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제47대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취임한 지 두 달이 지났다. 모두가 트럼프 대통령이 파격적인 행보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모두가 ‘이 정도일 줄은 예상 못 했다’며 혀를 내두르고 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지난해 미국 대선은 어떤 과정을 거쳤기에 지금의 결과까지 오게 된 걸까. <분열과 희망의 선거: 2024 미국 대선의 초상> 은 지난해 미국 대선의 전개 과정과 주요 후보들의 전략, 정책 이슈, 선거 결과 등이 미친 영향을 분석한 책이다. 분열과>
책의 저자인 권형균 GGCS 대표는 “책을 준비하면서부터 트럼프의 당선을 예상했다”라며 “이번 미국 대선은 경제로 시작해 경제로 끝난 선거”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바이든 대통령도 트럼프가 했던 대중 정책은 국가적 이익이 되니 그대로 끌고 갔다. 트럼프의 방식이 통한다는 것이 확인된다면 이 방식은 전 세계에 고착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곧 전 세계가 20~30년간 유지해 온 신자유주의 세계화에서 멀어져 새로운 유형의 자국 우선주의로 나아갈 수도 있다는 의미다. 어쩌면 자국 우선주의를 넘어 제국주의의 부활이 코앞에 다가온 것은 아닌지 촉각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약 20년 동안 정치컨설팅 활동을 하며 국내외 선거 전략과 정치 변화를 연구한 권 대표의 견해를 들어봤다.
Q. 대표님은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어떤 대목을 주목했나.
지난해 미국 대선의 하이라이트로 세 가지를 꼽겠다. 첫째는 7월 13일 펜실베이니아에서 발생한 트럼프 저격 시도다. 이 사건으로 지지층이 결집하며 선거의 흐름이 달라졌다. 민주당 역시 바이든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해리스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할 만큼 선거 구도를 완전히 바꿨다.
두 번째는 9월말 TV토론이다. 해리스가 자신의 비전과 리더십을 증명하며 민주당을 결집해 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민주주의, 낙태권 등의 가치를 뚜렷하게 수호했다. 세 번째는 선거일이다. 전체 투표자 수가 1억5000만명을 넘어서면서 2020년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높은 참여율을 기록했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트럼프가 어필한 ‘미국 우선주의’를 통해 일자리 창출이나 반이민정책 등의 문제 해결을 원한 것이다. 그에 반해 해리스가 어필한 ‘다자적이고 인도주의적 세계 질서’는 덜 중요하게 여겼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국제 안보, 세계 경제 및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민주당의 실책은 ‘트럼프는 안 된다’라고 단정 짓고 출발한 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지난해 미국의 주요 경제지표는 호황기라 불릴 정도로 좋았다. 그러다 보니 경제 이슈가 크게 작용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 착오를 한 게 아닐까 한다. 그러나 유권자들에게는 지금 내가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했다.
Q. 트럼프와 해리스의 선거 전략에서 결정적 차이는 어디에서 벌어졌다고 보는가.
트럼프는 경제에 모든 전력을 집중했다. 일자리 창출, 제조업 부흥을 강조했다. 특히 관세율을 올려서 부과하겠다는 공약들은 러스트벨트 유권자를 겨냥한 경제 공약이다.
트럼프는 겨냥해야 할 핵심 유권자층을 정확히 분석했다. 트럼프는 경제 공약으로 경합주의 블루칼라 유권자층을 집중 공략했다. 국경 장벽 건설, 불법 이민 단속 강화 등 강경한 이민자 정책도 살펴보면 경제 공약이다. 그래서 트럼프는 예상과 달리 라틴계 이민자층에서 높은 지지를 받았다. 미국 시민이자 투표권을 가진 이민자의 심리를 꿰뚫었다.
반면, 해리스는 민주주의 수호와 포용적 성장을 핵심 전략으로 내세웠다. 특히 낙태권 보장이나 기후변화, 총기 사건 대처 등 사회 분야에서 트럼프와 맞서며 지지층을 결집했다. 트럼프 지지층을 극단적 우파로 경계했지만 오히려 트럼프의 열성 지지층을 결집하는 역할을 한 듯하다.
과연 낙태권이 대선 어젠다로 볼 수 있는가. 대선에서는 약간 지엽적인 문제로 생각된다. 여성은 다 해리스 자신의 편이라고 전제조건을 건 전략인데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또, 기후변화 이슈도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갔으면 경제 공약이 됐을 텐데 단순히 기후변화만 언급해서는 먼 미래의 얘기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Q. <2024 미국 대선의 초상>에서 트럼프에 대한 저격 시도 사건을 두고 위기관리 능력이 선거 판도를 바꿨다고 평했는데.
그날 트럼프의 대처를 살펴보자. 단상에 올라 연설하던 중 총알이 오른쪽 귀를 스쳤다. 경호원들이 단상으로 뛰어와 그를 에워쌌다. 보통은 그 장소를 빠져나가느라 급할 텐데 트럼프는 피를 흘리면서도 주먹을 쥐고 일어섰다. 그리고 지지자들을 향해 “Fight!”를 세 번 외치고 떠났다.
긴박한 상황이었기에 누가 조언할 틈도 없었다. 트럼프가 감각적으로 자신의 강인함을 보여줬고 유권자들에게는 트럼프의 강인함이 곧 미국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모습으로 각인됐을 거라고 본다.
그 모습을 본 일론 머스크가 자신의 SNS에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연상됐다고 글을 올렸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지난 1912년 연설하다가 저격당했다. 그때 총알이 가슴에 품고 있던 두꺼운 연설문 원고와 안경집에 걸려 목숨을 건졌다. 그런데 루스벨트는 총을 맞고도 연설을 마치고 병원에 갔다고 한다.
위기관리 능력, 특히 위기 ‘대처’ 능력은 정치뿐 아니라 모든 리더에게 요구되는 필수 자질이다. 상당한 격차로 앞서는 후보일지라도 예상하지 못한 위기는 오고 그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Q. 지난해 미국 대선의 결과를 좌우한 러스트벨트의 표심을 분석한다면 트럼프의 승리 요인은 무엇인가.
러스트벨트는 미국 중서부의 미시간주, 펜실베이니아주, 위스콘신주 등 제조업이 밀집된 지역을 뜻한다. 이들 지역은 선거 때마다 민주당과 공화당 간 지지가 예측할 수 없이 경합을 이뤄왔다. 트럼프가 2016년 대선에서 승리할 때도 경합주에서 이겨 극적인 승리를 거뒀고 바이든이 2020년 대선에서 이 경합주를 탈환해 승부를 뒤집었다. 지난해 대선 여론조사에서도 러스트벨트 경합주에서 트럼프와 해리스는 초접전 양상을 보였다.
이 러스트벨트는 제조업의 쇠퇴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백인 남성 노동자 계층의 표심이 관건인데 트럼프는 이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수입제품에 대한 관세 인상을 약속했다. 또, 펜실베이니아주에서는 ‘셰일가스 지원’을, 미시간주에서는 ‘자동차 산업 지원’을, 위스콘신주에서는 ‘농산물 보호무역’을 어필해 지역별 맞춤형 메시지를 전달했다.
여기에 해외기업과 불법 이민자가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메시지를 통해 대표 공약인 반이민정책과 국경 보호의 필요성을 설득했다. 이런 집중 공약으로 위스콘신주, 펜실베이니아주, 미시간주 모두에서 승리를 가져갔고 결과적으로 대선의 승리자가 됐다.
Q. 미국 유권자들은 이번 대선으로 어떤 요구를 표출했다고 보는가. 이는 앞으로 미국의 앞날에 어떤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보는가.
우선 민생 경제에 대한 불만과 변화의 요구다. 미국 시민들은 경제 회복, 물가 안정, 일자리 창출 등 강력한 경기 부양 조치를 원했다. 그리고 이민 통제와 사회적 안전망 구축을 희망했다. 즉, 미국 유권자 다수는 트럼프 방식의 문제 해결에 목말라 있었으며 해리스가 어필한 ‘세계의 경찰’로서 인도주의적 질서를 구축해 온 미국의 역할은 덜 중요하게 여겼다.
전반적으로 미국 유권자들은 고립주의적 경향을 보여줬다. 그 결과, 앞으로의 미국은 전 세계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불법 이민자를 대규모로 추방하는 정책을 실행할 것이다. 또, 방위비 분담에 대한 압력도 강화할 것이다. 이로 인해 국제 질서에서 미국의 리더십 방향이 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까지의 미국은 동맹을 중시하며 다자간의 협력을 통한 예측 가능한 국제 질서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트럼프 2기는 미국 우선주의가 부활하며 세계의 경찰 역할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만약 미국의 안보 공백이 실제로 발생하면 각국이 자주 안보를 구축하면서 군사력을 증강하는 군비경쟁이 시작될 수도 있다. 미국의 관세 압박은 글로벌 공급망에도 변화를 불러와 우리나라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국제 질서의 변화가 트럼프의 임기인 4년 안에 이뤄질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미국의 차기 대통령까지는 더 기다릴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다음 지도자도 트럼프의 방식이 인기가 있으니 이대로 간다고 정한다면 그때는 세계 질서가 완전히 변하지 않을까.
Q. 트럼프의 불확실성은 ‘트럼프 리스크’라 불릴 정도로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데 어떻게 보는가.
트럼프 리스크는 그의 리더십 스타일에서 기인한다. 그는 과거에도 갑자기 정책을 바꾸거나 충동적인 결정을 해왔다. 지난 2018년 G7 정상회의에서는 합의문에 서명하고도 귀국 도중 트위터에 메시지를 올려 번복했다. 2019년에는 시리아에서의 미군 철수(일명 ‘쿠르드 철군’)를 선언하기도 했다.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한 행보는 국제 외교 무대에서 ‘미국이 하는 말을 신뢰하기 어렵다’라는 인식을 주고 있다. 경제 무역 분야에서 고립주의적 통상정책과 보호무역을 실행하겠다고 하는데 이와 같은 방식은 단기적으로 미국에 유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국제 사회가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미국의 무역 체계가 약화된다거나 현재의 글로벌 공급망이 빠르게 바뀌면서 결국 미국 내 생산비용이 상승할 가능성도 있다.
안보적 측면에서 트럼프는 미국의 안보 우산에 세계가 무임승차했다고 비난해왔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나 나토 동맹국 등에 더 많은 방위비를 요구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각 나라의 안보 불안을 자극해 군비경쟁을 부르고 군비경쟁이 다른 위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물론 트럼프가 타고 난 사업가적 기질로 중국과의 무역 협상이나 북한 핵 협상 등에서 의외의 돌파구를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트럼프의 불확실성에 대한 위기 인식이 더 높은 것 같다.
Q. 우리나라는 트럼프 2기를 맞아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보는가.
현재 우리나라가 내부 상황으로 트럼프 2기에 대한 대응이 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안타깝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미 대선에서 노골적으로 어느 편도 들지 않는 초당파적 외교를 견지해 왔다. 우리나라는 미국 의존도가 높기에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에 대한 대응 마련이 필요하다. 특히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되면서 통상 현안 관리와 공급망 대응이 중요해졌다.
우선 미중 갈등 심화에 따른 한국 경제에 미칠 파장을 최소화하려면 핵심 부품 및 소재의 공급망 다변화와 기술 동맹 강화에 노력해야 한다. 이전 일본과의 갈등으로 반도체 소재에 대한 수출 금지를 겪은 바 있는데 이를 기회로 우리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이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한 바 있다. 마찬가지의 태도로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균형을 유지하는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안보적 측면에서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등의 사안이 있는데 한미동맹의 기본 원칙을 재확인하고 한미 간 이견을 최소화해야 한다.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경제를 성장시키는 길이 국제 사회에서 영향력을 강화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더욱 유연하고 다층적인 외교 전략을 실행해야 한다. 특히,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톱다운 북미협상에 다시 나선다면 한국이 배제되지 않도록 긴밀한 공조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Q. 미국 대선은 미국 사회의 분열이 심화되고 있는 점을 명확히 보여줬는데 우리 사회 역시 극심한 분열이 진행되고 있다. 정치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는가.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는 백인 노동자 계층은 트럼프를, 다문화 고학력자 계층은 해리스를 선호하는 현상이 관측됐다. 미시간주에서는 여성 유권자 57%가 해리스를, 남성 유권자 59%가 트럼프를 지지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각 계층 간 갈등과 균열이 있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
트럼프는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압도했다고 볼 수 없다. 이번 대선에서 전국 득표율은 트럼프 49.8%, 해리스 48.3%였다. 이는 미국 사회에서 중도층이 줄어들고 정치 성향이 크게 갈라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약 중도층이 두텁다면 어떤 후보가 승리할 때 중도층을 흡수한 만큼 격차가 벌어져 박빙으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득표 차가 작다는 뜻은 미국의 정치분열이 심화됐다는 증거다.
트럼프는 미국의 분열을 끝내고 통합한 결과로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아니라 미국의 대립과 분열을 더 부각시킨 결과로 대통령이 됐다고도 보인다. 어떻게 국민 통합을 이뤄낼지가 큰 과제다.
미국뿐 아니라 여러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의도적으로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가 나타나고 있다. 유권자를 편 갈라 지지층을 결집하는 의도다. 상대진영에 대한 혐오, 적대감을 만드는 방식으로 정치하면 순간적으로는 지지층의 열렬한 충성도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길게 보면 사회통합을 방해하고 불신을 깊게 할 뿐이다.
역사를 보면 정치의 역할은 분열이 아니라 ‘통합’과 ‘조율’이다. 정치는 다양한 입장과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사람들 사이에 평화롭게 대안을 찾아오는 수단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정치지도자라면 마땅히 사회를 통합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또, 선거에 이긴 뒤에는 지지하지 않은 국민의 목소리도 아우르는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증오와 분열을 동력으로 정치를 하면 단기적으로는 지지자를 모을지 모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민주주의를 병들게 한다는 점을 기억하고 바른 정치를 해야 한다.
Q. 우리나라의 현 상황에서 정치지도자는 어떻게 자신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보는가.
트럼프는 사업가 출신답게 유권자를 고객처럼 다뤘다. 유권자가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그것을 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 과정에서 ‘경제’ 어젠다의 가치를 재발견했다. 먹고 사는 문제는 결국 모든 것에 귀결되며 그 어떤 어젠다도 앞서갈 수 없다는 점을 배웠다.
그런데 어떤 정책을 추진할 때 우리는 그 정책이 가는 길을 확인할 수 없다. 가지 않은 길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그 길을 가는 과정에서 끊임없는 설득이 필요하다. 그런데 트럼프는 설득의 과정이 없다.
유능한 정치지도자라면 위기와 혼란 속에서도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고 높은 수준의 의식을 보여주며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위기의 본질을 바르게 인식하고 구체적인 해결책과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사회 각 계층을 포용하려는 지도력을 보여줘야 한다.
국민과 솔직하게 소통하고, 명확하게 해결을 제시하고, 희망의 메시지를 보여주고, 일관된 실행력으로 모두를 포용하는 리더십, 그러한 방식으로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일은 이 같은 기본에 충실한 지도자에게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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