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어린시절 한번쯤은 들었을 고함이다. 글제가 제맛이 나려면 ‘게 섯거라’를 이어야 제격이다. 참외서리를 할라치면 저만치에서 들려오는 밭주인의 목소리가 아니던가?
주말 일과처럼 돼버린 서울로 발길이다. 가파른 세태에도 아랑곳 없이 길가에 몽실한 개나리 꽃망울이 눈길에 들어 ‘나리 나리 개나리…”가 절로절로다. 세류천변 연녹 잎새의 수양버들 가지도 치렁치렁하니 제멋으로 바람결에 나붓대니 정녕 봄인게다. 빼앗긴 맘에도 봄이 오는가?
시청역에 도착하니 하나, 두울, 세엣,... 펄럭이는 ‘구국동지회’의 하늘색 깃발에 이어 반가운 얼굴들이다. 군 울을 29년전에 떠났건만, 위중한 시국에 내 안에 양심을 붙안고 선후배들간 충성! 충성! 거수경례로 인사를 나누며, 서로 의지한 채 거리로 나선지 벌써 몇해 이던가? 그 얼마나 외쳤던가? 쉼 없이 달려 온 마라토너 처럼 서서히 골인지점에 다다른다 싶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인지라 어서 ‘봄비’가 내려 이 나라에 생기가 돌면 좋으련만…
생뚱맞게 오리타령이다. ‘동의보감’엔 오리는 몸을 보하는 먹거리로 등장한다. ‘탐관오리’는 어떠려나? 쇠오리, 청둥오리, 가창오리, ...수십여종에 달하는 오리건만 어찌된건지 아무리 조류도감을 뒤적여도 ‘탐관오리’는 띄지 않는다. 단지, 비켜 든 역사서에 사철 백성을 훑어대고 나라를 망치는 분(?)들로 묘사되어 있을 뿐이다. 이조시대엔 이들을 징치하기 위한 제도로 왕의 특명을 받는 암행어사제가 있기에 옛얘기 보따리에 든 ‘마패’와 ‘어사출두’ 함성은 나름대로 통쾌한 구석이 있다.
며칠전부터 집근처 황구지천 둑방에 오리들이 늘어서 있다. 이상스레 여느 때와 달리 한마리도 냇물에서 노니질 않고 물밖에 나와 있는 것이다. 물가에 비상경계령이 내렸나? 견강부회려나? 때 맞춰 자취를 감췄던 오랜동안 ‘탐관오리(?)’들이 내다 건 찌질한 현수막들이 다시 줄줄이 나붙었다. 완장부대에 비상경계령이 내렸나보다.
헌데, 줄줄이 알사탕 대신 ‘기각’이니 국민을 불안케 한 손해배상 요구는 필연이겠다. ‘탐관오리’들은 철새가 아닌 완장찬 나라 망치는 텃새들인지라 암행어사를 대신해 시민들이 수년간 나선 게다. ‘마패와 육모방망이’ 대신 ‘태극기’를 들고 자유대한의 주인인 국민들이 ‘네 이놈들아 게 섯거라’ 외치는 게다.
시민들이 오늘도 손에 손잡고 봄비를 기다린다. 뜨겁게 고마워라. 결기로 함께 한 발길들, 응원의 손길들, 모두에게 축복이려니…
Copyright ⓒ 저스트 이코노믹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