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기름은 한국 요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재료다. 고소한 향과 깊은 맛을 지닌 참기름은 평범한 음식에까지 품위를 부여하는 놀라운 힘을 갖고 있다. 한국인의 최애 식용유인 참기름에 대해 알아봤다.
참기름은 지방 함량이 높아 기름을 짜내기에 적합한 곡물인 참깨를 원료로 짜낸 식용유다. 동아시아 요리에 자주 쓰이는 전통적인 식물성 기름으로 꼽힌다. 인류가 언제부터 참기름을 먹었는지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지만, 고고학적 증거와 문헌을 보면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참깨를 재배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지역에서 참깨는 식용과 약용으로 쓰였고, 기름을 짜는 기술도 그 무렵 시작됐을 가능성이 있다. 인도와 중국에서도 기원전 2000년쯤부터 참깨를 재배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이처럼 참기름은 고대 문명에서부터 중요 식자원이었다. 중국의 고문헌인 여씨춘추에서도 참깨가 언급되지만, 기름을 짜냈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부족하다. 그래도 이후 동아시아 전역으로 퍼지며 참기름은 식문화에 깊이 뿌리내렸다.
한국에서 참기름을 언제부터 먹었는지 명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참깨 재배는 삼국시대(기원전 1~7세기)부터 참깨 재배가 이뤄졌다고 본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참깨가 직접 언급되진 않지만, 농업이 발달한 백제와 고구려에서 참깨를 키웠을 가능성이 크다. 고려시대(10~14세기)에 이르러 참기름이 식용으로 본격 활용됐다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조선시대(14~19세기) 문헌에는 참기름이 방앗간에서 짜여 조미료와 식용유로 쓰였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참기름이 일반 가정에서도 흔히 사용돼 나물이나 국에 풍미를 더하는 데 필수적인 존재로 자리 잡았다.
참기름을 만드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온압법이다. 한국에서 주로 쓰이는 방식이다. 참깨를 섭씨 210도 이상에서 볶은 뒤 압착해 기름을 짠다. 이렇게 하면 색이 짙어지고 향이 강해진다. 볶는 정도에 따라 품질이 달라지는데, 너무 바짝 볶으면 기름은 많이 나오지만 탄내가 나고 쓴맛이 강해진다. 살짝 볶으면 향이 부드럽고 산화가 덜 돼 품질이 좋아진다. 두 번째는 냉압법이다. 참깨를 볶지 않고 생으로 압착한다. 이 방법은 일본이나 서양에서 흔히 쓰인다. 이렇게 만든 참기름은 색이 연하고 향이 덜 진하다. 한국에서는 온압법 참기름이 주류를 이룬다. 다만 냉압법으로 만든 수입산 참기름도 시장에서 볼 수 있다. 시중에서 파는 참기름은 원료와 제조법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다. 예컨대 오뚜기 ‘고소한 참기름’은 통참깨를 볶아 짜낸 고급 제품이고, ‘옛날 참기름’은 볶은 참깨분을 사용해 가격이 저렴하다. 또 수입산 참깨를 섞거나 옥수수기름 같은 다른 기름을 혼합한 ‘향미유’도 있다. 순수 참기름은 아니다.
한국에서 참기름은 주로 조미료로 활용된다. 비빔밥, 나물, 국, 찌개에 소량 넣어 고소한 풍미를 더한다. 강한 향 때문에 적게 써도 음식 맛을 확 바꾼다. 횟집에서는 참기름에 간장, 고추장 등을 섞어 양념장으로 내놓는다. 가정에서는 소주병에 담아 보관하는 경우도 많다. 소주병은 크기가 적당하고 색이 진한 참기름을 구분하기 쉬워 실용적이다.
튀김용으로는 잘 쓰이지 않는다. 발연점이 낮아 고온에서 타기 쉬운 데다 발암물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참기름을 튀김용으로 많이 쓴다. 특히 도쿄 지역에서는 냉압법으로 만든 참기름에 재료를 즉석에서 튀기는 조리법이 인기다. 이렇게 하면 향이 강하지 않아 재료 맛을 해치지 않는다. 일본 요리에서는 라멘이나 덮밥에 몇 방울 떨어뜨려 풍미를 더하기도 한다. 한국처럼 조미료로 쓰이지만, 온압법 대신 냉압법을 선호해 향이 부드럽고 기름 자체가 가벼운 편이다. 튀김 문화가 발달한 일본 특성상 참기름은 식용유 역할도 겸한다.
중국에서는 참기름이 중화요리에 필수적이다. 주로 볶음 요리나 샤브샤브 소스에 넣어 향을 낸다. 중국식 참기름은 한국처럼 온압법으로 만들어 향이 강한 편이다. 특히 사천 요리에서는 매운맛과 어우러져 깊은 맛을 내는 데 활용된다. 중국 가정에서는 만두나 국수에 뿌려 먹기도 하며, 식용 외에 약용으로도 쓰인다. 고대부터 참기름은 소화를 돕고 몸을 따뜻하게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중국산 저가 참기름 중에는 참깨 함유량이 5~10% 미만인 향미유가 많아 품질 논란이 있기도 하다.
각 나라의 참기름은 제조법과 용도에서 차이가 난다. 한국 참기름은 온압법으로 짜내 향이 진하고 조미료로 주로 쓰인다. 일본은 냉압법을 써서 향이 약하고 튀김용으로 적합하다. 중국은 온압법을 사용하지만, 볶음 요리와 약용으로 활용 범위가 넓다.
원료도 영향을 미친다. 한국은 수입산 참깨(수단, 인도, 에티오피아 등)를 많이 쓰지만, 재래시장에서는 국산 참깨로 만든 고급 참기름을 찾을 수 있다. 일본과 중국도 수입산을 주로 사용하지만, 일본은 향을 줄이기 위해 가공을 더 거친다.
아시아와 달리 미국에서는 참기름을 식용보다 미용 목적으로 더 많이 쓴다. 피부에 바르거나 마사지 오일로 사용한다. 참기름 속 불포화지방산과 비타민 E가 피부 보습에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시아계 이민자 커뮤니티를 제외하면 식용으로는 잘 이용하지 않는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참기름 특유의 냄새다.
미국인 중 일부는 참기름 향을 스컹크 방귀 냄새와 비슷하다고 느낀다. 스컹크가 뿜는 악취는 티올이라는 화합물로 이뤄져 있는데, 이는 마늘, 태운 고무, 산패된 참기름과 비슷한 성분을 가진다. 북미 지역에서 스컹크 냄새를 자주 접하는 사람들은 참기름 냄새를 맡으면 감각 연상으로 혐오감을 느낀다. 실제로 미국, 캐나다 등 북미엔 참기름이 들어간 한국요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로 참기름 향에 길들여진 한국인들은 스컹크 방귀 냄새를 맡아도 낯설지 않게 느낄 수 있다. 이런 인식 차이는 식문화와 냄새 경험의 차이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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