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선행이 또 선행을 낳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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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선행이 또 선행을 낳고

연합뉴스 2025-03-20 15:20:2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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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최재석 선임기자 = 1990년 11월 한 할머니가 평생 힘들게 모은 재산을 충남대에 기증했다. 현금 1억원이 든 예금통장과 1만2천평 규모의 땅문서였다. 부동산은 당시 시가로 50억원 상당이었다. 39세에 남편과 사별한 뒤 김밥 장사 등으로 외아들을 키우며 어렵게 모아온 전 재산이었다. 그때만 해도 우리 사회는 기부에 익숙하지 않았다. 더욱이 부자나 기업인이 아닌 일반 시민이 거액을 사회로 환원하는 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기부문화 확산의 중요한 계기가 된 이 선행의 주인공은 당시 76세의 이복순 여사였다.

1990년 김밥 도시락 판매로 모은 50억원을 충남대에 기증하는 이복순 할머니 1990년 김밥 도시락 판매로 모은 50억원을 충남대에 기증하는 이복순 할머니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 여사는 대학 측에 기부 의사를 밝히면서 신분 노출을 원치 않아 익명의 전직 사업가로 자신을 소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뒤늦게 신원이 알려졌고 공식 석상에 나선 자리에서 "30여년 동안 땀과 눈물로 모은 재산은 제가 얼어붙은 손에 입김을 불어 녹여가며 모아온 제 영혼이 깃든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운동회나 행사가 열리는 곳을 찾아가 김밥과 음료수를 팔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김밥 할머니'라는 별칭으로 더 알려진 이 여사의 이야기는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렀고 2010년 초등학교 4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선행은 35년이 지난 지금도 또 다른 선행을 낳고 있다. 19일 충남대에 80대 할머니가 모진 인생이 담긴 40억원 상당의 재산을 기부하면서 '김밥 할머니'를 언급했다. 충남 청양 태생으로 갖은 고생 끝에 부산에서 숙박업으로 크게 일군 재산을 선뜻 기부한 윤근(88) 여사는 "35년 전 김밥 할머니가 충남대를 위해 전 재산을 기부하던 모습을 보고 마음에 품고 있었던 일을 이제야 이룰 수 있어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어려운 학생들도 마음껏 공부에만 집중해 세상을 이끌어가는 훌륭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40억원 상당 부동산을 기부한 윤근 여사 40억원 상당 부동산을 기부한 윤근 여사

[충남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윤 여사가 말한 대로 "초등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하고 평생 기구하게 살며 모아온 재산"이라 이날 기부가 더 값지게 느껴졌다. 그는 3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13세 때 아버지마저 돌아가셨지만 억척스럽게 세상을 살았다. 어린 나이에 결혼했지만 여전히 먹고 살기가 어려웠고 서울과 고향을 오가며 어떤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서른 중반에 '부산은 서울보다 일자리도 많고 따뜻해서 그나마 살기 나을 것'이라는 이웃의 말을 듣고 부산으로 내려갔고, 한 푼 두 푼 열심히 모은 돈으로 여관업을 시작해 재산을 불릴 수 있었다. 타향살이를 수십 년 했지만 늘 고향이 그리웠다고 한다. 각고 끝에 35년 전 '김밥 할머니'를 보며 품었던 소원을 이룰 수 있었다.

'김밥 할머니'는 "재물은 만인이 공유할 때 빛이 난다"고 했다고 한다. 충남대에 전 재산을 기탁한 지 2년 만에 작고했지만 그의 유지는 꾸준히 이어진다. 전국에서 제2, 제3의 '김밥 할머니'들이 나왔다. 2017년에는 생전 이복순 여사와 시장에서 인연을 맺었던 성옥심(당시 89세) 여사가 충남대에 부동산과 현금 등 5억원 상당을 기부했는데 그때도 "1990년 당시 통 큰 기부를 하는 복순 언니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언니처럼 좋은 일에 기부할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요즘은 '김밥 할머니'가 평생 어렵게 번 돈을 노년에 기부하는 미담의 주인공을 일컫는 대명사가 됐다. 아무리 세상이 각박하다지만 그들이 있어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들의 숭고한 뜻에 새삼 고개가 숙어진다.

bond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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