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양군을 강타한 대형 산불이 한 마을의 상징과도 같았던 사찰을 집어삼키고, 그곳을 지키던 주지 스님의 목숨까지 앗아갔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 25일 발생한 산불로 영양군 석보면 법성사에서 주지 선정스님(85)이 소사 상태로 발견됐다.
27일 경북 영양군 석보면 법성사 대웅전이 화마로 인해 무너져 있는 모습 / 연합뉴스
27일 현장을 방문한 취재진에 따르면, 법성사 일대는 화마가 휩쓸고 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사찰의 중심인 대웅전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고, 연기는 화재 이틀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남은 건물은 극락전 등 단 2채에 불과했다.
대한불교법화종에 따르면, 선정스님은 2002년 법성사 주지가 되기 전부터 이곳에서 수행 공부를 해왔다. 홀로 사찰을 지키던 선정스님은 화마가 덮친 다음날인 26일 대웅전 옆 건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진득 화매1리 이장은 "오래전부터 혼자 사찰을 지키셨다"며 "부처 그 자체였던 분"이라고 회상했다. 유년 시절부터 스님을 보고 자란 김 이장은 마을의 큰 어른을 잃은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김 이장은 화재 당시 상황에 대해 "순식간에 불씨가 산을 타고 넘어왔다"며 "5분 만에 동네 전체가 불바다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찰이 산속에 있어서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고 소방관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며 스님을 대피시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주민들은 선정스님을 마을의 정신적 지주로 여겨왔다. 한 주민은 "스님은 혼자 사는 분들을 재워주거나 음식을 나눠주기도 했다"며 "늘 남에게 베풀었다"고 눈물 지었다.
산불로 폐허가 된 법성사 건물 / 연합뉴스
이번 산불은 경북 의성에서 시작해 북동부권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영양군에 따르면 지난 25일 오후 6시쯤 석보면 일대에 정전이 발생해 화매리, 삼의리 등에 무선 통신이 끊기기 시작했다. 화재 현장은 접근조차 어려웠고, 소방관들 또한 즉각적인 진입이 불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산불은 법성사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에도 큰 피해를 입혔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번 화재로 영양군에서만 총 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석보면 삼의리 이장 부부는 지난 25일 화재 속에 고립된 주민을 구하려다 변을 당했다. 석보면사무소 관계자는 "통신 두절로 직접 마을을 돌면서 주민들을 대피시키려고 하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현재 경북 지역의 산불 피해 규모는 계속 집계 중이며, 당국은 산불 진화 작업과 함께 이재민 지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발표에 따르면 27일 오전 6시 기준 산불 사태로 인한 인명피해는 사망 26명, 중상 8명, 경상 22명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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