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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서홍 건축가]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면서도 세계적 수준의 공공건축물이 드문 우리나라의 현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뉴욕의 더 베슬, 파리의 퐁피두센터, 런던의 런던아이와 같은 랜드마크들이 각 도시의 정체성을 상징하고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반면 우리나라의 공공건축물은 대부분 범작이다. 서울의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는 이러한 흐름에서 벗어난 드문 성공 사례다. 2014년 개관 당시에는 논란의 중심에 섰지만 현재는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2025년 기준으로 누적 방문객 1억 명을 돌파하며 그 가치를 입증했다. DDP의 성공은 과감한 디자인과 국제적 명성을 지닌 건축가의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DDP와 같은 성공 사례는 극히 드물다. 매년 5000여 동의 새로운 공공건축물이 지어지지만 대부분은 특색 없는 디자인과 획일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는 우리나라의 공공건축 정책과 실행 과정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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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건축물 조성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건축기획이다. 이 단계에서 발주자의 비전과 요구사항을 명확히 정의하고 이를 상세한 공모지침으로 구체화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 단계를 소홀히 다루는 경향이 있다. 그 대신 심사 과정에서 발주자의 의도를 반영하려 하는데 이는 본말이 전도된 접근법이다. 선진국의 경우 기획 단계에서 모든 요구사항을 철저히 정리한다. 이후 작품성 평가는 순수하게 건축 전문가들의 몫으로 남긴다. 반면 우리나라는 다양한 배경의 심사위원을 섞어 형식적 공정성을 추구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진부한 설계안을 반복해 선정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러한 시스템하에서 응모자들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보다는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는 안전한 설계에 치중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신선한 시각을 가진 신진 건축가들보다는 관행에 익숙한 대형 설계사들이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 이는 우리나라 공공건축물의 창의성과 독창성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일상의 가치를 높이는 건축, 삶이 행복한 도시’라는 비전 아래 제3차 건축정책기본계획(2021~2025년)을 수립했다. 이 계획은 국민 생활공간 향상, 지속 가능한 탄소중립 도시 조성, 국가경쟁력 확보를 정책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특히 ‘공공건축 혁신으로 국민 일상 공간 환경 개선’을 첫 번째 추진전략으로 내세우고 있어 공공건축의 질적 향상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최근 국가건축정책위원회에서 개최한 ‘제2차 전국 지자체 총괄·공공건축가 콜로키움’에서는 공공건축 설계공모제도와 민간전문가 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이는 공공건축의 품격을 제고하고 공공 디자인을 향상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공공건축은 양적 성장에 비해 질적 성장이 뒤처져 있다. 연간 21조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됨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수준의 랜드마크 건축물은 극히 드물다. 이는 단순히 건축가들의 역량 부족 때문이 아니라 제도와 시스템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DDP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도 충분히 세계적인 수준의 공공건축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근본적인 제도 개선과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공공건축을 단순한 ‘건물’이 아닌 도시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건축’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우리의 공공건축이 진정한 의미의 공공재로서 기능하고 나아가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랜드마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 제3차 건축정책기본계획과 같은 정부의 노력이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건축계와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이 필요하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연간 21조원의 투자에 걸맞은 가치 있는 공공건축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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