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여성계를 중심으로 친족성폭력 범죄에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제기된 가운데, 최근 국회에 발의된 관련 개정안에 대해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피해자의 보호와 가해자 처벌의 실효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과 공소시효 폐지가 법적 안정성과 형사사법 체계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어 논의가 계속될 전망이다.
26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 따르면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는 최근 친족 아동·청소년에 대한 강간죄 등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신중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의 지난 6일 전체회의 회의록을 보면 조국혁신당 정춘생 의원이 “13살 이상 아동·청소년에 대한 친족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자는 것에 대해 여가부가 부정적 의견을 낸 것이 맞냐고 묻자 여가부 신영숙 장관 직무대행은 “법 개정 취지엔 충분히 공감하지만 (다른 법과) 형평성이나 사회적 처벌 감정 등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현행 법상 친족성폭력 공소시효는 최장 10년으로 명시돼 있다. 만일 DNA 증거 등 죄를 증명할 수 있는 과학적 증거가 있다면 10년 늘어 20년까지 연장될 수 있다. 다만 2011년 관련 법 개정으로 인해 사건 당시 피해자가 13세 미만인 경우에 한해서만 공소시효가 폐지됐다. 그 외 경우에는 피해자가 성인이 된 날로부터 10년이 지나면 공소시효가 만료된다.
조국혁신당 정춘생 의원은 지난해 7월 친족이 13살 이상 19살 미만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자행한 강간 및 강제추행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없애는 것이 골자인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친족에 의한 성범죄 공소시효를 없애는 내용이 담긴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 의원은 친족성폭력 특성상 피해자와 가해자가 한 공간에 살고 있거나 피해자가 생계 등을 가해자에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피해자가 신고를 결심·실행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여성계에서도 이 같은 이유로 친족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박인숙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열린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위한 토론회’에서 “시간이 경과하더라도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갈등은 해소될 수 없다”며 “가해자는 반성하기보다는 처벌받지 않으려고 공소시효가 만료되기까지 피해자를 주변의 가족과 함께 압박하는 등 2차 피해를 가할 가능성이 크기에 언제든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스스로 반성하고 피해자의 피해회복을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친족성폭력 피해자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신고를 결심하게 되는 상황에 이른다는 것은 아동 청소년기에 당한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당한 성폭력을 극복할 수 없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도저히 생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이라며 “국가가 이를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동 청소년을 보호하고 아동·청소년의 생존권을 지켜주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통계를 살펴보면 지난해 신규로 성폭력 상담을 받은 560명 중 82.3%(461명)가 “아는 사람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봤다”고 응답했다.
이 가운데 직장 피해가 20.9%(117명)로 가장 높았고 그다음으로 친족 및 인척에 의한 피해가 15.0%(84명)으로 뒤를 이었다. 특히 성인의 경우 직장 피해가 가장 높았으며 친밀한 관계가 두 번째였다. 청소년·어린이·유아는 친족 및 인척에 의한 피해가 가장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는 여성이 93.0%(521명)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남성은 5.4%(30명)로, 지난해 대비 3.2%p 줄었다.
최초 피해를 본 후 상담까지 걸린 기간은 ‘1년 이상’이 54.6%로 가장 많았다. 이중 17.5%는 ‘10년 이상’ 걸렸다고 답하기도 했다.
현재 여가부에서는 이 같은 미성년 친족성폭력 피해자를 대상으로 ‘특별지원 보호시설’을 운영 중인데, 해당 시설에 입소한 아동·청소년 10명 중 8명가량이 13세 이하인 것으로 집계됐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7월 발간한 ‘미성년 친족성폭력 피해자 특별지원 보호시설 지원업무 실태 및 개선과제’ 보고서에는 입소아동·청소년 316명의 피해 연령 중 13세 이하가 78.5%를 차지하고 있다는 내용이 실렸다. 친족성폭력 피해아동의 저연령화가 뚜렷하게 파악되는 대목이다.
이와 함께 입소아동·청소년의 33.9%가 ‘지적장애, 경계선, 신체·정신장애’의 한 유형에 속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친부와 계부 등 ‘부의 위치에 있는 자’에 의한 성폭력이 70.7%를 기록했다.
한남대 경찰학과 이도선 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친족 성폭력의 특성을 고려하면 일반 성폭력보다 피해자의 연령대가 낮아 신고가 더욱 어렵고 친족 관계로 인해 신고가 지연되면서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경우가 많다”며 “더욱이 가해자의 협박과 회유로 인해 피해자가 신고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할 때 공소시효 폐지를 중심으로 한 법 개정이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여성 인권 보호를 책임지는 여가부가 법 개정을 미루고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은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지금이라도 보다 적극적으로 피해자 보호와 법 개정 논의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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