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사망 전에 보험금 청구권을 정리할 수 있는 ‘보험금청구권 신탁제도’가 지난해 첫 발을 뗐다. 피보험자의 사망 후 유족에게 전달될 보험금을 사전에 계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일각에서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보험사들이 잇따라 보험금 청구권 신탁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업계 최초로 미래에셋생명이 출시한 이후, 종합재산신탁이 가능한 삼성생명과 한화생명, 교보생명, 흥국생명 등도 관련 상품들을 내놓고 있다.
이런 배경으로는 금융당국의 보험금청구권 신탁 제도 허가가 지목된다. 지난해 3월 금융위원회는 보험금청구권 신탁 허용을 골자로 하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과 ‘금융투자업규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한 바 있다.
기존에는 퇴직연금이나 주식·채권과 같은 금전 재산만 신탁할 수 있었지만 해당 개정안에 따라 사망 보험금과 같은 보험성 재산의 청구권 신탁도 가능해졌다.
이는 유가족의 재산 관리와 생활 안정을 도모하는 한편, 보험금이 한 번에 지급되며 발생할 수 있는 재산 유실 위험 방지를 위한 제도다. 그러나 신탁 가능한 보험상품의 제한, 보험계약대출 금지 조항, 신탁수익자 범위 제한 등 일부 규제에 대해서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온다.
청구권 신탁, 사망 후에 초점 맞춰진 기존 방식에서 ‘진화’
기존의 보험 신탁 제도는 보험금 지급 자체를 관리하는 방식보다는 주로 상속이나 특정 목적을 위한 자산 관리의 목적으로 활용됐다. 예컨대 고액 자산가들이 상속세를 최소화하거나 유족의 생활비를 일정 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보험금을 신탁계약에 맡기는 방식이다.
주로 생명보험을 통한 상속세 납부, 자녀 교육비 지원, 부모의 요양비 지원 등이 목적이었으며, 신탁 계약을 통해 사망 후 보험금이 유족에게 일정 금액씩 분할 지급되거나 지정된 용도로만 사용되도록 관리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기존 방식은 대체로 사망 이후에 한정된 방식으로, 보험금 청구권 자체를 신탁 회사에 맡기는 시스템은 상대적으로 드물었다. 이에 보험금청구권 신탁 도입은 단순히 사망보험금 지급 방식 전환이 아닌, 생전에 보험금 활용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변화하는 상속·자산관리 트렌드를 반영한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 보험업계에서도 신탁 서비스 제공사가 늘어나면서 관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만큼 향후 수요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사망 후보다는 생전에 자산에 대한 교통정리를 원하는 추세에 따라, 사망 후 일시 지급 방식보다 생전에 보험금을 활용해 생활 안정에 기여하는 방안을 선호하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며 “보험금청구권 신탁은 이러한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될 것으로 보고 있고, 또 고령화 사회에서 안정적인 재산 관리와 상속 방안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회사에서도 장기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보험 신탁 상품의 경우 단순 보험금 지급 외에 재정적 지원 등 추가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며 “회사 수익성 증대에도 기여할 수 있지만 분쟁 소지를 줄이고 고객 만족도 향상 및 서비스 품질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생전에 혜택’ 트렌드 반영했지만…제약 여전해 아쉬워
다만 현행 제도에 따른 몇 가지 제약이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새로 바뀐 개정안에서는 일정 금액 이상의 일반사망보험금(3000만원 이상)은 신탁을 통해 수익자에게 분할 지급하거나 특정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다만 재해·질병 사망 등 보험사고 발생 여부가 불확실한 특약사항은 신탁 대상에서 제외되며, 신탁 계약 당시 보험계약대출이 없어야 하는 조건이 붙었다.
이렇게 신탁 대상이 일반사망보험금으로 한정되면서, 재해사망·질병·상해 등 특약 보험금이 신탁이 불가능한 점은 제도의 실효성을 저해할 수 있다. 이러한 특약 보험이 제외되는 이유는 보험사고 발생 가능성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고 발생 가능성이 불확실한 재해·질병·상해 보장을 제외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신탁 가능한 사망보험의 범위는 보다 넓힐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보험계약대출이 있는 보험상품은 신탁이 불가능한 점도 논란이다. 보험계약대출(약관대출)은 해약환급금 범위 내에서 보험계약자가 필요할 때 긴급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하지만 현행 규정에서는 신탁계약 당시 약관대출이 존재하면 신탁이 불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보험계약자의 재산 활용 유연성을 제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탁 수익자의 범위가 지나치게 좁다는 점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으로 꼽힌다. 현재 보험금청구권 신탁의 수익자는 직계 존·비속과 배우자로 한정되어 있어, 사실혼 배우자, 동거인,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가족 구성원 등 다양한 관계를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이와 관련 유주선 강남대학교 정경대학 교수는 “보험금청구권 신탁이 일반사망 보험에만 한정된 점과 특약형식의 정기보험은 보험금청구권 신탁이 불가능한 점은 문제”라며 “신탁의 수탁기준이 금융위원회 고시로 3000만원 이상으로 설정되어 있는 점 또한 최소 신탁금액 규제를 두지 않은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보험계약대출 불가 조항의 경우, 대출을 상환하지 않더라도 보험금이 줄어드는 문제 뿐인데 대출금지 규정은 과도하다”며 “보험수익자의 범위에 대한 과도한 제한 또한 문제소지가 있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관계와 유족의 복지를 반영해야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한편 생명보험협회에서는 향후 제도적 보완을 통해 보험금청구권 신탁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생보협회 관계자는 “시장 확대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고 현재 미비한 부분이나 소비자 선택권에 대한 개선 노력도 꾸준히 해 나간다면 관련 상품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이라며 “좋은 취지로 시작한 보험금 신탁이 보다 실효성 있는 제도로 자리 잡기 위해 금융당국과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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