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전통적인 은행 시스템 외부에서 신용 중개 역할을 수행하는 비은행 금융기관과 그 활동을 의미하는 ‘그림자금융(Shadow Banking)’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이는 규제 사각지대에서의 리스크 확대로 인해 금융 시스템 안정성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25일 한국은행의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6월 기준 비은행금융중개(Non-Bank Financial Intermediation, 이하 ‘NBFI’) 규모는 5639조원 수준으로, 예금취급기관 금융자산의 107.5%, 명목GDP의 252%(2022년 기준) 수준이다. 이는 2009년 말(1688조원) 대비 3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외국에서도 비은행금융중개 규모는 뚜렷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안정위원회(FSB)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전 세계 그림자금융 자산 규모는 약 239조 달러로 추정되며, 이는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보다 2.4배 증가한 수치다. 유럽연합(EU) 내에서도 그림자금융은 전체 금융자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2017년 말 기준으로 EU의 그림자금융 규모는 약 42조3000억 유로로, 이는 전체 금융자산의 39%에 해당한다.
‘NBFI’는 신용중개기능을 제공하지만 상대적으로 규제 수준이 낮은 예금취급기관 외의 금융기관 및 금융 활동을 총칭한다. 은행, 상호금융, 저축은행은 제외되며, 보험·증권·여전사 등의 금융기관과 채무보증, 자산유동화 등의 금융활동이 포함된다.
우리나라는 2011년부터 현황을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신용중개 과정에서 만기 및 유동성 변환, 레버리지, 신용위험의 불완전한 전가 등으로 시스템 리스크 유발 가능성이 높은 부문을 ‘협의(narrow measure) NBFI’로 분류한다.
전 세계적으로 그림자금융의 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금융 시스템 안정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그림자금융은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에 금융 위기의 잠재적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홈플러스 위기에 돈 빌려준 메리츠까지 ‘주목’…연쇄 리스크 우려 고개
보험업계 또한 예외는 아니다. 현재 많은 비은행 금융기관들이 사실상 은행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은 전통적인 은행 시스템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은행이 엄격한 자본 건전성 규제를 받는 반면, 그림자금융에 참여하는 보험사들은 비교적 규제를 적게 받으면서 리스크를 쌓아가고 있다.
예컨대 보험사들은 일반계정 자산을 활용해 대규모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을 진행하거나, 이를 유동화하여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신용 공급을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고수익을 보장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심각한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예컨대 메리츠화재는 최근 홈플러스에 1조원이 넘는 대규모 자금을 대출해 준 건으로 주목받고 있다. 경영이 어려워진 홈플러스가 회생을 신청했지만 메리츠화재 측은 홈플러스의 부동산을 담보로 선순위로 자금을 빌려줬기 때문에 자금 회수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홈플러스가 회생 절차를 밟으면서 자산 매각과 대출 회수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지연이 발생할 수 있기에 리스크 확산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2만명에 달하는 홈플러스의 임직원과 함께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도 해당 사건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 만큼 섣부르게 점포를 처분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홈플러스와 같은 대기업이 위기에 처하면, 그로 인한 경제적 여파는 단순히 기업의 파산을 넘어 노동자와 소비자에게까지 직접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에 금융시장의 안정성에 대한 우려는 점차 커지고 있으며, 향후 이러한 리스크가 더욱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그림자금융의 위험성은 특히 부동산 관련 대출이나 신용 유동화에서 두드러진다. 특정 보험사들은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고 있지만 동시에 리스크 관리의 한계를 경험하고 있다”며 “고수익의 매력 이면에는 금융시장의 잠재적인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요소들이 숨어 있다. 과도한 규제는 시장에 악영향을 미치지만 최소한의 리스크 관리 시스템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리스크 관리 사각지대…규제만이 해법 아니라는 지적도
그림자금융이 금융시장의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은행 시스템과의 규제 차이에 대한 지적도 함께 나오고 있다.
전통적인 은행 시스템은 엄격한 규제를 따르지만, 그림자금융에 참여하는 보험사와 증권사들은 상대적으로 규제의 영향을 덜 받는다는 점에서다.
보험사 관계자는 “그림자금융의 영향은 점점 커져가는데 규제는 상대적으로 덜하니 금융당국 감시를 피해가며 리스크가 확대되는 경향을 보인다”며 “비은행 금융기관들이 은행과 유사한 신용중개 역할을 하고 있는데도 동일한 규제를 받지 않는 점은 문제다. 특히 유동화 증권을 활용한 고위험 상품의 확산, 대체투자의 확대 등의 경우 향후 금융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이러한 리스크를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과도한 규제는 오히려 금융시장의 유동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시각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보험연구원 세미나에서는 너무 지나치게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오히려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 바 있다. 당국의 과도한 규제가 오히려 그림자금융 수요를 자극하고, 규제를 피해가는 경로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우려다.
지난달 이뤄진 ‘보험산업의 그림자 금융 규제 방안’ 산학세미나에서는 각종 규제에도 미국 생명보험업계가 재보험을 활용해 부채를 전가하는 형식의 ‘그림자 금융’은 늘어나고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보험 가입자 리스크 증가 우려 속에서도 보험사들은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위해 규제 차익을 노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는 필연적인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안동현 교수도 “은행의 경우 타 금융기관과는 달리 시스템리스크로 확산될 우려가 크기 때문에 규제가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과도한 규제는 오히려 금융 유동성을 저해할 수도 있다”면서도 “PF 시장 안정을 위해 금융당국의 적절한 규제는 필요하다. 다만 일이 터지고 나서 수습하는 방식이 아닌 예방 차원에서의 합리적인 규제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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