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을 두려워하는 건 나태함, 상상력과 창조에 대한 신념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패션 브랜드로 유명한 '샤넬'이 남긴 말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성공적인 패션디자이너로 추앙받는 샤넬은 1883년 미혼모의 딸로 태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떠돌이 행상이던 어머니가 두 살 때 세상을 떠나자 고아원에서 자란 샤넬의 원래 이름은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Chanel)이다. 하지만 지금은 '코코 샤넬'(Coco Chanel)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샤넬은 가수 시절 부른 노래 두 곡으로 '코코'라는 예명을 얻었다. 두 곡의 노래는 '코코리코(Ko Ko Ri Ko)'와 '누가 코코를 보았는가?(Qui qu'a vu Coco?)'였다. 그러나 그녀의 가수 생활은 불우한 어린 시절 처럼 실패로 끝났다.
사넬의 패션 디자이너로써 첫 아이템은 '모자'였다. 1906년부터 1910년까지 프랑스 콩피에뉴 지방에서 살았던 그녀는 이때 친구들을 위해 모자를 디자인하다가 첫번째 의상실을 열었다.
그녀의 의상실에 자금을 빌려준 것은 연인이며 영국의 부유한 광산업자였던 보이 카펠(Boy Capel)이었다.
샤넬은 첫 의상실을 연 후 불과 5년만에 재봉사 300여명을 둘 수 있었다. 게다가 카펠에게 빌린 돈을 모두 갚아 그를 놀라게 했다.
20년 후 샤넬은 종업원 4000여명을 거느리고 세계 각국에서 고급 의상을 판매하는 디자이너로 우뚝 섰다.
1955년에는 패션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가장 영향력 있는 20세기 패션 디자이너' 상을 받았다. 또한 타임지에서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20세기 인물 명단에 패션 디자이너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1921년 샤넬이 창조한 '샤넬 넘버 5' 향수병은 현재 뉴욕 현대 미술관에 영구 전시품으로 진열돼 있다.
이 향수는 샤넬과 동시대 전성기를 구가하며 '세기의 스타'로 불린 미국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의 일화로도 유명하다.
1952년 먼로의 이야기를 담은 '라이프' 매거진에서 "잘 때 어떤 옷을 입나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샤넬 넘버 5만 입어요"라는 대답과 이 향수를 뿌리는 사진이 함께 게재되면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샤넬이 디자인한 옷들은 당시에는 획기적이었다. 불필요한 장식이 없고 기능성에 초점들 둔 그녀의 디자인은 '기존 유행을 본질적으로 타파하는 여성 복식의 혁명'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같은 샤넬 스타일은 '리틀 블랙'(Little Black) 드레스, 모직의 일종인 '트위드'(Tweed) 정장 등으로 불리며 1920년대 세계 각국의 전문직 여성들에게 일종의 제복처럼 여겨졌다.
무릎에서 10cm 정도 내려오는 샤넬 스커트 역시 파격적이었다. 당시 사회에서는 여성의 치마가 너무 짧다며 논란이 됐던 것이다.
샤넬이 당시 사회의 금기를 패션으로 깨뜨린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여자들에게 바지를 입혔고, 발목에 끈이 달린 구두를 신겼다.
모두 여성들의 활동성을 강조한 파격이었다. 게다가 몸에 달라붙는 재질의 천으로 만든 수영복은 여성의 몸매를 드러내게 해 당시 사회의 금기에 도전했다.
사넬은 옷의 모양보다 기능에 초점을 둬 깔끔하고 장식없는 스타일을 창조했다. 샤넬의 옷은 당대에는 금기를 깨뜨린 창조물이었다.
'샤넬 스타일'은 논란의 대상이 됐지만, 그녀의 성공을 따라하는 모방 제품들도 수없이 생겨났다. 샤넬은 다른 디자이너들의 모방에 대해서 관대했다. 오히려 자신의 스타일을 모방하는 것을 반겼다. 모방의 대상이 된다는 게 자신의 디자인 스타일의 인기를 방증한다고 생각했다.
"머리속의 아이디어를 나 혼자 모두 구체화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이 나의 창조물을 모방하는 걸 보면 오히려 기쁘다. 어떤 건 내 생각보다 훨씬 뛰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지금도 전 세계 패션업계에서는 샤넬의 성공 요인을 남다른 사고와 실행력으로 꼽고 있다. 관습과 금기에 대한 그녀의 도전 의식이 성공의 견인차가 됐다는 것이다.
금기에 도전하는 그녀의 의식은 사생활로도 이어졌다. 여러 자료에 따르면 그녀는 수많은 남자들과 연인이 되고 관계를 맺었지만 당시 당연시 되던 결혼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샤넬은 말했다. "재단사처럼 매장 뒤에 숨어있는 게 디자이너들의 일상이었지만 나는 내 옷을 입히는 고객들과 직접 만나 적극적으로 취향과 욕구를 공유했다."
지금 사람들에게 샤넬은 프랑스 대표 패션 디자이너이자 명품의 대명사로 추앙받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반항 정신'과 '남들과 달라질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여성으로 기억하기도 한다.
'샤넬' 브랜드의 인기는 현재도 전 세계 각국에서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샤넬코리아가 공시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올린 매출만 1조8000억원이 넘는다. 국내 경기의 침체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전년보다 8% 증가한 수치다.
샤넬코리아 관계자는 최근 언론 등을 통해 "어려운 경제 상황에도 지난해 견고한 매출 성장을 달성했다"며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대한 신속한 적응과 샤넬의 유산 및 장인정신을 보존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밝혔다.
관습과 금기에 대한 샤넬의 도전의식이 그녀가 활동하던 시대를 140여년 넘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배충현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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