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어즈앤스포츠=김도하 기자] 환갑이 넘는 나이와 골절 부상까지 이겨내며 한계를 뛰어넘는 투혼을 발휘한 '61세 노장' 세미 사이그너(튀르키예·웰컴저축은행)가 프로당구(PBA) 최고령 챔피언에 등극하며 우승상금 2억원을 획득했다.
17일 오후 9시에 제주시 한라체육관에서 열린 'SK렌터카 제주특별자치도 PBA-LPBA 월드챔피언십 2025' 결승전에서 사이그너는 같은 나라 후배 선수인 륏피 체네트(하이원리조트)를 세트스코어 4-1로 꺾고 월드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했다.
사이그너가 637일 만에 달성한 개인통산 두 번째 우승이자 월드챔피언십 첫 우승으로, 역대 프로당구 월드챔피언십을 제패한 네 번째 선수로 기록됐다.
또한, 본인이 갖고 있던 프로당구 역대 최고령 우승 기록도 종전 58세 9개월 9일에서 60세 6개월 7일로 늘렸다.
지난 23-24시즌에 PBA로 진출한 사이그너는 데뷔 두 시즌 만에 월드챔피언십 정상에 오르며 여전히 세계 최정상의 실력자임을 입증했다.
사이그너는 첫 출전한 시즌 개막전 '경주 블루원리조트 PB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최고령 PBA 투어 챔피언에 등극했다.
이후 17차례 정규투어와 월드챔피언십에 나와 두 번째 우승타이틀에 도전했지만, 기대에 못 미쳤고 최고 성적은 4강(2회)에 그쳤다.
사이그너는 지난해 열린 월드챔피언십에서 오랜만에 4강에 올라와 두 번째 결승행을 노렸는데, 준우승자인 다비드 사파타(스페인·우리금융캐피탈)에게 0-4로 져 탈락했다.
이번 시즌 4차 투어 '크라운해태 챔피언십' 준결승에서도 강동궁(SK렌터카)에게 0-4로 패하며 결승 진출에 한 번 더 실패했던 사이그너는 이후 16강과 32강에서 다비드 마르티네스(스페인·크라운해태)와 하비에르 팔라손(스페인·휴온스) 등 후배 선수들에게 패하며 세월의 한계에 부딪혔다.
그러나 이번 월드챔피언십에서 사이그너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10대부터 40대까지 한국과 유럽의 젊은 선수들을 압도하는 체력과 감각으로 조별리그부터 결승까지 7전 전승을 거두며 마침내 한계를 뛰어넘는 투혼을 발휘, 우승상금 2억원의 주인공이 됐다.
이번 월드챔피언십 우승으로 2억원을 거머쥔 사이그너는 데뷔 두 시즌 만에 누적상금 3억5천100만원을 기록하며 상금랭킹 6위로 올라섰다.
사이그너, 역대 월챔 최고 Avg. 2.259로 '90분 만에 승리'
결승에서 성사된 사상 최초 튀르키예 선수간의 대결에서 사이그너는 역대 월드챔피언십 결승전 중 최고 애버리지 2.259로 체네트를 꺾고 90분 만에 승리를 거뒀다.
월드챔피언십 결승전은 지난 시즌까지 9전 5선승제로 치러지다가 경기 시간이 길어져 선수들의 피로도가 높아지면서 이번 대회부터 7전 4선승제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경기시간이 크게 줄어 종전 3시간 30분 가까이 치러졌던 역대 월드챔피언십 결승전보다 2시간이나 일찍 끝났다.
결승전 애버리지도 역대 월드챔피언십 결승전 중 최고인 2.259를 기록해 지난 21-22시즌 월드챔피언십에서 프레데리크 쿠드롱(벨기에)이 기록한 2.080보다 높았다. 타율 역시 70.9%로 쿠드롱의 67.4%보다 좋았다.
사이그너는 1세트에 6이닝 동안 1득점에 그치며 1:15(7이닝)로 패해 출발이 불안했다. 그러나 2세트 3이닝에 하이런 10점타로 포문을 열고서 일방적인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2세트를 4이닝 만에 15:2로 승리하며 반격에 나선 사이그너는 3세트도 1이닝 3득점 후 2이닝에 9점을 몰아쳐 5이닝 만에 15:5로 끝냈다.
세트스코어 2-1로 역전한 사이그너는 4세트에서는 체네트가 5:8로 앞서가던 5이닝에 6점타로 역전한 다음 6이닝에 끝내기 4점타로 마무리하며 15:8로 승리했다.
우승트로피가 눈앞에 다가온 사이그너는 5세트 마지막 공격에서도 장타 한 방으로 화려하게 우승을 장식했다.
7:7 동점으로 팽팽하던 6이닝에 사이그너는 끝내기 8점타로 15:7의 승리를 거두고 첫 월드챔피언십 우승 타이틀과 함께 본인이 획득한 역대 최고 상금인 2억원을 손에 넣었다.
"역사의 한 장면 될 수 있어서 기뻐…그동안의 고충과 좌절, 역경 이겨내 좋은 결과"
사이그너는 우승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PBA 온 이유가 미래 세대에 나의 레거시(유산)를 남기기 위해서였는데, 어린 선수들이 보고 배울 수 있도록 당구를 어필하는 역사의 한 장면이 될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올해 초에 발가락 골절로 1달 동안 목발을 짚고 생활했다. 그 기간이 딱 팀리그 5라운드와 포스트시즌이었는데, 팀을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했다"며 "그동안 많은 고충이 있었다. 외국 선수가 한국에서 당구선수 생활을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아내와 떨어져 지내는 게 가장 힘들다"라고 속마음을 전했다.
그러면서 "힘들고 지루하다는 생각을 바꾸기 위해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내가 자만하지 않고 이 생활을 즐기기로 마음을 가다듬었다"며 "그 과정에서 발가락을 다쳐 좌절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어려운 역경을 극복하면서 멘탈도 더 성장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사이그너는 94년에 처음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며 세계 톱랭커로 발돋움했고, 2000년대 초반에는 세계선수권을 비롯한 각종 대회 정상에 올라서며 전성기를 누렸다.
이후 2007년에 튀르키예당구연맹 집행부와 충돌하면서 선수 생활 중단했다가 7년 만에 복귀해 다시 예선전을 뛰며 제2의 당구 인생을 시작했다.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도전을 멈추지 않은 사이그너는 몇 년 뒤에는 결승까지 올라오며 세계 정상권 선수로 재도약했고, PBA 투어에 진출하기 전에는 3쿠션 당구월드컵과 팀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준우승 체네트, 두 번째 결승도 아쉬운 준우승…상금 7천만원 획득
지난 2023년 초 PBA 진출을 선언한 사이그너는 같은 나라 선수인 체네트와 무라트 나지 초클루(하나카드), 그리고 다니엘 산체스(스페인·에스와이) 등과 함께 23-24시즌에 전격 데뷔했다.
사이그너와 함께 이번 월드챔피언십에서 PBA 사상 최초로 튀르키예 선수간의 결승전을 치른 체네트는 데뷔 시즌에 3차 투어 '하나카드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이후 598일 만에 결승에 올라와 첫 우승에 도전했지만, 사이그너에게 패하며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체네트는 준우승상금 7천만원을 획득해 누적 1억5천100만원의 상금을 기록했다. 이번 대회 4강에 오른 강동궁과 응우옌꾸옥응우옌(베트남·하나카드)은 각각 1천500만원의 상금을 받았다.
베스트게임(BG)을 기록한 선수에 주어지는 '웰컴저축은행 톱랭킹상'은 조별리그에서 애버리지 2.762를 기록한 응오딘나이(베트남·SK렌터카)가 수상해 보너스 상금 800만원을 획득했다.
월드챔피언십까지 총 9차례 투어를 모두 마친 PBA 24-25시즌은 마르티네스가 3억2천950만원으로 시즌 상금랭킹 1위를 차지했고, 2위는 3억150만원을 받은 강동궁, 3위 사이그너(2억1750만원), 4위 김영원(1억5천750만원), 5위 산체스(1억1천450만원) 등이 올랐다.
한편, PBA는 오는 19일 오후 4시 30분에 서울 그랜드워커힐 비스타홀에서 프로당구 시상식 'PBA 골든큐 어워즈 2025'를 끝으로 24-25시즌의 대단원을 마무리한다.
(사진=제주/이용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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