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이 원래 컬러풀했다는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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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이 원래 컬러풀했다는 증거

엘르 2025-03-25 00:00:02 신고

근대 가옥 벽지에 담긴 멋과 흥취
강동수


‘정자’(1930년대). 전남 장성 한·일 절충식 가옥 온돌방에서 발견된 바로크 양식의 벽지로, 귀한 수입품으로 부귀의 상징이었던 파인애플과 꽃이 교차하는 패턴이다. 한옥의 작은 한 칸(2.4x2.4m)에 쓰이기 적합하게 스케일을 줄여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자’(1930년대). 전남 장성 한·일 절충식 가옥 온돌방에서 발견된 바로크 양식의 벽지로, 귀한 수입품으로 부귀의 상징이었던 파인애플과 꽃이 교차하는 패턴이다. 한옥의 작은 한 칸(2.4x2.4m)에 쓰이기 적합하게 스케일을 줄여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재호’(1940년대). 강화 교동도에서 발견된 벽지. 러시아 동방정교식 십자가, 만주와 중국의 영향을 받은 모란, 또 다른 십자가 문양이 조화된 도안. 러시아, 만주, 조선의 교류 흔적을 보여주는 이 패턴은 구한말에서 대한제국 시절에 들어와 다양한 형태로 조선에서 토착화됐다.

‘재호’(1940년대). 강화 교동도에서 발견된 벽지. 러시아 동방정교식 십자가, 만주와 중국의 영향을 받은 모란, 또 다른 십자가 문양이 조화된 도안. 러시아, 만주, 조선의 교류 흔적을 보여주는 이 패턴은 구한말에서 대한제국 시절에 들어와 다양한 형태로 조선에서 토착화됐다.


‘영자’(1950년대). 인천 강화도 한옥에서 발견된 벽지. 미군정 시기에 서유럽과 미국 문화를 한국식으로 모방한 패턴으로 추정된다. 같은 패턴에 컬러가 다른 벽지가 살림집이나 상가 건물 등 전국적으로 다양한 장소에서 발견됐다.

‘영자’(1950년대). 인천 강화도 한옥에서 발견된 벽지. 미군정 시기에 서유럽과 미국 문화를 한국식으로 모방한 패턴으로 추정된다. 같은 패턴에 컬러가 다른 벽지가 살림집이나 상가 건물 등 전국적으로 다양한 장소에서 발견됐다.


전남 광주에 있는 강동수 대표의 작업실엔 구한말부터 1970년대까지 100여 년에 달하는 벽지들이 한데 모여 있다. 한옥 리모델링 전문가인 강동수의 시선에 벽지가 들어온 건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전남 보성에서 1893년에 지어진 고택을 복원할 때였다. 보통 공사 과정에서 벽지는 폐기하기 마련인데, 프랑스인이자 텍스타일 디자이너인 그의 아내에게 그곳의 벽지는 조금 특별하게 다가왔다. 여러 겹으로 뭉친 벽지를 뜯어보니 1910년대의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뒷면에 1915년 제1차 세계대전 중 전황이 적힌 신문이 초배지로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모으기 시작한 벽지가 200여 가지에 이르렀다. 그중 몇 가지는 현대적으로 복원해 판매하는 일도 지난해부터 시작했다. 복원 벽지 브랜드 ‘고사테(@gosate.kr)’라는 이름은 골목을 뜻하는 순우리말 ‘고샅’에서 가져왔다. 골목에서 조용히 사라져가는 근대 가옥의 흔적을 아카이빙한다는 취지다. 벽지 이전에 근대건축 유산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었다. 고등학생 때 유럽 여행을 간 강동수 대표는 수백 년 된 건물이 도심에 공공연히 자리한 모습을 보고 놀랐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가 구도심에서 마주한 풍경은 재개발로 부서지고 있는 수십 채의 한옥이었다. “역사와 전통을 강조하는 우리 정서와 모순되는 모습이었죠. 어떤 건물인지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지도 않은 채 사라지는 게 의아했어요.” 근대건축물이 현대에도 잘 쓰일 수 있게 만들고 싶다는 바람에 한옥 학교에 입학했고, 문화재 복원 회사와 인테리어 현장에서 경험을 쌓았다.


‘선영’(1950년대). 고전적인 당초문 패턴에 동글동글한 꽃 문양을 배합한 벽지. 색이 많지 바랬지만 제작 당시에는 꽃잎에 붉은색 잉크가 찍혔던 것으로 추정된다.

‘선영’(1950년대). 고전적인 당초문 패턴에 동글동글한 꽃 문양을 배합한 벽지. 색이 많지 바랬지만 제작 당시에는 꽃잎에 붉은색 잉크가 찍혔던 것으로 추정된다.


‘영환’(1960년대). 식물별로 고유한 형태와 텍스처, 앵두처럼 생긴 작은 열매가 바탕에 깔린 벽지. 대량생산이 시작된 1970년대 이후로 찾아보기 힘든 스타일과 텍스처다.

‘영환’(1960년대). 식물별로 고유한 형태와 텍스처, 앵두처럼 생긴 작은 열매가 바탕에 깔린 벽지. 대량생산이 시작된 1970년대 이후로 찾아보기 힘든 스타일과 텍스처다.


‘금옥’(1960년대). 인천 부평 영단주택 한옥 단지에서 발견된 벽지. 1960년대 중후반에 유행하던 프린트 기법과 프랙털 구조의 꽃 문양이 특징.

‘금옥’(1960년대). 인천 부평 영단주택 한옥 단지에서 발견된 벽지. 1960년대 중후반에 유행하던 프린트 기법과 프랙털 구조의 꽃 문양이 특징.


현재는 구한말 조선시대 후기부터 1970~1980년대까지 만들어진 목조 건물을 다루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한옥 리모델링 사무소 ‘배무이’는 우리말로 ‘배를 짓는다’는 뜻이다. 전통 장례식의 상여가 배의 형상을 띤다는 점에 착안해 사라지는 건축물에 대한 예를 표하고자 붙인 이름이다. 수집한 벽지를 보관하는 방식은 이렇다. 긴 세월 다양한 사용자가 덧바른 벽지들을 한 장 한 장 분리한 다음 신문과 일제강점기 교과서, 교회 주보, 각종 공문서를 이용한 초배지를 보고 연대를 파악한 뒤 다시 순서대로 포개둔다. 수집한 것 중에서 디자인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판단되는 것은 디지털 도안으로 만들고 색 보정 등을 거쳐 복원 벽지로 재탄생시킨다. 복원 벽지는 추정 연대와 당대에 많이 사용된 이름을 붙여 분류하는데, 이는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디자인 원작자를 기리는 마음에서 비롯했다고.


틈틈이 벽지를 기록하고 연구한 결과, 이제 문양이나 잉크만으로도 대략적인 시기와 경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구한말부터 1910년대의 벽지는 일본을 통해 수입된 서양식 벽지나 카피 제품이 많아요. 고전적이고 기하학적 패턴이 자주 보이죠. 1930년대에 들어서면 벽지는 일본풍에 좀 더 아기자기한 느낌으로 바뀌고, 1940년대에 기술력이 높아지면서 좀 더 복잡한 패턴으로 발전합니다. 1960년대에 이르면 국내에도 세계적으로 새로운 벽지 프린트 기술이 보급돼 벽지가 제조되기 시작했어요. 간혹 뒷면에서 제조사 정보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엔 섬세한 텍스처의 유기적인 식물 패턴이 유행했는데, 서양의 보태닉 디자인과 유사하지만 구성이 살짝 달라요. 정형화된 정도가 덜하고 한층 여유롭죠. 1960년대부터 서양식을 변형한 독특한 패턴의 벽지가 많이 등장하는데, 제겐 한국의 미의식이 발현되는 시기처럼 느껴져요. 1970년대에 들어서는 대량생산이 가능해져 오히려 퀄리티가 떨어지는 경향도 보입니다.”


‘선화’(1960년대). 팔각형 패턴에 녹색과 갈색의 조화, 동서양의 오묘한 조화가 아름답다.

‘선화’(1960년대). 팔각형 패턴에 녹색과 갈색의 조화, 동서양의 오묘한 조화가 아름답다.


‘상철’(1960년대). 송학도에 식물 세밀화가 조화를 이룬 벽지. 전국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컬러로 발견되며, 1960년대에 새로운 벽지 프린트 기술이 보급되어 패턴이 매우 섬세하다.

‘상철’(1960년대). 송학도에 식물 세밀화가 조화를 이룬 벽지. 전국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컬러로 발견되며, 1960년대에 새로운 벽지 프린트 기술이 보급되어 패턴이 매우 섬세하다.


그가 한옥을 고치고 벽지를 모으며 느낀 사실은 전통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왜곡돼 있다는 점이었다. 보통 ‘한옥’ 하면 사방이 흰 한지로 마감된 담백한 공간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는 만들어진 이미지에 가깝다는 것이 강동수 대표의 설명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은 박정희 정권 때 형성된 단편적 이미지에 불과해요. 당시 문화재 정비 사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는데, 목적이 민족적 정체성 강화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로 통일되고 시스템화된 것이죠. 새하얀 한지로만 도배했다는 건 사실과 거리가 멀어요. 조선시대 후기 중반부턴 상류층 가옥에서도 화려한 벽지를 많이 쓰기 시작했어요. 실제로 근대 가옥을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흰 한지로 발린 집은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문양 벽지는 근대에 도입돼 확산됐기에 일제의 잔재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당시 일본에서 생산된 서양식 벽지가 널리 사용됐던 건 사실이나, 사용 방식과 정도에서 나름의 고유성을 발견할 수 있다. “벽지로 공간 전체를 도배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해요. 일본 가옥은 한국만큼 벽지를 많이 사용하지 않아요. 서구권에서도 부분부분 사용했지, 바닥까지 바르는 경우는 없었어요. 비록 서양식 패턴을 모티프로 한 벽지가 많지만, 이런 것들이 국내에서 유행했다는 사실은 한국 고유의 인테리어 문화를 방증하죠.”


개화기부터 1910년대까지는 주로 천장에 문양 벽지를 쓰고 나머지는 흰색으로 도배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다 19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문양 벽지를 공간 전체에 사용하는 흔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방마다 사용한 종류나 위치도 다양하다. “예컨대 걸레받이보다 조금 높은 곳에 자잘한 패턴의 띠 벽지를 바르고, 큰 패턴은 벽이나 천장에 적용하는 식이에요. 이렇게 세세히 구분해 벽지를 바른 건 한국만의 장식 문화로 볼 수 있어요. 다양한 국가와 문화권의 상징적 기호를 조합해 어딘가 살짝 다른 패턴을 만들어낸 것도 그렇고요. 한국인들은 생각보다 전통을 고집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우리 식으로 재해석하는 경향이 강했던 것 같아요.”


수많은 벽지를 만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을까. 그는 강화 교동도에서 1950년대 벽지를 발굴한 순간을 꼽았다. “한국전쟁 전후로 발린 벽지였는데, 당시 흔히 쓰였던 고전적 패턴에 전쟁을 연상케 하는 프로펠러와 오각별을 더해 변형한 패턴이었어요. 마치 사이버펑크 문양처럼요. 전쟁이라는 비극 속에도 현재를 긍정하고 미의식을 잃지 않으려고 했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힘들 때마다 이 벽지를 한 번씩 꺼내 보곤 합니다.”


복원 현장의 벽지와 복원 벽지로 마감된 현대의 공간들.

복원 현장의 벽지와 복원 벽지로 마감된 현대의 공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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