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구씨 작가] 아주 좋은 레지던시에 좋은 기회로 들어오게 되었다. 방별로 배치된 개수대를 보며 문득 2년 전 새로운 작업실을 구하던 고군분투가 떠올랐다.
‘개수대가 내부에 있는 곳!’
작업실 내의 개수대는 사치 없는 우리의 몇 안 되는 조건 중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내부에 개수대 설치가 가능한 15평 정도 지상 사무실(?)을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지하 매물을 피해 개수대가 설치 가능한 곳을 몇 번의 발품을 통해 발견했다. 해가 잔뜩 들어오는 지상 공간은 저 멀리 공용 주차장이 잘 보이는 공간이었다. 차에 반사되는 무수히 많은 햇빛을 윤슬이라 부르며 ‘뷰가 좋다’는 말을 장난처럼 내뱉고 껄껄거렸다.
작업실을 구하고 곧이어 쿠팡으로 중국산 개수대 하나를 구매했다. 10만 원쯤 되는 스탠으로 된 개수대는 튼튼한 사진과 달리 실물은 조금은 엉성했지만, 그 개수대로 우리는 2년을 살았다. 구석 바닥에 제 구실을 못하던 못난 배수 구멍도 그제야 자기 역할을 찾은 듯했다. 여름에는 조금 따뜻한 물이 겨울에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이 나왔지만, 개수대에서 흙 묻은 물통을 씻었고 걸레를 빨았고 손님용 컵을 닦았다. 재료에 더럽혀진 손을 씻었고 브리타에 물을 넣기도 편했다. 그 작고 삐뚤한 개수대를 참 잘 썼다.
레지던시에 들어와 공간에 떡하니 자리 잡은 개수대를 보니 감사하고 기뻤지만 이렇게 당연한 환경이었다는 것이 미세하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크지 않았지만 꽤 층고가 있는 방은 깔끔한 화이트벽에 냉난방이 되는 구조에 개수대와 창문이 있었다.
‘이게 기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어지러워졌던 것은 내가 어느 시점부터 당연한 것을 포기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깨닫는 과정은 인지하는 것보다 먼저 다가왔고 약간의 어지러움이 있었다.
마치 기본적인 재료나 공구의 부족으로 어쩔 수 없이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게 되었을 때 가까운 어딘가에서 뚝딱거리며 행사 준비를 하는 장면을 마주친 것과 비슷했다. 2-3m 높이에 못 올라가서 쩔쩔매고 있는 내 앞으로 큰 쇠관들을 마구 용접해서 하루아침에 차가 지나다닐 수 있는 정도의 되는 멋진 행사구조물을 만드는 광경. 나와는 하등 관련 없다고 생각되는 그런 일들에 왜 이렇게 마음과 머리가 세게 맞은 것처럼 어지러운지 잘 모르겠다.
앞으로 나에게 당연한 것들을 생각하며 조금이라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궁리도 조금 해보고 싶다. 평범하게 맛있는 음식과 멀지 않은 곳으로 즐거운 여행을 가는 것. 그것이 내가 작업을 하면서 병행하고 싶은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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