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8살이던 35년 전 공군에 입대하여 바로 독일로 향했고, 전투기 '토네이도'에 배치됐습니다."
영국 공군의 준장이자 현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공중 조기 경보 및 통제군(AWAC)의 부사령관인 앤디 터크는 이같이 말했다.
"당시는 냉전이 끝나갈 무렵으로, 그때는 우리가 핵 역할을 맡고 있었습니다."
"전쟁 이후 우리는 평화를 바탕으로 경제 발전을 이루고, 지정학적으로도 이제 진전할 수 있길 바랐으나, 러시아는 이를 원하지 않는 듯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제 제 큰아들이 공군에 입대해 변화를 만들어 나가고 싶다고 합니다 … 비슷한 상황이 또 한 번 순환하는 기분입니다."
우리는 발트해의 약 3만 피트 상공을 순항하는 NATO 감시 비행기에 있다. 비행기에 장착된 거대한 버섯 모양의 레이더가 수백 마일에 걸쳐 러시아 측의 의심스러운 활동은 없는지 탐지한다.
이러한 공중 경찰 임무와 더불어 NATO 회원국이라는 지위 덕에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와 같이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작은 발트해 국가들은 오랫동안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과의 친분을 통해 이를 변화시키고 있다. 이는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에도 분명히 드러났던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에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미국의 군사적 지원을 당연하게 여길 수 없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로 인해 발트해 연안 국가들은 불안감에 떨고 있다. 이들은 소련이 해체되고 냉전이 끝날 때까지 40년간 소련의 지배를 받았다.
이제는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회원국이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들 국가가 여전히 자국의 영향권에 속한다는 믿음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다닌다.
만약 우크라이나에서 승리를 거두게 된다면 푸틴 대통령은 이제 이들 발트 3국에 관심을 돌리게 될까.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을 위해 개입할 마음이 없다고 느껴진다면 상황은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
'러시아 경제가 재편되고 있다'
영국 런던 소재 '유럽개혁센터'의 이안 본드 부센터장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장기 휴전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푸틴 대통령은 절대 거기서 멈추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라면 누구도 유럽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나리라 생각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점점 더 많은 유럽 정보기관으로부터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것입니다."
"3년이 될지, 5년, 10년 후에 벌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이들은 유럽에서 평화가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생각은 이제 과거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러시아 경제는 현재 전시 체제다. 연방 정부의 예산 중 약 40%가 국방 및 안보에 쓰이고 있다.
경제의 점점 더 많은 부분이 전쟁 물자 생산에 할당되고 있다.
본드 부센터장은 "러시아 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재편성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라면서 "평화가 아니"라고 덧붙였다.
- 유럽군의 우크라이나 주둔은 평화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될까
- 한국이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 '푸틴처럼 사고하는 트럼프'는 '자유주의 세계 질서'의 종말일까?
에스토니아 국경에서의 '속임수와 전술'
바람이 많이 불기로 유명한 에스토니아 북부 나르바 지역을 가보면 왜 이토록 이 나라가 스스로 외부에 노출되어 있다고 느끼는지 알 수 있다.
에스토니아는 동부 국경 전체를 러시아와 맞대고 있다. 그리고 나르바는 에스토니아 최동단에 자리한 도시로, 나르바강이 두 나라 사이를 흐르고 있다.
나르바강둑에 세워진 중세풍의 한 요새 한쪽에는 러시아 국기가, 다른 한쪽에는 에스토니아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그 사이에는 다리가 하나 놓여 있다. 유럽에서 아직도 러시아와 연결된 마지막 보행자용 교차로 중 하나다.
'에스토니아 국경 수비대' 에거트 벨리체프 책임자는 "우리는 저들의 속임수와 전술에 익숙하다"며 말을 꺼냈다.

"러시아의 위협은 우리에게 새롭지 않다"는 그는 국경 지역에는 "끊임없이 도발 사태가 발생하고, 긴장이 맴돈다고 덧붙였다.
국경 수비대는 열화상 카메라를 이용해 러시아 측에서 어둠을 틈타 나르바강에 떠다니는 두 나라 사이 국경을 구분하는 부표들을 제거하는 모습을 기록한다.
"우리는 드론, 헬리콥터, 항공기 등 모두 GPS 신호를 사용하는 공중 장치를 사용하는데, GPS 전파 교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즉 러시아는 우리가 임무를 수행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 후 러시아 쪽으로 향하는 눈 덮인 다리에 발을 디뎌 보았다. 러시아 국경 수비대가 나를 지켜보았고, 나도 그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에스토니아 영토 안에 있는 나와 러시아 국경 수비대 간 사이는 불과 몇 미터에 불과했다.
지난해 에스토니아 측은 해당 다리에 용치(피라미드 모양의 콘크리트 대전차 장애물)를 깔아두었다.
러시아가 수많은 탱크를 보낼 것이라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다. 몇 명의 군인만으로도 상황을 불안정하게 마구 흔들어놓을 수 있다.
나르바 주민의 약 96%가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이들이며, 이중 국적자인 이들도 많다.
에스토니아 측은 현재 자신감이 넘치는 푸틴 대통령이 나르바 주변에 자리한 대규모 러시아 민족 공동체를 침공의 구실로 삼진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이는 푸틴이 우크라이나는 물론 조지아를 침공할 당시 이미 사용한 바 있는 전략이다.
불안감이 커지고 있음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리투아니아, 폴란드와 더불어 에스토니아 정부는 이번 주 대인 지뢰 사용을 금지하는 국제 조약에서의 탈퇴를 승인해달라고 의회에 요청했다고 발표했다. 해당 국제 조약의 서명국은 160개국에 이른다.
이는 국경 방어에 있어 "더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리투아니아는 이미 이달 초 집속탄 사용을 금지하는 국제 협약에서 탈퇴한 바 있다.
NATO 비회원국들은 더 큰 위험에 처해 있나?
한편 카미유 그랑 전 NATO 국방 투자 담당 사무차장보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푸틴 대통령이 (몰도바와 같은) NATO 비회원국가들을 표적으로 삼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평가했다. 국제적 반발을 부를 위험이 낮기 때문이다.
그랑 전 사무차장보는 지리적으로 서유럽 회원국들로부터 떨어져 있는 탓에 에스토니아를 비롯한 다른 발트해 국가들은 전통적으로 NATO의 나머지 회원국들보다 더 취약한 상태였으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이후 스웨덴, 핀란드가 NATO에 가입하게 되면서 이 문제는 대부분 해결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제 발트해는 NATO의 내해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한편 영국 '왕립 국제 문제 연구소(채텀 하우스)'의 국제 안보 프로그램 선임 연구원인 마리온 메스머 박사는 러시아와의 전쟁이 일어난다면 고의로 계획된 것이기보다는 실수로 인해 촉발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봤다.
메스머 박사는 설령 우크라이나에서 평화 협정이 체결되더라도 러시아는 아마도 유럽에서 가짜 뉴스 퍼트리기 전략, 사이버 전쟁을 계속 전개할 것이며, 발트해에서는 각종 방해 공작과 스파이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우크라이나에 긍정적인 평화가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러시아가 불안정을 초래하는 활동을 멈추지 않고 이어 나갈 크다고 생각합니다."
메스머 박사는 "나는 발트해에서 완전히 의도치 않게 우발적인 사고가 일어날 위험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이는 본질적으로 러시아의 아슬아슬한 도발 활동 혹은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게 흘러가버린 러시아의 벼랑 끝 전술로 인한 결과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되면 NATO 회원국과 러시아가 대립하게 되고, 완전히 다른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랑 전 사무차장보는 푸틴 대통령이 발트해를 고의로 겨냥할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NATO의 단합 수준은?
만약 정말 고의로 발트해 국가들을 겨냥할 생각이라면, 먼저 푸틴 대통령은 NATO 동맹국들이 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고민할 것이다.
미국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이 NATO 동부 국경 끝자락에 자리한 에스토니아의 영토 일부분인 나르바를 위해 핵보유국인 러시아와 전쟁을 벌일 위험을 감수할까.
그리고 지난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의 돈바스에서 전투에 참여한 러시아 준군사조직들이 자신들은 러시아 군인이 아니라고 주장했던 일이 또 반복된다고 가정해보자.
푸틴 대통령은 또 그럴듯하게 부인할 수 있게 될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NATO가 과연 에스토니아를 돕고자 개입할까.
만약 개입하지 않는다면 푸틴에게는 그 유혹이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가 그토록 싫어하는 서방 군사동맹의 단결 원칙이 약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되면 더 넓은 발트 지역을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게 흔들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제한적일지라도 러시아의 침공 소식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해 이 지역에 대한 접근을 막을 가능성이 크다.
에스토니아에서 논의되고 있는 또 다른 우려 사항은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 오랫동안 유럽에 주둔시켰던 미군을 철수하거나 대폭 감축하는 시나리오다.

수도 탈린에서 만난 에스토니아의 한노 페브쿠르 국방장관은 용감한 표정을 지으며 "(미군) 주둔과 관련해서는 미국 행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알 수 없다"며 말을 꺼냈다.
"미국은 앞으로 태평양에 더 집중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으며, 유럽은 (유럽의 국방에 대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습니다. 우리도 이에 동의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고, 동맹국을 믿고, 미국을 믿어야 합니다 … 저는 에스토니아의 조그마한 영토가 공격당해도 이것이 NATO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되리라 확신합니다."
그러면서 페브쿠르 장관은 "그리고 이는 32개 모든 NATO 동맹국들에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면서 "우리는 함께인가,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푸틴 막아내기
발트해 국가들과 폴란드, 즉 NATO가 '동부 측면'이라고 부르는 이곳 지역에서 불안감, 최소한 미래를 예측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퍼지고 있다는 점은 이들 지역에서 논의되고 도입되고 있는 법안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일례로 최근 폴란드는 모든 성인 남성은 전투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발표했으며, 연말까지 새로운 군사 훈련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폴란드의 도날트 투스크 총리는 미국의 핵우산이 사라질 경우 유럽 동맹국들과 핵우산을 공유할 수 있다는 프랑스의 제안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발트해 연안 국가들은 공공 예산의 큰 부분을 국방비에 할당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유권자들을 힘들게 설득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에스토니아는 일정 규모 이상의 모든 신축 사무실과 아파트는 벙커나 방공호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는 새로운 법을 제정하고자 한다. 아울러 내년부터는 국방비 지출을 GDP의 5%로 증액하겠다고 밝혔다. 리투아니아는 5~6%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폴란드의 경우 방위비를 곧 GDP의 4.7%까지 높일 예정으로, 영국과 프랑스를 제치고 유럽에서 가장 큰 군대를 건설하고자 한다.(참고로 미국은 GDP의 약 3.7%를 할애하며, 영국은 현재는 2.3%이며 2027년까지 2.6%로 올리고자 한다)
한편 러시아와 인접한 국가들의 이러한 결정은 아직 이들이 내려놓지 못한 희망, 즉 트럼프 대통령이 계속 NATO에 남아 안보를 보장해주는 시나리오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이번 달 초 트럼프 대통령은 "만약 (NATO 국가들이) 비용을 내지 않는다면 방어하지 않을 것"이라며 기존 입장을 한 번 더 강조한 바 있다.
그렇다면 트럼프 행정부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회원국들의 연간 방위비 지출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NATO 주재 미국 대사로 임명한 매튜 휘태커는 "최소 5%의 국방비 지출 기준을 설정해 NATO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군사 동맹체가 될 수 있게 하겠다"고 주장했다.
에스토니아의 플랜B
이처럼 미국에서 혼재된 메시지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에스토니아는 신뢰할 만한 지원을 위해 점점 더 유럽 동맹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영국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에스토니아에는 900명이 주둔하고 있는데, 이는 영국에서 최대 규모의 상설 해외 파병이다. 그리고 영국 정부는 그 존재감을 더욱 강화하기로 약속했다.
에스토니아 북부 타파에 자리한 영국군 기지에서 우리는 장갑차로 가득 찬 거대한 격납고를 살펴볼 수 있었다.
에스토니아에서 6개월 순환 근무 중인 편대장 중 하나인 알렉스 험프리스 소령은 "격납고 반대편으로 쭉 걸어가다보면 주력 전차인 '챌린저'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장갑차는) 정말 중요합니다. 영국군에는 정말 좋은 기회입니다."

에스토니아가 자신들이 더 취약해졌다고 느끼기에 영국 주둔군 증강을 요청한 것 같냐는 질문에 험프리스 소령은 "나는 NATO가 전반적으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곳 동부는 우리의 집단 방어에 있어 정말 중요한 부분입니다. 발트해 연안과 동유럽의 모든 사람들이 러시아라는 위협이 매우 선명하고, 두드러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우리는 충분히 통합되어 있습니다. 에스토니아를 보호하고자 러시아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직접적인 공격을 받지 않는 한, 영국군 혹은 NATO 군이 군사 행동에 나설 구체적인 조건은 그 순간에 내려지는 정치적 결정에 달려 있다.
따라서 에스토니아는 그 어떤 것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러시아와의 국경 지역에 새로운 군 벙커를 건설하고, 드론 기술에 투자하는 등 각종 시험에 나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에스토니아의 군대는 단독으로 러시아의 공격을 저지할 만큼 강력하지는 않으나, 에스토니아는 자신의 운명은 아니길 바라며 침략당한 우크라이나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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