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정부가 의대생 복귀를 전제로 내년 의대 정원을 증원 전인 3058명으로 돌리겠다고 했지만 의대생들은 정부가 추진 중인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백지화'를 요구하며 복귀를 거부하고 있다.
이에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수업에 복귀하지 않는 의대생을 향해 이례적으로 비판 성명을 내자 전공의 회장이 이를 다시 반박하면서 의정갈등이 의료계 내 세대 갈등 양상으로 번지는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대부분의 의사단체는 여전히 정부에 대한 비판에 주력하고 있어 의정갈등 해결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정부, 이달 중 의대생 전원 복귀 조건 의대 증원 '0명' 제안
정부는 이달 중 의대생 전원 복귀를 전제로 내년도 의대 모집인원 '3058명' 동결 의사를 밝혔다. 그 후로 10여 일이 지났지만 의대생 복귀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는 일부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정부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패키지에는 필수의료 수가 인상, 의료사고 형사 부담 완화 등 그간 의료계가 요구해왔던 내용이 담겼다. 특히 정부는 필수의료 분야에서 의료사고로 환자가 사망하더라도 유족이 동의하면 '반의사 불벌' 특례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의대생들은 급여 진료와 비급여 진료를 함께 보는 '혼합진료' 금지에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비급여 항목 비용이 크게 오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비급여 진료가 개원의들의 주요 수입원이라는 점 때문에 반대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정부는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 철회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조규홍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차장(보건복지부 장관)은 14일 회의에서 "(필수의료 패키지에) 필수의료에 대한 보상 강화 등 의료현장에서도 공감하는 내용이 많이 포함돼 있으며, 각계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함께 만들어 나가고 있다"면서 "개선 과제들 중 상당수는 이행 중인 상황에서 필수의료 패키지 전면적 철회를 주장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만일 의대생들이 복귀하지 않을 경우 학칙에 따라 제적 처리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교육부 구연희 대변인은 17일 정례브리핑에서 "25학년도엔 학칙에 따라 처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의대생들이 돌아오기를 강력히 희망한다"고 말했다.
각 대학들도 올해는 미복귀 의대생에 대해 학칙에 따른 조치를 예고하고 있다.
김정은 서울대 의대 학장은 11일 교수들에게 서한을 보내 "의대생들이 오는 27일까지 복학원을 제출하지 않으면 학칙에 따라 비가역적인 미등록 제적 또는 유급 처리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편성범 고려대 의대 학장도 같은날 교수·학생·학부모에게 "올해는 더 이상 작년과 같은 과정을 반복할 수 없으며 모든 학년의 학사 일정, 수업 일수, 출석, 성적 사정 등에 대해 학칙에 따라 원칙대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공지했다.
연세대 의대 역시 등록 후 휴학 시 유급, 미등록 후 휴학 시 제적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건국대 의대생 "수업 복귀시 동료로 간주 않을 것" vs 의대교수들 "오만하기 그지 없어"
하지만 의대생들은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수업 참여 의사를 보이는 같은 의대생을 향해 집단 따돌림이나 괴롭힘 등을 가하고 있다.
건국대 의대 학생들은 최근 "복귀한 사람은 더는 동료로 간주하지 않기로 결의했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이러한 의대생들의 행태에 서울대병원 교수들은 이례적으로 "오만하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서울대 의대·서울대병원 소속 하은진·오주환·한세원·강희경 교수는 17일 '복귀하는 동료는 더 이상 동료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분들께'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내고 전공의·의대생들을 향해 "현재의 투쟁 방식과 목표는, 정의롭지도 않고, 사회를 설득할 수도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의료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로드맵도, 설득력 있는 대안도 없이 1년을 보냈고, 오직 탕핑(躺平)과 대안 없는 반대만이 있을 뿐"이라며 "진짜 피해자는 지난 1년 동안 외면 당하고 치료 받지 못한 환자들 아닌가, 그들의 가족들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어 "(의사 커뮤니티인) 메디스태프, 의료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 박단(전공의협회 비대위원장)의 페이스북 글들, 그 안에는 환자에 대한 책임도, 동료에 대한 존중도, 전문가로서의 품격도 찾아볼 수 없는 말들이 넘쳐난다"며 "내가 알던 제자, 후배들이 맞는가. '내가 아플 때 내 가족이 이들에게 치료받게 될까 봐 두렵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금은 겸손하면 좋으련만, 의사 면허 하나로 전문가 대접을 받으려는 모습도 오만하기 그지없다"며 "이런 투쟁 방식에 계속 동조할 것인지, 아니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것인지 이제는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여러분은 현장을 지키는 동료 의사, 교수들을 비난하며 그들의 헌신을 조롱한다. 대체 동료애는 어디에 있나"라며 "'의사만이 의료를 할 수 있다'는 오만한 태도로 간호사나 보건 의료직들을 폄하하는 말을 서슴지 않는데, 응급실에서의 응급 처치, 정맥 주사 등의 술기를 응급 구조사, 간호사들에게 배우지 않았나"라고 일침을 가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정부와는 달리 책무를 다하는 전문가의 모습으로 개혁을 이끌 것인가, 아니면 계속 방해하는 훼방꾼으로 낙인찍혀 (의사 면허라는) 독점권을 잃고 도태될 것인가 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단 "교수로 불릴 자격도 없어.. 전공의 착취 정당화"
이들 교수들의 성명이 나오자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즉각 "교수라 불릴 자격도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17일 페이스북에 "(술기를)간호사와 응급 구조사에게 배우지 않았다"면서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 책과 영상을 보며 혼자 공부했고, 동료 전공의에게 물어가며 눈치껏 익혔다"고 날을 세웠다.
이어 "그걸 가르쳐야 할 주체는 당신들"이라면서 "교육을 얼마나 등한시했던 건지. 교수의 역할을 알고는 있는 것인지. 교수의 본분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성 없이 당당하게 이야기하니 당혹스럽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수의 역할은 첫 번째는 교육, 두 번째는 연구, 마지막이 진료라고 교수들은 말한다"면서 "여기, 교육자로서 본분을 다하지 않은 교수 네 분의 자백이 있고 이런 사태가 벌어져야만 위선을 실토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지금의 교수들은 전공의 시절 거의 매일을 병원에 머무르며 환자를 돌보고, 배우며 익혔고, 성장했다'는 교수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대학 병원의 가장 큰 문제는 노동과 그에 따른 책임이 위계적으로 전가된다는 것"이라면서 "병원장은 교수에게, 교수는 전공의에게 노동을 전가하고 있고 전공의가 없는 지금 교수는 간호사에게 의사의 책무를 떠넘겨 환자의 위험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교수는 이를 바로 잡기는커녕 전공의 부재를 핑계로 신규 간호사를 착취하고 있다"며 "환자를 볼모로 착취를 정당화하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의협 등 의사단체, 여전히 정부 비판 주력
이처럼 의료계 내에서도 의대생의 복귀를 두고 이견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다른 의사 단체는 여전히 정부에 대한 비판에 집중하는 모습이어서 의정 갈등 해결은 어려워 보인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14일 정례 브리핑에서 "복귀 시점을 정해놓고 얘기하는 것은 당사자인 의대생에게 불편하게 들리고 협박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근 의협 대변인은 "정부는 총장의 건의를 받아 '모집인원'을 3058명으로 한다고 하면서도 정원은 5058명이라고 단정했고, 3058명으로 되돌리는 것 역시 조건부라고 했다"며 "정부의 말장난에 국민도 갈피를 못 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택우 의협 회장은 24·25학번인 7500명이 동시에 교육받아야 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요구해왔다"며 "정부가 올해도 의대생이 복귀하지 않아 내년에 학생이 트리플(3배)이 되는 상황은 상상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도 '의대 학장들께 드리는 글'에서 "교육부와 일부 의대 학장들은 의대생들의 일괄 휴학 수리 불가와 함께 제적 가능성을 거론한다"며 "압박과 회유로는 교육 정상화가 이뤄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학장, 총장들은 제적을 말하기 전에 휴학을 신청한 학생들과 직접 충분히 대화해봤느냐"라고 물으며 "교수들은 원칙과 상식 내에서 최대한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원로 석학단체 대한민국의학한림원도 이날 성명을 내고 "장기적으로 고쳐가야 할 의료시스템의 고질적 문제를 미래의료를 담당해야 할 의대생과 젊은 의사들의 극단적 희생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대한민국 의료는 뿌리째 흔들리고 사막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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