중인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러시아 정보분석기관 텔레콤데일리는 지난 1∼2월 삼성전자의 러시아 내 마케팅 활동이 전년 동기 대비 30% 증가했다며 “삼성전자가 러시아 최대 통신사인 MTS를 통해 광고에 나섰다”며 “삼성의 모든 신제품이 유럽이나 미국보다 러시아에서 며칠 먼저 나올 정도”라고 밝혔다.
지난달 28일에는 러시아 텔레그램 뉴스 채널 마시가 삼성전자 칼루가 공장 등에서 대규모 직원 채용이 있었다고도 전해졌다. 하지만 이뉴스투데이 전화 통화에서 삼성전자 관계자는 전화 통화에서 “현재 러시아 공장 관련 재가동 계획은 없다”며 “칼루가 공장 직원 채용도 사실이 아니다”라며 강력 부인했다.
삼성전자는 전쟁 전까지 러시아 스마트폰 시장에서 30% 점유율을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지만, 현재는 중국 샤오미(23%)가 선두를 차지하고 있다. LG전자 역시 세탁기 냉장고 등 가전 시장에서 25%의 점유율을 기록했지만, 지금은 판매량과 매출액 모두 1위를 차지한 중국 ‘하이얼’에 자리를 내줬다.
이 같은 배경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외국 기업들이 러시아에 대한 공급을 제한하고 현지 사업을 철수한데 이유가 있다. 했다. 아울러 러시아 정부는 수요 대응을 위해 병행수입을 허가하고, 우호국인 중국·튀르키예 등으로부터 수입을 대폭 늘렸다. 특히 부족한 국내 생산량을 중국 공장에 위탁생산(OEM) 주고 있어 중국 제품 점유율이 크게 증가했다.
현재로선 LG전자와 삼성전자 모두 러시아 시장에서 다시 입지를 굳히려면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LG전자와 삼성전자가 러시아 시장에서 점유율 회복을 위해 사활을 걸고 있지만, 중국 업체들의 시장 장악력이 높아진 만큼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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