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잃은 게 아니라 빼앗긴 거예요'...고아로 둔갑해 해외 입양된 '실종' 아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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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잃은 게 아니라 빼앗긴 거예요'...고아로 둔갑해 해외 입양된 '실종' 아동들

BBC News 코리아 2025-03-26 14:27:32 신고

3줄요약
해외로 보내진 아이들
Anuual report of adoption center (Denmark, 1984. 12)/진실화해위원회
진실화해위는 26일 '해외입양 과정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1960∼1990년대 해외 입양 아동들이 입양 과정에서 국가로부터 인권을 침해당했다고 밝혔다

"경하야, 너희 집에 동생 태어났지? 네 엄마가 아기 낳아서 이제 너 필요 없대. 그러니까 나 따라와."

한 아주머니가 집 앞에서 놀고 있던 여섯 살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아이는 아주머니와 기차를 탔고 눈을 떴을 땐 종착역에 도착해있었다. 아주머니는 사라진 뒤였다.

길을 잃은 아이는 가까운 경찰서를 찾아 엄마를 찾아달라고 말했지만 제천의 한 고아원으로 넘겨졌다. 그리고 약 7개월 뒤,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가정으로 입양됐다.

그렇게 1975년 충북 청주에서 신경하 씨는 실종 상태로 가족과 생이별을 했다.

신 씨의 어머니 한태순 씨(73)는 그날 이후 하루도 마음 편히 눈을 붙인 적이 없었다. 두 세 시간 거리의 경찰서를 매일 찾았고, 전단지를 돌리고 방송에 출연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러던 중 지난 2019년, 한 씨는 DNA 정보를 통해 가족 찾기를 지원하는 '325캄라'의 도움으로 44년 만에 미국에 살고 있던 딸을 극적으로 찾았다.

44년 만에 미국으로 입양 간 딸 신경하 씨를 만난 한태순 씨
BBC
44년 만에 미국으로 입양 간 딸 신경하 씨를 만난 한태순 씨

한 씨는 하지만 딸과의 재회가 단지 기쁘지만은 않았다.

"왜 남의 애를 훔쳐다가 미국으로 보냈냐고요. 내 딸은 엄마가 평생 자기를 찾고 있다는 걸 모른 채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대요. 나는 44년 동안 딸 찾느라 온몸이 망가졌는데, 그 시간 동안 누가 내게 미안하다고 해줬나요? 아무도 없었어요."

한 씨가 딸이 입양된 사실을 알게 된 건 실종 이후 무려 44년이 흐른 뒤였다.

이러한 사연은 한 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1960∼1990년대 미국·덴마크·스웨덴 등 해외 국가에 입양된 아동들이 입양 과정에서 본래 신원과 가족 정보가 왜곡·허위 작성되고 해외 송출 후 적절한 보호조치가 이뤄지지 않는 등 인권 침해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은 내용이 담긴 '해외 입양 과정 인권 침해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진실화해위는 미국·덴마크·스웨덴 등 11개국에 입양된 367명의 입양 기록을 확보해 조사한 결과 56명의 사례에서 인권침해를 발견했다.

해외입양인 뿌리 찾기를 돕고 있는 조민호 아동권리연대 대표는 이들의 사례 외에도 "과거 한국의 불법 해외입양으로 자식을 잃어버린 수많은 가족이 있다"며 직접 상담한 피해가족 수만 해도 100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한태순 씨가 가족 사진을 들고 있다.
BBC
"애 찾으러 다니느라 발톱 10개가 다 빠졌는데도 아픈 줄을 몰랐어." 한태순 씨는 전국을 돌며 수십 년간 딸을 찾아 헤맸다.

'실종' 아동이 '고아'로 둔갑

부모는 아이를 찾고 아이도 부모를 찾았지만, 차로 약 1시간 가량 걸리는 떨어진 곳에서 서로를 찾지 못한 채 수 개월이 흘렀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의문을 제기했다.

해외입양인 쉼터 뿌리의집을 운영하는 김도현 대표는 이 사건을 '강제 실종'으로 규정하며 국가의 책임을 강조했다.

"부모가 자식을 잃은 것이 아니라, 자식이 강제로 실종된 것입니다. 자식도, 부모도 피해자예요."

그는 당시 1970~80년 대 국가가 해외입양 수요를 맞추기 위해 고아를 만들어 냈다고 주장했다. 입양 산업에서 아이들이 하나의 상품으로 팔려 나갔고, 부모는 잃어버린 아이에 대한 죄책감을 평생 지고 살았다고 덧붙였다.

이경은 서울대학교 국제법 박사 또한 "입양특례법이 시행되는 2012년까지 기아 발견에 의한 고아호적 발급 숫자와 국외입양 아동의 숫자는 놀랍도록 유사하다"며 "과거 한국에서 국제입양이 가정이 필요한 고아들에게 가정을 찾아주기 위한 절차였는지, 아니면 국제입양을 위한 고아를 만들어 내기 위한 절차였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고 지적했다.

고아호적이란 버려진 아이의 성과 본을 창설해 부모 정보 없이 아이 단독으로 만들어진 신분을 뜻한다.

해외 입양 절차에서 고아를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이유에 대해 한국 최대 입양알선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일했던 노혜련 숭실대학교 명예교수는 "당시 부모가 있는 아이는 입양을 보내기 힘들기 때문에 편의상 허위로 고아로 만들어 입양을 보낸 것"으로 추정했다.

한편 1970년대 홀트 회장을 지낸 부청하 씨는 BBC에 "당시 70년대는 90%가 버려진 아이들이었고, 부모가 있는 아이는 해외입양을 보내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불법적으로 고아를 만들어 해외입양을 보냈다는 의혹에 대해 반박했다.

'17만 명의 아이들이 국외로...'

해외입양은 1950년대 전쟁 고아와 외국군인과 한국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아동을 구제하기 위한 명분으로 시작됐다. 1961년 고아입양특례법이 도입되고, 1976년에는 입양특례법이 제정되면서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는 입양알선기관의 해외입양 활동을 허가하고 감독했다.

이후 1980년대 한국의 빠른 경제 성장과 더불어 해외 입양된 아동 수가 최고조에 달했다. 1985년에는 한 해 동안 8800명 이상의 아동이 해외로 입양됐는데, 이는 당시 출생아 100명 중 약 1.3명에 해당하는 수치다.

1990년대에 들어서며 해외 입양 아동 수는 점차 감소하기 시작했다. 1990년에는 2962명이 해외로 입양됐고, 2012년 입양 특례법 개정 이후에는 더욱 줄어들어 2023년에 단 79명만이 해외 입양을 갔다.

한국은 70년 넘게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아동을 해외로 입양 보낸 국가로, 2022년까지 약 17만 명(민간 추산 20만 명)의 아동을 해외로 보냈다.

그런데 2022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국제 입양 과정의 인권침해 실태조사 연구용역보고서에 따르면 "입양아 부모의 60% 이상이 입양의 의미와 영향에 관해 잘못된 정보를 전달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입양에 동의하지 않았고, 아이를 버린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수많은 아이들이 국경을 넘어가던 그때, 결정의 키를 쥐고 있었던 건 누구였을까?

'국가는 선장, 입양 기관은 노를 저었다'

전두환
Getty Images
1980년대 전두환 정권 하에서 한국 아동의 해외입양은 최고조에 달했다

해외입양 연구 전문가들은 국가와 입양 기관이 해외입양에 대한 책임을 공동으로 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경은 서울대 국제법 박사는 고아호적 제도가 유기된 아동 보호를 목적으로 시작됐으나, 입양 기관들이 이를 악용하고 국가는 이를 묵인하며 불법과 탈법이 자행됐다고 전했다. 국가는 입양 기관에 아동에 대한 전적인 권한을 부여했고, 이 권한은 후견권으로 친권을 대체할 수 있는 권리였다.

이처럼 국가가 해외입양에 대한 제도적 절차를 만들어 놓고, 실제 수행은 입양기관이 담당할 수 있도록 허락하면서 "서로의 책임을 전가하는 관계가 오래 유지됐다"는 것이 신필식 해외입양 연구자이자 서경대 여성학 박사의 견해다.

"국가는 선장이었고, 입양 기관은 노를 저었습니다."

신 박사는 국가가 일 년에 해외입양 가능한 아동의 수를 정하거나 특정 국가에 대한 입양 송출을 전면 중단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며 정책적으로 해외입양에 개입해왔다고 전했다. 해외입양 업무를 소수의 민간 기관에 맡기고 그들의 불법적 관행을 관리감독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또한 한국의 해외 입양은 단순한 인도적 차원의 아동 보호를 넘어서, 국가적 외교 전략으로도 활용됐다.

피터 뮐러 덴마크 한인 입양인 그룹인 DKRG(Danish Korean Rights Group) 공동대표는 "중국이 '판다 외교'를 통해 동맹 국가에 판다를 임대하는 것과 같이 당시 정권이 우방 국가들에 한국 아동을 할당함"으로써 국제 사회에서의 자리를 공고히 하고, 경제·외교적 지원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한국 보건복지부는 BBC가 과거 해외입양 문제와 국가의 책임에 대해 묻자 "과거 해외입양이 이루어진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깊이 인식하고 있으며, 입양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고 답했다.

보건복지부 '해외입양 추진현황 및 대책', 1984년
한국 보건복지부
BBC가 입수한 보건복지부의 1984년도 '해외입양 추진현황 및 대책'에 따르면 해외 입양 추진 사유에는 아동복지증진 뿐만 아니라 "장래의 잠재적 국력신장 도모와 민간외교 증진"이 포함돼 있다. 이는 입양이 단순히 아동의 복지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 간의 외교적 이해관계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도 사용됐음을 보여준다

한국 '세계 아동 수출국 3위'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해외입양을 보내는 한국은 2022년 세계 아동 수출국 3위를 기록했다.

피터 셀만 연구자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많은 국가들이 해외 입양을 중단한 가운데, 한국은 콜롬비아와 인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아동을 해외로 보낸 국가로 기록됐다.

세계적인 저출산 국가에서 대체 어떤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되는 걸까?

"장애아동은 한 명도 입양 안 돼요. 최근 통계 보면 해외 입양은 99점 몇 프로가 건강한 미혼모 아이예요. 시설 아이 1명도 없어요. 근데 우리는 시설 아이들이 해외 입양 가는 줄 알죠?"

노혜련 교수는 최근 해외 입양에 보내지는 아이들 대부분이 1살부터 3살 미만인 건강한 아이들이라고 했다.

2012년 개정된 입양 특례법에 따라 한국 국내 시설에서 5개월 간 입양을 추진하며 아이들을 보호해야 하는데, 장애 아동의 경우 관리 및 비용 부담이 높아 입양 기관들이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애아동을 특별히 입양하려는 입양 부모는 드물고, 입양기관 또한 장애아동을 받지 않으려 하면서 장애아동이나 연령이 높은 아동에 대한 해외 입양은 어려워지고 있는 실상이다.

보건복지부는 7월 19일부터 "민간 중심의 입양체계를 공적입양체계로 개편"하면서 "입양 전반을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하고 국내입양을 활성화 하겠다"고 밝혔다.

해외입양 문제, 왜 지금도 중요한가?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 한태순 씨
BBC
한 씨는 영어를 쓰는 딸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기 위해 'I'm so sorry'를 시작으로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매일 그렇게 공부하다보니 쌓인 연습 공책만 열 권이 넘는다.

"딸을 찾아도 찾은 게 아니야."

한태순 씨는 평생을 그리워하던 딸과 재회했지만, 그 순간이 끝이 아니었다. 서로를 그리워한 세월만큼이나, 두 사람 사이엔 메울 수 없는 공백이 있었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전혀 다른 언어와 문화 속에서 살아온 모녀는 서로를 알아가는 데조차 시간이 필요했다. 언어의 차이는 마음을 전하는 데 장벽이 되었고, 감정의 골은 시간이 만든 거리만큼 깊었다.

한 씨는 44년 만에 실종된 딸을 찾고, 지난해 국가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면서 실종 아동의 불법 입양에 대한 문제를 처음 세상에 알렸다.

그는 딸을 찾은 후 5년이 지나서야 소송을 제기한 이유에 대해 "이제서야 정신이 차려졌다. 한동안 딸을 찾았다는 사실 자체에 마음이 붕 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딸의 '고아호적'과 미국으로 보내진 여권에 한국 '외교부의 도장'이 찍혀 있는 것을 보고 국가의 역할을 인식하게 됐다"며 "정부에게 책임을 묻고 싶다"고 밝혔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가족을 오랜 시간 찾지 못한 당사자와 가족분들의 심정에 깊이 공감하고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며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인 상황이므로,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며 결과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고 전했다.

해외입양 과정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한 박건태 진실화해위 조사관은 "국가가 가장 약한 존재인 영아를 한국 사회로부터 격리"했다며 "대상이 너무나도 어렸고, 한국 사회에서 영구적으로 격리된다는 점에서 가장 치명적인 피해가 발생한 사건"이라고 BBC에 밝혔다.

그리고 당시 해외입양된 아동들이 이제 성인이 되어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들은 원가족으로부터 강제로 찢어진 과거의 상처를 안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평생을 싸우고 있다.

입양인들은 지금도 살아 있으며, 대부분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덴마크 입양인 한분영 씨는 "강제 해외입양으로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들 중에는 아직도 자식과 재회하지 못한 이들이 많고, 이들에게는 지금이 아니면 영영 늦어버릴지도 모를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고 전했다.

한태순씨와 입양인이 서로 안고 카메라를 향해 밝게 웃고 있다.
BBC
한태순 씨는 해외입양아들 사이에서 '희망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그가 제기한 소송은 많은 해외입양아들에게 '나를 버렸다고 생각했던 엄마가 사실 나를 찾고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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