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사회는 분열돼 있다. 내 편, 네 편으로 나뉘어 특정 집단의 성향이 극단화됐다. 자신과 생각이 맞지 않은 사람들을 향한 조롱과 혐오, 비난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익명이 보장된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정도가 심하다. 이에 여성경제신문이 온라인에 나타난 갈등 실태를 분석하고 분열로 인한 사회의 악영향을 파헤친다. [편집자 주] |
온라인 커뮤니티는 사람들이 의견을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는 중요한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저출산 시대에 2030 남녀 간의 갈등이 심화하고 있으며 상대방에 대한 불신이 굳어지고 있다.
17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여성 혐오 정서가 강하게 나타나며 이는 각박해진 연애, 결혼, 취업 시장에서의 불안감과 결합하는 양상이다. 반대로 여초 커뮤니티에서는 남성 혐오 정서가 강하게 나타나며 각종 범죄 사건을 비롯해 여성의 안전 문제에 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커뮤니티에서의 성별 혐오는 자국 이성을 혐오하는 특성을 보인다. 현실 연애 상대인 이성을 깎아내림으로써 얻어지는 우월감에 만족하는 식이다. 대표적으로 남초 커뮤니티 '에펨코리아'에 지난 8일 올라온 <에타)설거지론 일침> 글은 조회 수 22만8820회에 추천 890회, 댓글 250개가 달리는 등 주목을 받았다. 에타)설거지론>
설거지론은 연애 경험이 없거나 매우 적은 사람이 젊은 시절 문란한 성생활을 즐겼던 상대방과 결혼하는 행위를 타인이 식사를 마치고 남은 더러운 식기를 자발적으로 설거지하는 것에 비유하여 비합리적인 선택임을 주창하는 인터넷상의 담론이다. 이에 파생되어 설거지 당한 남성은 '퐁퐁남'이라고 부르며 주로 여성이 가해자, 남성이 피해자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해당 커뮤니티 글 작성자는 "설거지론이 남자 욕하는 건데 왜 여초에서 거품 무냐고?"라며 "링컨이 흑인 노예 해방하자고 하니까 농장 주인들이 거품 물었자나"라는 주장의 글을 캡처해 올렸다.
또한 에펨코리아에 지난달 17일 올라온 <싱크 제대로 당한 현대오토에버 퐁퐁남.blind> 글은 조회 28만287회에 추천 523회, 댓글 268개가 달렸다. 작성자는 현대오토에버에 다니는 남성이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1년째 백수 와이프 미치겠다"라고 하소연하는 글을 캡처해 올렸다. 이에 회원들의 댓글은 "이건 빼박 퐁퐁이네"라는 등 해당 남성을 조롱하거나 여성을 비난하는 반응이 많았다. 싱크>
남초 커뮤니티에선 외국 여성의 장점을 부각해서 한국 여성을 비교하는 글이 인기를 얻기도 한다. 특히 일본 여성을 '일녀', '스시녀'로 부르며 '한녀', '김치녀'와 대비되는 좋은 점을 강조한다. 일본 여성이 대체로 순종적이고 집안일을 잘하고 남편을 떠받들어 주는 게 몸에 배어있는데 한국 여성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 여성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 한국 여성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16일 '디시인사이드'에 올라온 <싱글벙글 20대 스시녀가 원하는 결혼생활> 글은 조회 32795회에 추천 209회, 댓글 302개를 기록해 실시간 베스트 갤러리에 등극했다. 이와 똑같은 내용의 글은 '일간베스트'에서도 댓글이 72개 달리며 화제를 모았다. 싱글벙글>
해당 글은 일본 방송국에서 자국 여성들을 상대로 '20대가 꿈꾸는 이상의 전업주부란?' 설문 조사한 결과 "일하고 싶지 않다", "집에서 뒹굴뒹굴" 응답이 나왔다는 내용이다. 이에 디시에선 "한류드라마가 스시녀들까지 오염시켰구나" 일베에선 "그니까 한국에 미친 스시녀들 가까이하지 마라. 잠재적 한녀다"라는 등 댓글이 달렸다.
여초 커뮤니티에서도 자국의 남성을 혐오하는 풍조는 널리 퍼져 있다. 지난 8일 여성의 날 때 여초 커뮤니티들은 여성의 날이 유독 한국에서 무시당한다고 설명했다. 이 중 X(구 트위터)의 한 사용자는 여성의 날에 남성들이 장미꽃을 사러 줄을 서서 기다리는 외국 사진에 '한국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한국이 아니네'라고 평했다. 한 사용자는 '머리 높이만 봐도 우리나라가 아님'이라고 했다. 한국 남성의 키와 외국 남성의 키를 비교한 것이다.
역시 여초 커뮤니티인 네이트판에서도 남성을 혐오하는 글과 이를 정당화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너넨 솔직히 남자 혐오함? 추반 ㄱㄱ'란 이름으로 올라온 게시글은 남성을 혐오할 경우 추천, 그렇지 않을 경우 반대를 누르라는 내용이었다. 해당 게시글의 추천은 1498, 반대는 183이었다.
해당 글의 댓글에도 '요즘 시대에 남혐 안 하는 게 이상한 거임', '길티 아카이브, 여시, 네이트 판 원래 전부 남미새였음. 나도 남미새였고... 근데 20년대 들어서 급격하게 남혐 생기기 시작했고 현재는 같이 엘리베이터만 타도 역겨운 지경에 도달해 버림' 등의 남성혐오가 정당하다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
여초 커뮤니티의 경우 외국 남성을 '양남'이라고 부르며 한국 남성과 비교해 높게 평가하는 풍조가 있었으나 최근에는 외국 남성 역시 비판하는 글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실제로 '여성시대'에는 '양남도 남성이다. 환상을 가지지 말라'라는 주제로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여러 외국 남성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캡처한 게시물도 있었다.
또 다른 여초 커뮤니티인 인스티즈의 경우 '이때싶 무지성으로 남혐하는 애들 많네'라며 무조건적인 남성혐오를 경계하는 게시글도 있었으나 직접적인 혐오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 뿐 여성 우월적인 면은 똑같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커뮤니티는 여성 혹은 남성으로서 받는 차별에 대해서도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남초 커뮤니티는 정치적으로 2017년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 여성 우대 정책이 확산하자 대다수 남성이 거부감을 표출하는 장이 됐다. 2022년 윤석열 정부가 시작됐지만 공약이었던 여성가족부 폐지나 성범죄 무고죄 강화가 이뤄지지 않아 이들의 여성 혐오론은 여전한 상황이다.
지난해 6월 발생한 '화성동탄경찰서 성범죄 누명 사건'은 20대 초반 남성이 50대 여성의 허위 신고로 성범죄 누명을 썼던 사건이다. 피해 남성이 평소 이용했던 디시인사이드 판타지 갤러리에 억울하게 성범죄자로 몰렸다고 호소문을 게시하면서 공론화됐다. 많은 남성 누리꾼이 가해 여성과 가해 여성 진술에만 의존한 경찰을 향해 분노를 쏟아냈고 결국 경찰이 사과했다.
반면 여초 커뮤니티는 실제 성범죄 피해자들이 억울하게 무고죄로 몰리는 경우가 있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으로 지난 2020년 성범죄 피해자가 가해자의 조작된 증거에 의해 무고죄를 받고 6개월간 실형을 산 사례가 X에 올라왔다. 해당 사건은 여성이 실형을 살고 나온 후에야 진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남성은 벌금형에 그치고 여성의 재심 청구도 기각됐다. 해당 글을 올린 사용자는 이것이 "한국 남자들이 무지성으로 주장하는 무고죄 꽃뱀 신화의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X에서는 안전을 비롯한 여성의 기본적인 권리가 침해당하고 있으며 한국 사회가 남성한테 관대하다는 주장이 많이 나온다. 최근 있었던 김수현-김새론 사건의 경우 X에서 "김수현이 남자라는 이유로 중립 기어 박는 사람이 많다", "어린 여자는 꽃뱀 취급하고 다 큰 성인 남성은 우쭈쭈해준다"라는 글들이 올라오는 등 한국 사회 전체가 남자에게 관대하다는 문제 의식이 있다.
문화일보에서 '2030 디지털세대 주요 분노 사건'을 동등하게 그린표를 보고도 비판의 반응이 나왔다. 해당 사진을 보면 남성 분노 사건에는 곰탕집 성추행 사건, 넥슨 집게손가락 논란, 비동의 강간죄 입법 논란, 화성동탄경찰서 성범죄 누명 사건 등이 있다.
여성 분노 사건에는 강남역 살인사건, 미투운동, N번방 사태, 동덕여대 공학 전환 논란 등이 있었다. X는 해당 사진을 보고 단체로 분노한 사건의 수준만 봐도 "남성들이 얼마나 꿀 빠는지 알 수 있다. 여자 괴롭히려고 태어난 표독스러움 그 자체들"이라며 비난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여성 안전에 대한 시각과 이로 인한 다툼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다음은 네이버의 한 기사의 댓글을 캡처한 사진이다.
이런 혐오 성향을 두고 현실에서 갖게 된 불만을 온라인에서 푸는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김소연 대전시 전 광역의원은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일상생활에서 해소하지 못한 열등의식이나 피해 의식을 온라인상에서 1차원적인 성별 편 가르기로 분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디어와 정치권도 남녀 갈등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일부 언론은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해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고 성별 대립을 조장하는 기사를 내보내는데 뒤늦게 '주작글'로 판명돼 오보를 내는 일이 있다. 정치권에서는 젠더 문제를 이용해 지지층을 결집하는 전략을 사용해 비판의 대상이 된다.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는 '사이버상 혐오표현의 법적 쟁점과 규제 방안' 발제문에서 "혐오표현의 규제에는 형사범죄화, 민사구제, 차별시정, 형성적 조치 등 다양한 조치들이 있고 이것들을 단계별, 층위별, 분야별로 적절히 배치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는 기본적으로 사이버 혐오표현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며 "혐오표현 중 ‘증오선동’에 해당하는 것을 일차적인 법규제 대상으로 삼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젠더갈등 심화는 통계적으로도 나타났다. 한국 사회의 젊은 남성과 여성은 이념·정치적 성향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서로에 대한 호감도도 평균 이하로 낮았다.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과 조선일보가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5~26일 실시한 정치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이념 성향 지수는 5.42점으로 20대 여성(4.64)과 0.78점 차이가 났다. 10점에 가까워질수록 보수 성향이 더욱 강하다는 의미다.
20대 남성의 20·30대 여성에 대한 호감도는 37.4점으로 전 연령대 평균(50점)에 크게 못 미쳤다. 20대 여성의 20·30대 남성에 대한 호감도 역시 38.6점으로 전 연령대 평균(49점)보다 10.4점 낮았다.
여성경제신문 이상무 기자 sewoen@seoulmedia.co.kr
김민 기자 kbgi001@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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