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올해 신학기부터 전국 고등학교 1학년에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됐지만 준비 부족으로 인해 사교육 의존, 교사 업무 부담 가중 등의 우려가 나오면서 교육 현장에서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18일 교육계에 따르면 올해 고1부터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됐다. 고교학점제란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이수 기준에 도달한 과목에 대해 학점을 취득해 졸업하는 제도다.
학생들은 공통과목 외에 다양한 교과목을 선택한 뒤 이를 이수해 누적 학점이 192점 이상이면 졸업할 수 있게 된다. 다만 과목출석률(수업 횟수의 3분의 2 이상)과 학업성취율을 40% 이상 충족해야 한다.
고교학점제는 앞서 2012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였던 당시 핵심 교육으로 언급한 공약 중 하나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2018년 기본방향 및 도입 일정이 발표됐으며 이후 2022년까지 ‘개정 교육과정’을 확정해 2025년 신입생부터 도입하기로 했다.
이 같은 내용의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되자 학생과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참고할 만한 선례가 없는 것은 물론 이번 개편으로 향후 대학 입시에서 내신이 보다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고교 1학년이 대학에 진학하는 2028학년도부터는 고교학점제와 연계해 고교 내신 등급이 기존 9등급에서 5등급으로 축소된다. 이에 따라 학교생활기록부의 영향력이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더욱이 202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공통사회·통합과학 등 통합형으로 개편되면서 수능의 변별력이 약화되고 내신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교육계는 급격한 변화에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일선 학교 현장에서는 학생들의 선택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과목을 개설해야 함에 따라 교사들의 업무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11월 진행된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 국회 토론회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전희영 위원장은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을 앞두고 다(多) 과목 교사 수업시수 감축, 행정업무경감 대책, 교과 미이수 학생 지도, 유급 및 학생 여유시간 관리 대책, 교과 개설에 따른 구인·채용 문제 등 해결해야 할 산적한 과제들이 남아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교조 위혜진 중등위원장 겸 중등정책국장도 “아직 경험하지 못한 학기제 전면 도입과 미이수 제도 및 졸업 유예에 따른 부차적인 변수들에 대해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고 교사들은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평가에 민감한 고등학교 학부모와 학생들의 민원 및 소송, 교사에게 요구되는 무한 책임교육과 평가의 공정성과 투명성 논란이 고교학점제와 맞물려 학교 현장이 몸살을 앓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에 더해 도입 준비 미흡 등으로 인해 고교학점제 운영에 대한 학교 측 설명이 부족해 사교육 의존도가 더 높아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학사 과정이 전면 개편에 혼란스러운 학부모와 학생이 학원 등에 쏠리고 있다는 목소리다.
실제로 지난 13일 교육부와 통계청이 전국 초·중·고 약 3000개 학교 학생 약 7만4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4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은 29조2000억원이다. 이는 전년 대비 2조1000억원(7.7%) 늘은 수치다. 1년 사이 학생 수는 521만명에서 513만명으로 8만명(1.5%) 감소한 반면 사교육비 총액은 오히려 증가한 상황이다.
이 가운데 고교학점제 첫 적용 대상인 지난해 중학교 3학년생의 경우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44만9000원에서 49만4000원으로 10.1% 늘어났다. 중·고교 전체에서 살펴봐도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연간 수백만원의 비용이 드는 고교학점제 컨설팅 학원까지 등장하는 등 사교육 시장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
성균관대 교육학과 양정호 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대학과 달리 고등학교는 교사 수가 상대적으로 적어 학생들이 원하는 다양한 과목을 개설하는 것이 어렵다”며 “외국에서는 아카데믹 카운슬러(Academic Counselor) 등 전문 인력이 학생들의 과목 선택을 도와주지만 우리나라에는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전문 인력이 없는데, 이는 결국 학생들은 적절한 과목 선택을 위해 학원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는 사교육비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학교 간 협력을 통해 교사들이 순환 근무하며 다양한 과목을 개설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학생들이 적절한 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아카데믹 카운슬러’ 역할을 담당할 전문가를 배치하거나 관련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고교학점제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필요한 사항을 보완해 학생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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