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메디먼트뉴스 이혜원 인턴기자] SBS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가 20일 방송된 167회에서 ‘직업살인마 정두영’의 무자비한 범죄 행각을 파헤쳤다. 이날 방송에서는 배우 김민재, 걸그룹 아일릿의 윤아, 씨엔블루 강민혁이 리스너로 출연해 텔러 장도연, 장현성, 장성규가 들려주는 충격적인 정두영의 이야기를 듣고 반응을 보였다.
텔러 장트리오는 리스너들에게 최근 근황과 함께 현재 직업에 대해 만족하는지 묻는다. 그리고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문장으로 오늘의 그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날은 1999년 여름, 부산 해운대 한 카페에서 딸의 남자친구를 만난 예비 장모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미숙(가명) 씨는 자신의 딸 보다 나이가 10살이 많고 체격도 왜소한 것 등 남자의 모든 것이 탐탁지 않았지만, ‘사업가’라는 직업 하나는 마음에 든다. 또, 딸의 고집도 이길 수 없었던 미숙 씨는 결혼을 승낙하게 된다. 결혼 준비로 같이 지내는 동안 성실한 모습과 착실히 모아온 결혼 자금으로 고급 아파트까지 계약하게 되면서 예비 사위가 점점 마음에 든다. 그런데 한달 쯤 지나 예비 사위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그가 현행범으로 잡히게 된 건 2000년 4월 12일 천안, 대낮에 벌어진 인질극이었다. 외근 중이던 정산희 형사는 ‘아내가 갑자기 연락해서 현금 천 만원을 집으로 보내달라고 전화가 왔다.’며 인질극으로 의심된다는 긴급 연락을 받게 된다. 30여 명의 형사들이 신고자의 집으로 출동하고 창문 안쪽을 들여다보니 손에 칼 든 남자가 아내 앞에 서 있는 걸 보게 된다. 잠시 후, 남편의 비서가 돈이 든 가방을 들고 도착하고 집으로 들어가 안의 상황을 살펴보려는데, 갑자기 아내가 나와 돈가방만 들고 잽싸게 들어간다. 그 순간, 인질범이 거실 창문을 열고 나와 그 집 담을 타고 옆집 옥상으로 도주한다. 형사들이 도주하는 범인을 쫓아가는데, 정 형사는 “범인은 연립이라 2층 집 쪼르륵 있는데 집과 집 사이에 공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뛰어넘고 또 다른 집과 집 사이를 뛰어넘고. 이게 한 5채, 6채 정도 되는 집을 계속 뛰어서 넘어갔다.”고 말한다. 정 형사는 포기하지 않고 범인을 따라 뛰어넘는다. 마지막 집 옥상에 도착한 순간 범인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밑을 내려다보는데 범인이 들고 있는 칼을 보게 된다. 범인은 눈이 돌아 당장이라도 정 형사를 찌를 기세였고 다른 형사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놓칠 것 같아서 근처에 무기가 될 만한 걸 찾다가 삽을 찾게 된다. 범인도 그 삽을 보게 되고 정 형사와 범인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삽으로 뛰어들게 된다. 마침내 정 형사가 삽을 잡게 되고 다른 형사들이 도착하자 범인이 포기한 듯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렸고, 그를 검거하게 된다.
더할 나위 없는 사윗감이었던 그는 사업가가 아닌 강도였다. 그런데 보통 강도가 아닌 10개월 동안 총 9건의 연쇄살인을 저지른 ‘직업살인마 정두영’이었다. 특히, 살인사건 9건 중 흉기를 사용한 건은 단 3건 뿐이다. 나머지는 맨손 혹은 둔기로 살해했다. 그에게는 이런 수식어가 붙는다. ‘유영철의 롤모델’. 유영철이 “정두영의 기사를 봤다. 배울 점이 많았다.”라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렇게 최악인 수식어보다 더 최악인 수식어가 있는데, 바로 ‘직업살인마’라는 수식어이다.
지난 1999년 9월 15일, 부산의 부촌인 대신동에서 강도 살인사건이 일어나 2300만 원 상당의 금품이 도난당하고 가사 관리사가 살해된 것이다. 범행 현장이 너무나도 참혹했다. 흉기를 사용한 흔적 없이 맨손으로 폭행을 해 살인을 저지른 범인. 이에 경찰들은 “맨손의 살인마가 다시 나타났다”라고 했다. 석 달 전 비슷한 사건이 있었는데, 경찰은 직감적으로 같은 범인의 사건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낮 시간대에 방범시설이 잘 된 곳을 노려 피해자를 무차별 폭행해 살인한 범인. 경찰은 범인을 잡기 위해 노력했지만 치밀한 범인은 완전 범죄를 꿈꾸며 어떠한 단서도 남기지 않았다. 대낮에 부잣집을 노리는 정두영의 범행은 유영철이 카피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는 소년원을 오가며 체득한 노하우로 범행을 했는데 범행 도구는 준비하지 않고 현장에서 구해 범행을 저질렀고, 급할 땐 맨손으로 범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이 날도 침입하자마자 주방에서 칼을 챙긴 정두영이었다. 그런데 이때 거실에서 17개월 된 아기의 인기척이 들렸고, 정두영이 아기를 향해 다가가던 순간 가사 관리사 송 씨와 40대 여성 양 씨가 등장했다. 이때 가사 관리사는 야구방망이를 들고 정두영을 막아섰다. 정두영은 들고 있던 칼을 내려놓고 송 씨가 들고 있던 야구방망이를 빼앗고 폭행하기 시작했다. 결국 두 여성 모두 숨을 거두었다. 정두영은 살인 후 무려 2시간 동안 금고를 부숴 현금 1500만 원을 훔쳤다. 정두영은 사람을 죽여서라도 금품을 강취해야 하는 금품에 대한 집착이 상당했다. 그는 목격자를 없애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고, 매달 자신이 정한 목표액을 채우고 저축했다. 그런데 이날 사건은 하나의 변수를 만들었다. 금고를 부수는 도중 아기의 엄마가 돌아온 것. 정두영은 아기의 엄마도 살해하고자 했다. 그런데 폭행 도중 아기 엄마는 정두영에게 한 마디를 건넸다. “아기가 있다,”는 말이었다. 이에 정두영은 아기와 아기 엄마를 그대로 두고 현장을 떠났다.
그렇게 목격자의 진술대로 몽타주가 작성되었다. 그리고 현장에서 발견된 족적으로 그가 어느 브랜드의 신발을 신었는지 특정도 되었지만 수사는 더 나아가지 못한다. 이에 시민들의 원성은 높아졌고 피해자들의 유가족들의 분노도 더욱 깊어졌다. 결국 정두영을 공개 수배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 천안 인질극의 범인을 잡은 형사들은 그가 부산에서 살인으로 12년 만기 복역 후 출소한 사실을 확인한다. 그리고 부산 연쇄 강도 살인사건이 떠올린다. 이에 몽타주와 정두영의 얼굴을 비교했다.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한 형사가 정두영의 신발을 보았고 공개 수배 사건의 범인과 동일한 신발을 신고 있는 것을 확인한다. 다음 날 새벽에 사진을 받아 바로 목격자에게 갔고 그렇게 연쇄 살인범의 정체가 밝혀졌다. 공개 수배 사실을 알고 사건 무대를 부산에서 천안으로 바꾼 정두영. 형사들은 정두영의 자백이 필요했고 돈에 집착하고 있던 그를 돈으로 흔들어 자백을 유도했다. 10달 만에 강도짓으로 현금 1억 3천만 원을 모은 정두영. 그는 돈에 대한 집착 때문에 모든 범행을 실토했다. 그가 벌인 범죄는 총 23건, 그중 부산에서만 15건의 범행을 저질렀고 그 과정에서 9명을 살해했다. 한 달에 한 명 꼴로 사람을 죽인 그의 목적은 돈이었다. 30세에 출소해 얼마 안 가 미숙 씨의 딸인 은주 씨를 만난 정두영은 은주 씨와의 미래를 꿈꾸며 범행을 저질렀다. 목표 금액 10억 원. 그 돈이면 아파트도 사고 PC방도 차릴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범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붙잡힌 정두영은 “그간 모은 돈만이라도 은주에게 주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 그렇게까지 무참하게 살인을 저지를 필요가 있었냐는 질문에 “피해자들이 심하게 고함을 질러 내가 격분하여 때려죽였다. 처음부터 죽일 마음은 없었는데”라며 자신도 왜 흉기를 사용하지 않고 때려죽였는지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피해자들에게 미안하지 않냐는 질문에는 "남들처럼 살아보려고 그랬다. 죄송하다. 그런데 마음은 홀가분하다"라며 "내 마음 자체가 악마였는지 모른다"라며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분노를 일으켰다. 아기가 있다는 말에 목격자를 죽이지 않은 그는 이후에도 엄마라는 단어만 나오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프로파일러는 이를 보고 ‘그의 트리거’라고 생각한다. 프로파일러는 "어머니에 대한 원망, 그것이 사회 전체에 대한 불만으로 확산된 것이 아닌가 싶다. 세상이 자기를 도와주지 않았다는 불만을 가졌는데 자기가 공격했던 피해자들이 나를 버렸던 세상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죄책감을 덜 느끼며 범행을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라고 분석했다. 정두영은 아버지 사망 후 어머니의 재혼으로 고아원으로 보내졌는데 이에 어머니와 사회를 원망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결혼에 대한 집착과 과도한 폭력성이 어머니에 대한 결핍 때문으로 보인다.
정두영은 사형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2016년 8월 8일 오전 7시 36분, 탈옥을 시도하다 8분 만에 붙잡힌다. 정두영은 세상을 원망하고 마음 자체를 악마라고 표현했지만, 모든 건 그 스스로가 선택한 일이다. 그러니까, 그는 스스로 ‘직업 살인마’가 된 것이다.
당시 담당 형사였던 이재길 형사는 피해자의 가족들이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해 주고 무려 10년 간 사비로 유족을 도왔다. 이재길 형사는 “빨리 검거를 못해서 피해자들에게 항상 죄짓는 기분이었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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