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골키퍼가 되고 싶었다. 현실과 한참 동떨어진 목표였지만, 결코 모호하지 않았고 매우 구체적인 목표였다."
독일 전 축구국가대표 올리버 칸(Oliver Kahn)이 언론 매체와 인터뷰에서 밝힌 말이다. 칸은 전 세계 많은 축구팬들에게 '천재 골키퍼'이자 '역대 최고의 골키퍼'로 기억되고 있다. '거미손'이란 그의 별명도 '철벽 방어'란 의미로 전 세계 수많은 팬들에 의해 불렸다.
칸은 1999년, 2001년, 2002년 세 번에 걸쳐 '세계 최고의 골키퍼'라는 타이틀을 거머줬다. 또한 '유럽 최고의 골키퍼' 4차례, '올해의 독일 축구선수에 2차례 선정됐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도 최고 골키퍼에게 주어지는 '야신상'과 함께 최우수선수(MVP)로 뽑혀 '골든볼'을 동시에 거머줬다. 이같은 출중한 실력은 많은 축구팬들이 그를 기억하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실력보다 전 세계 축구팬들의 그를 더욱 높게 평가하는 건 '집중력'이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의 실력은 '고도의 집중력에서 나온다'고 밝힌 바 있다.
"내 두뇌는 그야말로 최고 수준으로 집중력을 발휘한다. 그 이상 집중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다. 정신을 어지럽히는 자극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칸이 했던 인터뷰 내용 중 하나다. 그는 또다른 인터뷰에서 "경기장에 서 있으면 머릿속에서 뭔가 '찰칵'하는 소리가 나고 그 다음부터는 100% 그 순간에 집중하게 된다. 그럴 때면 모든 경기가 결승전 처럼 느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칸의 집중력은 물론 타고난 것은 아니다. 그는 집중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음을 밝힌 바 있다. 경기하는 동안 한 시도 놓치지 않고 공에 시선을 고정하는 훈련은 그가 오래 전부터 해온 노력 중 하나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경기를 앞두고는 평소에도 오직 축구공만 생각한다"며 "경기 중 라커에서 동료들과 있을 때에도 그는 스스로 혼자인 것 처럼 행동하면서 모든 정신은 오직 공에만 집중시킨다"고 했다. 집중력이 바로 올리버 칸을 가장 성공한 골키퍼로 만든 비결인 셈이다.
사실 칸의 '집중력'은 타고 난 것이 아니다. 부단한 노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는 처음부터 축구에 재능을 인정받지는 못했다. 오히려 주목받지 못하는 그저그런 선수였다.
실제 6살 때인 1975년 유소년클럽에서 부터 일찍 축구를 시작했지만,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하기까지는 순탄치 않았다.
우락부락한 외모와 달리 어린 시절 약골이었던 칸은 16세가 되던 해 여러 클럽에 입단 신청서를 냈지만 체력이 약하다는 이유로 모두 거부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프로에 데뷔한 건 18세때인 1987년. 데뷔 초에도 벤치 신세만 지던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1994년이 되서야 명문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하면서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첫 독일 대표팀에 발탁된 건 1995년. 이후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도 참가했지만 후보 선수였던 그는 비로서 이름을 알리게 된 건 2000년경이다.
그해 올해의 독일선수상과 유럽 최우수골키퍼상을 수상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린 칸은 2001~2002년 시즌에는 소속팀이 독일 분데스리가와 유럽선수권대회에서 동시에 우승하면서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준결승전까지 6경기를 치르는 동한 단 1골만 허용하는 '철벽방어'로 최고 골기퍼에게 주어지는 '야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때 뿐만 아니라 그는 소속 리그에서도 '가장 실점을 허용하지 않는 골기퍼'로 각인되기도 했다.
칸은 가장 '경제적인 골키퍼'로도 불렸다. 그라운드에서 '최소실점'의 대명사가 된 것도 이유였지만, 그는 실제 골기퍼로써 큰 부를 거머줬기 때문이다.
1994년 바이에른 뮌휀으로 소속팀을 옮기면서 230만 유로(한화 약 37억 원)으로 당시 골키퍼 포지션으로 최대의 이적료를 기록했던 칸은 경제학과 주식 투자 등에도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언론 자료 등에 따르면 그는 선수로써 뿐만 아니라, 프로축구단 경영자, 경제해설자, 투자자 등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재미있는 건 그의 경제 관념이 사생활에도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가 은퇴 이후 화제가 된 것 중 하나는 바로 이혼 때문이다. 그는 처음 결혼한 2004년 부인과 이혼했다. 이혼 이유는 임신한 부인을 두고 나이트클럽 웨이트리스 출신 누드모델과 불륜이 발각되면서다.
칸이 이혼하면서 지불한 위자료는 약 35억 원. 이같은 금액은 당시 500억 원에 달했던 칸의 재산에 비해 너무 적은 액수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유럽에서는 이혼 시 통상 부부가 전 재산을 절반으로 나누는 게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본업이었던 '축구'에서도, 그리고 이혼 위자료에서도 '철저한 경제 관념'으로 '짠물 수비'를 펼쳤던 칸은 지금도 '가장 경제적인 골키퍼'로 명성이 회자되고 있다.
배충현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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