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절을 통째로 기억나게 하는 손때 묻은 물건이 있는가? 내겐 오늘 소개할 몽블랑 카드 지갑이 그러하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코로나가 창궐하기도 전인 2018년.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때의 기분이 생생하다. 무일푼에 가까웠던 백수에서 돈 잘 버는 번듯한 프리랜서로 거듭났던 나의 30대 초반을 수호했던 물건. 아니 어쩌면 나를 그런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준 '행운의 부적'과도 같았던 물건. 몽블랑 카드 지갑이다.
정확한 제품명은 ‘몽블랑 마이스터스튁 4CC 카드 홀더’다. (이하 몽블랑 카드 지갑) 정가 30만원 대에 살 수 있는 번듯한 카드 지갑이다. 20대 후반 30대 초반 남자들이 쓰기 딱 좋은 정도의 가격대와 퀄리티다.
한 손에 싹 감기는 콤팩트한 사이즈와 담백한 검은색 외관, 사과 껍질처럼 매끈한 가죽 질감, 여기에 몽블랑의 시그니처 엠블럼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어 고급스러움과 깔끔함을 균형 있게 갖춘 디자인이다. 과하지 않으면서 맵시를 드러내기 딱 좋다.
책 표지 펼치듯 지갑을 열어보면 안쪽에 카드 슬롯 4칸이 있다. 명함이나 지폐 뭉치를 넣을 수 있는 공간도 따로 마련되어 있다. 지갑 후면에는 외부 슬롯이 하나 더 있다. 내 경우에는 자주 쓰는 신용카드 혹은 교통카드를 외부 슬롯에 넣는다. 단정한 디자인과 알찬 실용성. 몽블랑의 이 카드 지갑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더할 나위 없는' 파트너였다.
그러나 이 카드 지갑이 '애틋한' 이유는 이 지갑에 얽힌 나만의 사연 때문이다. 이 카드 지갑은 장모님께서 사 주신 지갑이다. 나의 서른한 살 생일 선물로 말이다. 2018년 당시 나는 결혼 2년 차였고, 수입이 거의 전무한 채로 처가살이를 하던 중이었다. 그때 내 상황을 조금 더 설명하자면, 다니던 회사를 퇴사한 후 쇼호스트를 준비하겠다고 학원을 다니며 공부를 하던 때였다.
서른 넘은 나이에 대학생처럼 새로운 꿈을 좇는 사위를 매일 보는 장인·장모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물론 당신들은 나에게 일말의 불편함도 없이 "괜찮다" "개구리가 멀리 뛰려면 움츠릴 때도 있는 법"이라고 진심으로 말씀해 주셨지만 정작 내 스스로는 자괴감을 느꼈다.
그 당시 내가 싸웠던 것들은 사회의 시선, 남과의 비교, 그러면서도 잃고 싶지 않은 주체성이었다. 30대 초반에 결혼까지 한 남자가 여전히 불안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친구들은 안정되어 가는데 나는 여전히 대학생 철부지처럼 꿈을 좇는다는 사실,
다니던 회사를 무쇠의 뿔처럼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듯 나와버렸다는 사실, 나의 유약함에 자기 환멸을 느끼면서도 다시 그런 상황이 일어나도 같은 선택을 할 거라는 사실, 아나운서 경력이 있었지만 나를 필요로 하거나 불러주는 곳이 없어 (원하는) 일을 할 수 없다는 무력함까지···.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실상 백수. 그 모든 현실이 나를 짓누르던 어느 겨울밤 집에 오는 길,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에픽하이의 <빈차> 라는 노래를 듣다가 가사에 눈물이 터져버렸다.
갈 길이 먼데 빈차가 없네. 비가 올 것 같은데. 처진 어깨엔 오늘의 무게. 잠시 내려놓고 싶어. Home is far away. 이 넓은 세상에 내 자린 없나? 붐비는 거리에 나 혼자인가? 날 위한 빈자리가 하나 없나? Home is so far away (에픽하이 <빈차> 중에서)
그 눈물 이후로 독기라는 것을 품었던 것 같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을 벌지 못해 서러웠던 그 시절. ‘결혼하지 않았다면?’ ‘처가에 같이 살지 않았다면?’ 눈치 주는 사람이 없음에도 눈치에 시달렸던 나는 부정적인 자문자답을 그만두고 미래로만 흐르는 시간을 긍정하기로 했다.
이후 나는 라이브커머스라는 새로운 시장과 바람을 타고 프리랜서로 제법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 이전의 10배가 넘는 수익을 올릴 수 있었고 선물로 받은 빈 지갑에 돈을 채워 넣었다. 돈을 벌어서 좋은 마음이야 당연하지만 사실 그 시절 내가 얻었던 것은 자신감이었다. 액수는 단지 숫자일 뿐이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 긍정의 에너지를 나는 눈으로 몸으로 확인했다. 그렇게 30대의 중반을 향해 달려갈 수 있었다.
몽블랑의 카드 지갑은 그저 카드 몇 장 꽂아두는 용도의 소지품이 아니었다. 장모님의 든든한 격려였고, 불우하다고 느꼈던 한 시절을 이겨낼 수 있던 벗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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