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최주원 기자】 미국과 중국의 인공지능(AI) 패권 대립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국내 AI 및 반도체 산업의 미래 전략 수립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특히 기술 자립도 확보와 글로벌 경쟁력 선점이 주요 도전과제로 지목되면서 산업계에서는 AI 패권 경쟁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백악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대로 내달 2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대규모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재확인했다. 특히 자동차와 반도체 등 핵심 산업에 25%의 추가 관세가 적용될 전망이어서 한국의 주력 수출 산업 전반에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 같은 위기감 속에 한국 정부는 대응에 나섰다. 지난 13~14일(현지 시각) 산업통상자원부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 워싱턴 D.C.를 찾아 미국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면담하고 상호 관세 면제 등 한국의 입장을 전달했다. 지난 19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중견기업 CEO 강연회’에서 정 본부장은 내달 2일 한국을 포함한 21개국에 적용될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실현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본부장은 “미국은 무역수지 적자 축소를 위해 관세와 비관세 조치 모두를 동원하겠지만 근본적으로 상호관세 도입을 통해 적자 폭을 줄이겠다는 입장은 확고했다”라며 “미국은 자국 상품에 대한 관세율, 비관세 조치, 환율, 부가가치세, 불공정 무역 관행 등 5가지 기준을 제시했는데 이 요소가 최종 결정에 모두 고려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반도체와 배터리를 미국에 수출해 무역흑자를 내는 한국은 반도체 소재의 40%, 배터리 소재의 80%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국내 AI 반도체 기업 대부분이 해외에 생산기지를 운영하고 있어 미·중 대립 리스크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국내 산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최근 미중 무역 갈등 격화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한편으로는 수요 회복에 따른 기회를 제공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실적 반등에 위협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라며 “특히 중국은 반도체 핵심 시장이지만 지정학적 갈등 심화로 현지 반도체 공장 운영과 투자 계획에 난관이 늘어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럼에도 한국, 미국, 중국 정부와 긴밀히 소통하며 공급망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간 기술 패권 경쟁은 단순한 무역 갈등을 넘어 AI, 반도체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양국 간 격차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두 강대국은 관세전쟁 한복판에서도 첨단기술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중국은 최근 저비용·고효율의 대형 언어 모델(LLM) ‘딥시크 R1’을 공개하며 기술력을 과시했고, 미국은 엔비디아를 앞세워 차세대 GPU 개발 및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며 기술 격차를 더욱 벌리고 있다.
특히 고성능 AI 모델의 등장과 관련 서비스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AI 학습·추론에 필수적인 고성능 GPU 인프라 확보는 국내 IT 기업들의 생존을 좌우하는 핵심 역량으로 부상했다. 이에 정부는 AI 산업 육성에 필요한 지원을 약속하며 산업 경쟁력 강화에 나설 것임을 드러냈다.
과기부 관계자는 “한국은 미·중에 이어 영국, 싱가포르, 프랑스 등과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 중이며 AI 생성기술 특허와 독자 모델 보유 측면에서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라며 ”정부는 내년 상반기까지 1만8000장의 GPU를 확보해 기업들의 AI 연구개발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국은 글로벌 AI 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으며, 주요국과의 경쟁에서도 뒤처지고 있다는 냉정한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AI와 반도체 분야에서 중장기적 관점의 미래 전략 수립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최난설헌 교수는 단기적인 기술 개발과 인프라 확충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AI 분야의 고급 인재 확보와 탄탄한 지식재산권 보호 체계가 한국의 AI 경쟁력을 결정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혁신을 바라보는 긍정적 시각은 순간에 불과한 반면 위험성에 대한 우려는 과도한 규제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며 “플랫폼 규제에 이어 AI 분야까지 확산되는 규제 일변도의 접근법이 시의적절한지 근본적인 재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글로벌 관점에서 한국이 AI 선도국이 아니라는 평가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며 상위권 경쟁국이라는 평가조차 낙관적 시각에 불과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하다”며 “이 중요한 시기에 한국은 인재 확보와 더불어 AI의 혁신 가능성과 잠재적 위험 요소를 동시에 관리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접근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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