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살다 보면 그런 순간이 있더라. 해야 할 일은 쌓여 있고, 머릿속은 복잡한데, 도무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 모를 때. 마음은 초조하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가는 그런 날. 아마 너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을 거야.
나는 신입사원 시절에 그런 막막함과 초조함을 자주 느꼈던 것 같아. 그때는 회사 시스템도 낯설고 기본적인 용어나 일하는 방식조차 익숙하지 않은 상태였거든. 배워야 할 게 참 많았어. 동료들과도 잘 지내고 싶었고 선배들에게도 인정받고 싶었지.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맡은 업무에서 결과를 보여주는 일이었어. 특히 나는 그냥 주어진 일만 대충 해내고 싶지 않았어. 전체 흐름을 파악하고 스스로 계획해서 능동적으로 해내고 싶었거든. 더 좋은 결과를 내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 그래서인지 점점 더 많은 일이 내게 몰려왔고 어느 순간부터 그 일이 감당하기 힘든 무게로 다가왔지.
그때의 나는 마치 일이 나를 삼켜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어. 회사 사람들은 하나둘 퇴근하고 나는 책상에 앉아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모니터만 바라본 적도 많았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마음은 조급한데 정작 손은 움직이지 않는 그 아이러니한 시간들. 마치 공부할 양이 너무 많을 때 책도 펴지 못하고 그냥 하루를 흘려보내는 학생처럼.
그럴 때 내가 시작했던 건 ‘워밍업’이었어. 마음은 급하고 시간은 없지만 바로 일에 뛰어들기보다는 잠시 멈춰서 준비운동을 하는 거야. 운동 전에 스트레칭과 같은 준비운동을 하듯이. 워밍업의 첫 번째는 ‘이 일의 목표는 무엇인지’, ‘내가 이 일을 왜 하는지’, '어디를 향해 가고 싶은지'를 스스로에게 되묻는 거야.
그냥 주어진 일만 해내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 목표와 방향을 갖고 있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지. 두 번째는 해야 할 일을 대략 그려보는 거야. 구체적인 계획이 아니어도 괜찮아. 종이에 흐릿하게라도 스케치해 보면 막연함이 조금씩 정리되거든.
그러고 나서 제일 중요한 건 그 스케치했던 첫 번째 항목부터 ‘일단 시작하는 것’이었어. 워밍업만 하고 일을 시작하지 않으면 그건 준비가 아니라 회피일 수도 있거든. 많은 사람들이 계획은 세우는데 시작을 미루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작하고 나면 흐름이 생기더라. 막연했던 계획이 점점 구체화하고 흐릿했던 방향도 또렷해지지. 막막함은 ‘실행’이 밀어내는 감정이란 걸 알게 됐어. ‘일단 해보기’라는 작은 실행이 복잡한 마음을 뚫는 돌파구가 되어 줬어.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일이 많아서 버겁게 느껴질 때면 종이에 몇 줄이라도 써보고 가장 작은 일 하나부터 시작하려고 해. 그것만 해도 막막함이 조금씩 옅어지거든.
아들아, 네 앞에 일이 너무 많아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 일의 목표를 생각해 보며 대략적 계획을 스케치해 보렴. 그리고 그 첫 페이지부터 시작해 봐. 중요한 건 ‘완벽하게 잘 시작하기’보다는 ‘일단 시작’하는 거야. 그 작은 시작이 너를 앞으로 이끌어 줄 거야.
나는 늘 네가 시작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믿고 있어. 그리고 언제나 네 편이란다.
사랑을 담아,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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