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이야기
류이치 사카모토의 아들이자, 그의 생전 모습을 남긴 다큐멘터리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를 만든 감독 네오 소라가 첫 장편 극영화로 돌아왔다. 제목은 〈해피엔드〉. 전작이 명상이라면, 이 영화는 문학이다. 절제되어 있어 행간의 숨은 의미를 상상하게 만드는 시, 혹은 진짜 같은 소설.
영화 〈해피엔드〉는 이렇게 시작한다. “낡은 틀에 사람을 가두는 세력이 술렁인다. 풍화된 건물이 평소보다 더 삐걱댄다. 사람들을 구분 짓는 체계가 붕괴 중인 일본에서 뭔가 크게 달라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
졸업을 앞둔 고등학생 ‘유타’와 ‘코우’는 한 마디로 문제아다. 공무원을 접대하는 교장을 목격한 뒤, 그의 고급 스포츠카에다 반항심을 표한다. 학교는 범인을 색출하고자 학생들을 취조하고, 급기야 곳곳에 CCTV를 설치해 실시간으로 감시하려 든다. 밖에선 매일같이 지진 경보가 울린다. 뉴스에 총리 피습 사건이 보도된 후,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학생이 함께인 학교 안에서마저 재일 외국인을 배척하는 분위기는 더 팽배해졌다. 거리엔 이를 반대하는 시위로 대립하는 경찰과 시민이 있다.
상황이 무엇을 가리키든, 이건 코우와 유타의 이야기다. 친구들과 만든 음악 동아리 안에서 근사한 세트리스트 하나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쁨을 누리던 이들은 점차 어긋나기 시작한다. 이민 4세대 가정에서 나고 자란 한국계 일본인 코우가 부족할 것 없이 자란 일본인 유타에게 묘한 거리감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다. 친구와 놀고 음악에 빠져 있을 시간에 사회의 부조리에 눈을 돌리고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코우의 의심은 부풀어간다. “넌 진짜 친구랑 영원히 즐거울 수 있을 것 같아?” 코우가 묻자 유타는 반문한다. “길에서 소리 지르면 세상이 변해?” 영원할 것 같았던 10대 시절의 우정이 힘없이 끊어진 경험이 떠올랐다. 완벽한 하나인 줄 알았지만 사실 우리는 줄곧 별개의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의 허탈함, 혹은 둘도 없이 지냈던 친구가 시간이 흘러 전혀 다른 어른이 되어 있을 때의 당혹감도.
처음과 끝, 영화는 한 번씩 멈춘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움직임도 없이 음악만 흐르는 그 순간, 보고 듣는 재미는 절정에 달한다. 일본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피아노 위주의 서정적인 사운드에 전자음악을 덧입혔다. 여기에 코우와 유타가 사랑하는 테크노와 일렉트로닉, 앰비언트 음악이 더해져 반항적인 분위기가 완성됐다. “테크노는 미국 디트로이트의 흑인들이 만들어낸 음악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다분히 정치적인 문화다. 이 영화 역시 그런 가능성을 느낄 수 있는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고, 네오 소라는 말했다.
개인과 정치성은 결코 분리될 수 없고, 개인의 경험이라는 씨앗에서 발아된 영화 역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 〈해피엔드〉를 청춘영화라고 말하겠다. 클럽에서 담배 피우고 술을 마실지언정 엄마가 곱게 다려준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10대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로부터 이 영화가 어떻게 다른 길을 걸었는지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말로 대신한다. “청춘영화의 상투적인 수단이라면 어른의 사회로 이행하는 어떤 씁쓸함을 그리는 것일 테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언가를 견뎌내는 것, 감수하는 것임을 둘러싼 감각을 그린다. 이 영화는 그런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해피엔드’라는 제목이 그러하듯.
※ 영화 〈해피엔드〉는 4월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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