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사조그룹은 지난해 2월 글로벌 소재 기업 인그리디언코리아(현 사조CPK)를 인수하면서 '중대재해 사법 리스크'도 함께 덤으로 얻게 됐다.
인그리디언코리아는 국내 전분당업계 점유율 2위 업체로, 인수 당시 오너3세 주지홍 사조그룹 식품부문 총괄부회장이 인수합병(M&A)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업체가 운영하는 인천시 부평구 소재의 전분제조공장 저장고에서는 지난 2022년 4월 하청 근로자 A씨가 옥수수에 매몰돼 사망하는 중대재해 사건이 발생했다.
검찰에 따르면 당시 A씨는 옥수수 투입구의 막힘 해소 작업 중 갑작스레 뚫린 구멍 안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옥수수 더미에 매몰돼 숨진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사건은 좀처럼 결착을 짓지 못하고 3년 넘게 법정 공방을 이어오고 있다.
<뉴스락>은 판결이 늦어지고 있는 사조CPK 전분제조공장 저장고에서 발생한 중대재해 사건을 파헤쳐봤다.
기소만 20개월 걸려... 중대재해에도 '급' 따진다?
인그리디언코리아(현 사조CPK) 전분제조공장 저장고에서 발생한 '하청 근로자 A씨의 옥수수 매몰 사망 사건'의 법정 공방은 사고 발생이 1년 반이 지나서야 시작됐다.
2023년 12월 29일 인천지방검찰청의 기소를 받으면서 재판에 돌입했다.
사조가 받는 혐의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이다.
구자규 인그리디언코리아 전 대표와 공장장, 하청업체 대표와 현장소장 등 4인과 두 법인이 재판에 넘겨졌다.
사고 발생 시점은 2022년 4월 첫 재판이 진행된 건 2024년 4월로 이들이 재판장을 오가기 시작한 건, 사고가 발생한 지 약 2년이 되는 시점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2022년 1월 시행됐으니, 전분제조공장 사망사고에 법정공방은 이 법과 궤를 같이 하고 있는 셈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목적은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위반해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 경영책임자, 공무원 및 법인 등의 처벌을 규정해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시민과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한 의무를 지키지 않은 사업장에서 산업재해로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이 발생할 경우,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하면 적용한다.
처벌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 혹은 10억원 이하의 벌금, 법인에는 50억원 이하의 벌금형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행 3년차에 접어든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법조계에서조차 기소까지 걸리는 시간, 심리 기간, 선고 등이 상당히 느리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조CPK의 중대재해 사건의 경우에도 중부지방고용노동청 광역중대재해수사과가 먼저 수사를 진행했고, 2023년 2월 인천지방검찰청(이하 인천지검)으로 이첩된 이후 약 10개월간의 추가 수사 끝에 기소가 이뤄졌다.
사건이 법원에 접수되기까지 약 20개월이나 걸린 셈이다.
올해 1월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3년 무엇이 법을 멈추는가?' 토론회에서는 지난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돼 재판에 넘겨진 사건들에 대한 수사·기소·재판에 대한 분석이 공개됐다.
이에 따르면 재해 발생일로부터 기소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16개월, 검찰의 기소 시점부터 재판부가 판결을 내리기까지 소요되는 심리 기간의 평균은 10개월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를 대입하면 사조CPK의 중대재해 사건은 기소까지 평균보다 4개월 더 걸렸고, 심리에서는 평균 대비 6개월 이상 늦어지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토론회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 초기에는 기소가 빨랐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여론의 관심이 적을수록 수사 기간이 늘어나고 있다는 평가와 함께 수사당국의 의지에 따라 기소까지의 기간이 짧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대형 화재로 수십명이 목숨을 잃은 1차 전지 업체 아리셀 사고의 경우 수사·기소까지 소요된 기간이 단 3개월, 1호 기소사건인 두성산업은 4개월, 과거부터 사고가 반복된 영풍석포제련소도 9개월로 비교적 짧았다는 것이 근거로 제시됐다.
이와 관련해 사조CPK 관계자는 <뉴스락> 과의 통화에서 "중대재해 재판 건은 인수 이전에 발생한 사안으로 자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이 어렵다"고 일축했다.
'김앤장이 14명'... 사조CPK, 초호화 변호인단으로 대응
인수 전 사건으로 확인이 어렵다는 말과 달리 사조CPK의 법정 대응은 엄중하다.
중대재해 사건 재판에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이하 김앤장)의 변호사 14명으로 구성된 '초호화 변호인단'을 동원하고 있다.
변호인단에는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검사장 출신의 권익환 변호사 ▲의정부지방검찰청 고양지청장 출신의 이문한 변호사 ▲대구지방검찰청 의성지청장 출신의 전형근 변호사 ▲광주지방검찰청 순천지청장 출신의 김욱준 변호사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 출신의 박찬익 변호사 등이 포함됐다.
함께 기소를 받은 하청업체도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로펌인 법무법인 세종의 변호사 11명을 선임해 대응하고 있다.
해당 사건 재판에 참여하고 있는 대형로펌 변호인만 25명인 셈이다.
앞서 지난해 6월 대형 화재로 수십명의 사상자를 낸 아리셀이 김앤장 변호인을 선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피해자 가족들 사이에서는 아리셀이 초호화 변호인단을 구성해 향후 수사에서 책임을 최소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반발이 나온 바 있다.
아울러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도 중대재해 사건에서 기업의 대형로펌 선임이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은 고용노동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김민석 고용노동부 차관에게 질의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입건된 제조업 대기업 10곳 중 7곳 가까이는 국내 10대 대형 로펌을 선임해 경영진 처벌을 빠져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2023년까지 2년간 발생한 중대재해 사건은 총 510건으로, 입건자 수는 1000명 이상으로 파악됐다. 이중 345건(67.6%)가 변호인을 선임했는데, 김앤장·광장·태평양·율촌·세종 등 국내 10대 대형로펌 선임 비율은 238건(47.6%)에 달한다.
특히 전체 510건 중 제조업에서 발생한 중대재해 사건은 270건으로, 이 중 근로자가 1000명 이상인 기업에서 발생한 사고는 84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54개(64.3%) 기업이 대형로펌을 선임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 의원은 "기업이 고위 경영진의 형사처벌을 막기 위해 대형로펌 선임에만 돈을 쓰고, 실제로 사고 예방에는 예산 집행이 저조한 것 아닌가 이런 의심이 든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이 대형로펌의 배만 불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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