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임준혁 기자]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24일(현지시간)부터 이틀간 중국 선사·선박 수수료 조치에 대한 해운 및 관련업계 공청회를 열고 있다. 이번 공청회에서 USTR이 중국 선사, 선박에 부과하는 수수료와 제한 조치의 윤곽이 나올 전망이어서 글로벌 해운업계와 화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청회에서 업계 의견을 수렴한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행정명령에 서명하면 바로 시행된다.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USTR의 수수료 부과 방안이 현실화되면 중국산 선박이 미국 항만에 입항할 때 최대 350만달러(약 51억4000만원)를 내야 한다. 이는 글로벌 해운업계에 연간 200억달러(29조원) 이상의 추가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이러한 움직임에 영향을 받는 선주사와 화주들이 법적 대응을 고려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와 글로벌 공급망 전체가 홍역을 앓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해양 패권 장악을 막기 위해 내놓은 방안이지만 시행 시 전세계 해운·조선산업이 영향을 받게 된다. 지난해 전세계에서 신조 발주된 선박의 70%를 중국 조선소가 수주했다. 글로벌 정기선사들이 보유한 중국산 선박도 상당하다. 노르웨이 컨테이너 운임 분석업체 제네타(Xeneta)에 따르면 중국산 컨테이너선 비중이 높은 선사는 코스코(중국·64%), ZIM(이스라엘·41%), CMA CGM(프랑스·41%), ONE(일본·27%), 하팍로이드(독일·21%) 순으로 나타났다.
중국산 선박 비중을 당장 줄이기 어려운 글로벌 선사는 동맹 제도, 미국 투자를 통해 해결책을 찾고 있다. CMA CGM은 향후 4년간 미국 국적 선박 건조에 2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CMA CGM는 덴마크 선사 머스크와 아시아-미 서안 항로, 인도 서안-미 동안 항로 선복 교환에 합의했다. 중국 선박 비중이 높은 ONE는 대만 양밍, HMM과 ‘프리미어 얼라이언스’라는 동맹을 맺어 대비한다는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USTR의 움직임이 미국의 조선산업을 되살리는 것이 목표라면 이 방안은 도움이 안 되며 잠재적으로 미국 경제에도 치명적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조선업 전문가들도 현재 미국 조선산업이 부흥하기 위해서는 수십년간의 일관된 연방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중국 선박에 막대한 비용을 부과하는 것은 화물 비용만 높이고 글로벌 공급망을 뒤흔들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경고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 상품의 가격이 비싸지고 뉴욕, LA, 롱비치 등 미국 주요 항만의 혼잡이 가중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글로벌 해상운임과 미국 내 물가 상승의 원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앞서 나온 전문가들의 예측과 궤를 같이 한다.
2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전미소매업연맹의 공급망 및 관세 정책 담당 조나단 골드 부사장은 “전체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이 항만 수수료를 관세보다 더 큰 위협으로 보고 있다”며 “글로벌 선사들은 비용을 전가할 뿐만 아니라 특정 항로에서 철수할 것이다. 이에 따라 오클랜드, 찰스턴, 델라웨어, 필라델피아 등 미국 내 소규모 항만은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클락슨리서치 서비스에 따르면 항만 수수료를 부과할 경우 이론적으로는 미국이 400억~520억달러(58조~76조원)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된다. 업계에서는 USTR의 제안대로 수수료를 부과하면 전세계에서 운항 중인 컨테이너선의 약 83%, 자동차운반선의 약 3분의 2와 유조선(탱커)의 3분의 1가량이 수수료를 물게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미 미국에서는 중국산 선박 규제 예고의 여파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석유협회는 선박 부족으로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수출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중국산 탱커 등에 의존해 유럽 등으로 수출되는 미국산 LNG와 원유 수출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글로벌 선사들이 당장 중국산 선박을 대체하는 건 불가능하며 선사 입장에서 미국 항만 기항 비용을 피하려면 입항 자체를 줄이거나 중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란 논리다.
북미수출곡물협회도 USTR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미국산 벌크선과 탱커 건조 능력을 확대하려는 정부 조치를 지지한다”면서도 “당장 수출 경쟁력 유지를 위해 중국에서 만든 벌크선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수출계약 중인 중국 벌크선사에 미국 입항 시마다 100만달러의 수수료가 부과된다면 수출 곡물에서 부셸당 0.5~1.2달러 비용이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산 밀과 옥수수 등을 수출할 때 10~30%가량의 운송 비용이 추가된다는 의미다.
한편 USTR의 중국산 선박 수수료 부과 움직임에 영향을 받는 선주사와 화주들이 법적 대응을 고려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와 주목된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최건우 부연구위원은 24일 발행한 보고서에서 “미국 항만에 기항하는 중국산 선박의 수수료 부과에 대한 선·화주의 법적 대응이 성공할 경우 수수료 부과가 일시적으로 중단될 수 있다”면서도 “실패하면 수수료는 지속적으로 부과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최 연구위원은 “법적 분쟁의 특성상 절차가 복잡하고 많은 시간이 걸리며 최종 판결까지 수년이 걸릴 수 있다”며 “이러한 상황은 해운업계의 불확실성을 높일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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