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입소문에 18년 만에 재출간…"'자기 존재의 집' 찾아가는 이야기"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생은 시어빠진 레몬 따위나 줄 뿐이지만, 나는 그것을 내던지지 않고 레모네이드를 만들 것이다." (소설 '자기만의 집' 에서)
대학생 호은에게 주어진 삶은 녹록지 않다. 손대는 일마다 실패한 아버지, 그런 아버지와 이혼한 어머니, 어머니와 헤어져 있어야 했던 몇 년의 시간, 성 정체성의 혼란, 연인과의 아픈 이별.
호은은 자기 삶으로부터 시어빠진 레몬 따위나 받았다고 여기면서도 그 레몬을 던져버리는 대신 상큼한 레모네이드로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2007년 출간됐다가 절판됐던 장편소설 '엄마의 집'은 최근 제목을 '자기만의 집'으로 바꿔 다시 출간됐다. 약 18년 만에 책을 다시 낸 소설가 전경린은 지난 25일 경기 파주의 한 카페에서 연합뉴스를 만나 "레모네이드를 만들겠다"는 호은의 다짐이 이 작품을 관통한다고 짚었다.
"이 시대도 그렇고 삶도 그렇고, 살아가는 사람 각자가 선택한 건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각자가 받은 것이 기대에 못 미치고 부족할 수도 있죠. 하지만 주어진 걸 쉽게 내던지기보다 자기만의 것을 만들 수도 있는 게 사람이에요. 사람들이 자기 모습과 속도로 차근차근 살아가면 좋겠어요."
화자인 호은은 부모님의 이혼으로 친척 집에 몇 년 동안 맡겨졌다가 다시 어머니 윤선과 살게 된다. 윤선은 팔을 걷어붙이고 돈을 모아 집을 마련해서 딸 호은을 데려온다.
그런 호은의 앞에 갑자기 아버지가 나타나 중학생 승지를 맡기고 사라진다. 아버지가 재혼한 상대의 딸인 승지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호은, 윤선과 함께 생활하게 된다.
새로운 형태의 가족 구성이나 어머니의 경제 활동 등 '자기만의 집'은 18년 전에 집필됐다는 게 신기할 만큼 지금의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특히 소설을 관통하는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하게 여겨진다.
전경린은 가족의 의미에 대해 "자기와 관계를 맺는 타자에 대한 책임감, 그게 가족의 기반 정신 또는 기반 감정인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책임감이 있으면 결혼도 가능하고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것도 가능하고, 식물과도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물론 '자기만의 집'이 가족 이야기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어머니 윤선은 이혼 후 딸 호은에게 책임을 다하면서 자기 사랑에도 솔직한 인물로 그려진다.
전경린은 "화자는 호은이지만, '자기만의 집'은 사실 엄마 윤선의 모습을 그린 책이라고 볼 수 있다"며 "거듭된 남편의 실패, 그로 인해 표류하는 삶에 휘둘리기를 그만두고 '자기만의 집'에 정착하는 윤선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이 책은 오래전 세상에 나왔음에도 최근 다시 입소문을 타면서 재출간이 결정됐다고 한다. 소셜미디어(SNS)에서 "레모네이드를 만들 것"이라는 문장이 화제가 됐다.
전경린은 이 같은 독자들의 호응에 대해 "작가가 일단 책을 내면 더는 자기 것이 아니고 세상의 것"이라며 "사람들이 서로 문장을 전해준 이유가 뭘지 내가 말하기는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요즘 사회를 '표준이 무너진 사회' 또는 '핵 개인 사회'라고도 하는데, 보편성에 기댈 수 없고 자기만의 기준으로 선택하며 헤쳐 나가야 하다 보니 외로움과 공허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며 "그래서 이 책의 인물들에게 공감한 게 아닐까 싶다"고 조심스럽게 생각을 밝혔다.
"호은도 윤선도 자기의 시대와 관습적인 정형성을 넘어서면서 산산조각 난 삶을 감당하면서도 '자기 존재의 집'을 찾아가는 인물이죠. 그런 모습들에 오늘날의 독자들이 공감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다산책방(다산북스). 288쪽.
jae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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