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와인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로버트 몬다비의 손자 카를로 몬다비는 자신의 형 단테 몬다비와 함께 소노마 코스트의 서늘한 밭에서 피노 누아를 키운다. 그 포도로 만든 와인 레이블 'RAEN'(Research in Agriculture and Enology Naturally)은 마셔 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야말로 '캘리포니아 톱클래스 피노 누아'. 미국 피노 누아의 개척자인 몬다비 가문에서 피노 누아 영재교육을 받으며 자란, 자칭 와인 '그로워' 카를로 몬다비와 함께 자연스러운 와인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로버트 몬다비의 손주이자 팀 몬다비의 두 아들인 단테 몬다비(좌)와 카를로 몬다비(우).
RAEN(Research in Agriculture and Enology Naturally)에 대해서 좀 설명해주세요.
저희 와이너리의 이름인 RAEN은 ‘레인’으로 읽어요. 중의적이 표현이죠. 비로 대표되는 자연을 상징하기도 하고, 약어를 풀면 그 뜻은 ‘자연적 농업 및 양조학 연구’라는 의미가 되지요.
레인의 대표 품종은 피노 누아입니다. 사실 레인의 설립부터 피노 누아 와이너리라는 사실을 천명한 것이나 다름 없지요. 땅이 먼저였나요, 아니면 품종이 먼저였나요?
피노 누아를 선택한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족적인 영향과 경험이 가장 컸어요. 아시다시피 저는 몬다비 가문의 4대손이고 미국 피노누아의 개척자인 로버트 몬다비의 손자에요. 저희 가족은 1962년부터 미국에서 피노 누아를 만들기 시작했죠. 아버지와 삼촌들은 프랑스의 부르고뉴에서 공부했고, 저 역시 앙리 지로 같은 유명한 와인 메이커들에게 양조를 배웠죠. 부르고뉴에서 양조를 배우고 미국에 와서 보니 서늘한 해안가인 소노마 코스트가 피노 누아를 키우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죠.
브랜드의 대표로만 있는 게 아니라 와인 메이킹도 직접 하고 있는 걸로 알아요.
일단 저희는 철학이 있어요. ‘RAEN’이라는 브랜드의 약어에서도 드러나듯 자연적인 농법과 자연적인 양조를 추구합니다. 특히 저희 아버지에게서 물려 받은 “좋은 와인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키워 내는 것”(Fine wine is grown, not made)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는 저희 자신을 칭할 때 ‘와인 메이커’라고 하지 않고 ‘와인 그로워’라 말하죠. 그러나 물론 맡은 영역이 나눠져 있기는 합니다. 크게는 포도밭을 관리하는 영역과 양조의 영역으로 나뉘는데, 형인 단테 몬다비는 주로 와인 메이킹의 영역을 책임지고 저는 와인 그로잉의 영역을 책임 지고 있어요.
기본적으로는 농부군요.
그렇죠. ‘와인 그로워’니까요. 제 생각에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한 3가지 조건은 어떤 곳에서 포도를 기르느냐, 그 포도를 어떻게 기르느냐, 마지막으로 전반적인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요.
철학 자체가 부르고뉴의 와인 장인들과 비슷하네요. 사실 라벨에서부터 부르고뉴 느낌이 확 나요. 특히 라인업도 보면, ‘레인 소노마 코스트’가 레지오날이고, ‘레인 포트 로스 시뷰’가 프리미에 크뤼고, ‘레인 프리스톤 옥시덴탈’이 그랑 크뤼로 대입되지요.
앞서도 잠깐 얘기했지만, 물론 브루고뉴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저 역시 프랑스에서 대학을 나왔고 부르고뉴에서 인턴십을 했고, ‘도맨 드 라 로마네 콩티’에서도 일했었죠. 로마네 콩티나 르루아 같은 곳에서도 홀클러스터 방식으로 양조를 하는데, 그것에서 영향을 받아 레인도 마찬가지 방식을 쓰지요. 지금 레인에서 쓰는 오크통 역시 로마네 콩티에서 쓰는 제조사의 것이고요. 도멘 뒤작에서도 영향을 받았고, 아주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도멘 드라 푸스 도르의 선대 와인 메이커인 제라르 포텔에게도 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죠. 그가 오베르 드 빌렌과 자크 세스 모두에게 영향을 미쳤으니까요.
잠깐 홀클러스터(줄기를 걸러내지 않고 송이 전체를 발효하는 방식) 얘기를 했는데, 피노 누아에서 가장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언제나 전송이 발효(홀클러스터의 우리말)를 하나요?
수확을 해봤더니 포도의 품질이 좋다면, 홀클러스터 방식을 고수합니다. 예를 들면 2023년 빈티지는 포도가 워낙 좋아서 100% 홀클러스터 방식을 사용했지요. 그러나 포도 송이에 곰팡이가 쓸었거나 동물들이 파먹은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디스템을 해서 블렌딩하는 방식을 사용하지요. 지금까지 중 비율이 가장 낮은 빈티지의 홀클러스터 비율이 80%에요.
오크 사용에서의 특징이라면요?
좋은 질문이에요. 우리는 우리의 밭에서 난 모든 와인을 그랑 크뤼 와인이라고 생각하고 다뤄요. 부르고뉴에서처럼 포도 밭에 차등을 둬서 어떤 밭에서 난 포도는 뉴오크를 안 쓰고, 어떤 밭에서 난 포도에는 50%만 뉴오크를 쓰고 그렇게 하지 않아요. 우리는 모든 포도에 공평하게 같은 방식으로 오크를 사용합니다. (오크로 인한 맛과 향의 변형이 없으니까) 서로 다른 밭에서 난 와인을 맛보면 그 땅의 테루아를 왜곡 없이 느낄 수 있죠. 좀 더 자세하게 얘기하자면, 예전에는 뉴오크 100%를 사용하는 게 훨씬 깨끗하고 위생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때는 브레타노마이세스 등의 효모의 작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정확하게 몰랐으니까요. 그때는 뉴오크를 더 높은 비율로 사용했지요.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 오크 배럴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아요. 어떻게 씻어야 하고,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니까 ‘뉴오크’를 적게 쓸 수 있게 되었지요.(알다시피 뉴오크를 사용하면 나무 유래의 바닐라나 초컬릿 등의 향이 진하게 피노 누아에 밴다.) 지금은 정말 정말 신중하게 중성 오크를 선별해거 주로 사용해요. 모든 와인에 뉴오크의 비중은 10~15% 정도 밖에 안되지요.
그랑 크뤼 격의 밭인 ‘레인 프리스톤 옥시덴탈’은 야생동물 방사 지역으로 알 소 있어요. 여우랑 오소리 같은 야생 동물들이 돌아다닌다고 들었는데, 그 사실이 와인의 캐릭터와 관련이 있나요?
그럼요. 굉장히 중요해요.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한 시작점은 아까도 말했듯이 포도밭이에요. 그리고 포도밭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 포도밭이 자연의 밸런스를 지키고 있는지의 여부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목표로하는 건 결국 농업의 성배와도 같은 ‘영속농업’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영속농업의 요체는 화학 약품을 쓰지 않고 생물다양성을 확대하는 것이지요. 숲이 끝나고 시작되는 곳부터가 우리의 포도밭이에요. 그러니 우리의 포도밭이 있는 곳은 야생동물들의 서식지일 수 밖에 없죠. 밭에 부엉이 집이나 새집 등을 가져다 두기도 하고 야생 살쾡이를 방사하기도 하죠. 얘네들이 흙쥐나 밭쥐 등을 견제해서 밸런스를 맞추죠. 모든 게 다 균형이에요.
피노 누아의 짝꿍인 샤르도네에 대해서도 얘기해주세요. ‘양조자를 위한 도화지’라 불릴만큼 양조의 선택지에 따라 크게 변화하는 샤르도네 품종을 어떤 식으로 다뤘나요?
레인 프리스톤 옥시덴탈 보데가 빈야드. 홀클러스를 사용해 아직 어린 빈티지에선 줄기에서 유래한 타닌의 맛이 살짝 나는데, 그게 무척 매력적이다.
일단 레인의 샤르도네는 올드 바인에서 수확했어요. 밭 자체가 한 45년 정도 됐지요. 원래는 피노누아에 치중하고 가족과 친구들끼리 마시기 위해서 샤르도네를 만들기 시작했다가, 지금은 판매도 하고 있습니다. 특징이라면 수확을 조금 당겨서 해요. 아직 산도가 남아 있을 때, 조금 일찍 따지요. 포도 송이 자체를 선별해서 홀클러스터 프레싱을 한 뒤 배럴에 넣어서 숙성을 시키고 그 과정에서 절대로 바토나주는 하지 않아요.
아…오크의 영향이 상당히 적고 느끼함이 없고, 산미가 좋은 샤도네이겠군요. 군침이 흐르네요.
맞아요. 이산화황도 병입 직전에 아주 소량만 넣지요. 딱 안정화가 될 정도로만요.
양조 과정은 물론 철학을 들어봐도 완벽한 내추럴 와인인데, 내추럴 와인으로 브랜딩 하지 않는 이유는 뭔가요?
사실 저희가 칭송하는 최고의 부르고뉴 와인들은 대부분 내추럴 와인이에요. 로마네 콩티도 르루아도 굳이 따지자면 내추럴한 방식으로 만들죠. 저한테는 그게 너무 당연한 것 같아요. 와인은 원래 그렇게 만드는 거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고 있는데, 그걸 가지고 굳이 ‘내추럴’이라는 레이블을 붙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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