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양우혁 기자】 현대제철이 철근 가격 하락과 공급 과잉, 건설 경기 침체 여파로 이달부터 인천 철근공장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앞서 미국 루이지애나주에는 58억 달러(약 8조5000억원) 규모의 전기로 제철소 건설 계획을 발표하며 해외 투자에 나선 상황이다. 생산 품목은 다르지만 국내 설비는 멈추고 해외 투자가 확대되면서, 제조업 기반의 ‘탈한국’ 흐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2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 인천 철근공장이 지난 1일부터 전면 셧다운에 들어갔다. 창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현대제철은 철근 생산을 멈춰 시장을 안정시키고 누적된 적자 폭을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인천공장은 연간 철근 150만톤, 형강 200만톤을 생산하는 현대제철의 핵심 생산기지로, 건설·기계·조선·에너지 등 다양한 산업에 쓰이는 봉형강 공급의 중추 역할을 해왔다.
이번 감산은 글로벌 경기 둔화, 중국발 공급 과잉, 국내 건설 경기 침체 등이 맞물린 결과다. 실제로 철근 가격은 손익분기점인 톤당 70만원 선 밑으로 떨어진 상태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국내 철근 수요는 2021년 1132만톤에서 지난해 798만톤으로 30% 가까이 줄었다. 또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올해 건설투자가 전년 대비 2.1%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현대제철은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철근 가격이 일정 수준을 회복할 때까지 탄력적으로 생산을 조절할 방침이다. 앞서 지난 14일에는 비상경영을 선언하고, 임원 급여 20% 삭감, 50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한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 접수를 시작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도 나선 상태다. 현대제철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595억원으로, 전년(7983억원) 대비 80% 가까이 급감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전기료, 인건비, 환율 등 제조 원가는 계속 오르는데, 건설 경기 침체로 수요는 줄고 있어 제품 가격은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며 “철근은 만들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여서, 결국 공급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수요 급감과 제조비용 상승, 노사 갈등 등 복합적인 어려움에 직면한 현대제철은 해외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회사는 오는 2029년 상업 생산을 목표로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연간 270만t 규모의 자동차강판 특화 전기로 제철소를 신설할 계획이다. 총 58억 달러(약 8조5000억원)가 투입되는 이번 투자는 현대차·기아 등 북미 완성차 업체에 고품질 냉연강판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현대제철은 에너지 비용이 상대적으로 낮은 미국에서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한편, 멕시코·브라질 등 중남미와 유럽 시장까지 겨냥해 수출 거점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전기로 기반의 생산 공정은 국내보다 미국이 더 유리한 환경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미국은 한국에 비해 산업용 전기요금이 약 40% 저렴하며,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루이지애나는 50개 주 가운데에서도 산업용 전기요금이 가장 낮은 지역 중 하나로 꼽힌다. 전기로 비중이 높은 현대제철은 2023년 산업용 전기료 지출이 1조84억원에 달해 국내 기업 중 세 번째로 많았다. 이 때문에 전기요금이 저렴한 미국에서의 생산은 현대제철에 원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처럼 기업들이 비용 절감과 시장 대응을 위해 해외 생산에 무게를 싣는 흐름은 앞으로도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국내 경영환경이 갈수록 악화되는 데다, 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 기조까지 겹치며 기업들이 미국 등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진단한다. 이 같은 흐름이 본격화되기 전에 정부가 기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국내 경영환경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단기간에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국내 기업들의 미국 이전이 지속될 경우 산업 공동화와 같은 중장기적 부작용이 현실화될 수 있다”며 “한국의 반(反)기업 정서와 강성 노조 문화로 인해 글로벌기업들조차 투자를 주저하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까지 본격적으로 이탈하기 전에 정부가 기업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실효성 있는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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