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심해에서 한 마리 거대한 수수께끼가 유영한다. 거대한 몸뚱이, 툭 튀어나온 눈, 그리고 어딘가 어리숙해 보이는 몸짓. 사람들은 그를 '바다의 멍청이', 혹은 '유리 멘털'이라 부르며 웃음거리로 삼는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얕은 인간의 시선으로 판단할 수 없는 물고기 개복치에 대해 알아봤다.
개복치는 바다에서 가장 독특하고 거대한 물고기 중 하나다. 그 크기와 생김새만으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복어목 개복치과에 속하는 이 생선은 경골어류 중 가장 큰 종으로 알려져 있다. 평균 몸길이는 1.8m, 무게는 247~1000kg이다. 기록에 따르면 길이 3.3m, 무게 2.2톤이 넘는 개체도 발견됐다. 2022년 포르투갈 아조레스 군도에선 길이 3.25m, 무게 2744kg짜리 대왕개복치가 떠밀려와 화제가 됐는데, 이는 대형 SUV보다도 무거운 수준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대형 SUV로는 기아 모하비, 현대자동차 팰리세이드 등이 있다. 이들 차량의 무게는 대략 2000~2300kg이다. 대왕개복치는 이들 SUV보다 444~744kg 더 무겁다. 이는 차량에 성인 5~10명이 더 타고 있는 것과 비슷한 무게 차이다.
한 급 아래 SUV와 비교하면 압도적인 크기를 실감할 수 있다. 대왕개복치는 기아 쏘렌토보다 864~989kg 더 무겁습니다. 쏘렌토 차량 한 대에 소형차 한 대를 더 얹어 놓은 것과 비슷한 무게다.
개복치 몸은 납작하고 타원형이다. 꼬리지느러미 대신 배 방향타 같은 기관이 달려 있다. 등지느러미와 배지느러미로 헤엄치는 모습이 특이하다. 머리는 불쑥 튀어나와 ‘혹개복치’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입과 눈, 아가미는 작고, 피부는 두껍고 거칠며 비늘 대신 점액으로 덮여 있다.
개복치는 온대와 열대 해역의 대양에 널리 분포한다. 한국에선 동해, 서해, 남해 전 해안에서 나타나며, 일본 홋카이도 이남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세계적으로는 북대서양, 인도양, 태평양 등 따뜻한 바다에서 주로 산다. 주로 원양과 심해에 서식하며, 해파리 같은 무척추동물이나 작은 물고기를 먹는다. 잡식성이지만 영양가가 낮은 먹이를 주로 먹기 때문에 많은 양을 섭취해야 한다. 한국에선 동해안과 남해안에서 어획되는 경우가 많고, 특히 포항이나 주문진 같은 항구에서 가끔 모습을 드러낸다. 다만 수족관에서 기르기 힘들 정도로 예민하고, 수질과 빛에 민감해 쉽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 때문에 개복치가 수족관에서 금방 죽는다는 오해가 퍼졌지만, 사실 자연환경에서 개복치 생존율이 낮은 편은 아니다.
개복치에 대한 크나큰 오해 중 하나가 ‘별별 이유로 죽는 물고기’라는 인식이다. 모바일 게임 ‘살아남아라! 개복치’에서 비닐봉지를 먹거나 오징어를 과식해 죽는다는 황당한 설정 때문에 약한 생선으로 여겨졌다. 사실과 다르다. 개복치는 천적이 거의 없고, 다 자라면 범고래나 백상아리 같은 대형 포식자 외엔 위협받지 않는다. 수족관에서 빨리 죽는 건 덩치에 비해 스트레스에 취약하기 때문이지 자연 상태에서 약하다는 뜻은 아니다.
요리법은 지역마다 다채롭다. 한국에선 포항 같은 동해안 지역에서 개복치를 별미로 즐긴다. 껍질은 수육으로, 뱃살은 회무침으로, 머리뼈와 머릿살은 찜으로 먹는다. 근육은 갈아서 부산 어묵 재료로 쓰이기도 한다. 손질은 쉽지 않다. 두꺼운 외피를 전기톱으로 자르고, 살을 뜨는 과정에서 수분이 많이 나와 구울 땐 중간에 물을 버려야 한다. 튀김으로 먹을 땐 살의 수분 덕에 반죽 없이도 조리가 가능하다. 포항 죽도시장에선 해체된 개복치를 진열해 판매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작업 중엔 구경꾼이 몰릴 정도로 인기다. 주문진 어시장에서도 가끔 해체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경주 장례식장에선 개복치 수육을 맛볼 기회가 있기도 하다. 복어목이지만 독이 없어 안전하게 먹을 수 있다.
해외에선 식용 문화가 더 발달했다. 일본에선 회, 튀김, 찜으로 먹고, 지느러미는 말려서 청주에 담가 술안주로 즐긴다. 대만에선 콜라겐이 많아 여성들이 선호하며, 살을 데쳐 무침이나 튀김으로 먹는다. 중국에선 흰색 창자를 ‘용창’이라고 부르며 별미로 친다. 껍질은 삶아 우뭇가사리처럼 만들어 먹거나 약재로 쓰기도 한다.
다만 유럽연합에선 식용 판매가 금지돼 있다. 현지 항구에선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잡자마자 손질하는데, 먹을 부분만 남기고 나머진 버린다.
유튜브 채널 ‘요미야미’에 따르면 살은 콜라겐 덩어리로 탱글탱글한데, 삶아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머리로는 국물을 낸다. 창자는 두루치기로, 지느러미는 오돌뼈 같은 식감으로 즐긴다.
맛은 어떨까. 개복치 살은 기름기가 많고 뽀얘 참치 흰살과 비슷하지만 맛은 참치보다 덜 진하다. 회로 먹으면 비린내가 거의 없지만, 기름기 탓에 많이 먹으면 소화가 안 돼 설사를 유발할 수 있다. 삶으면 닭가슴살처럼 부드럽고 찢어지는 식감이 난다. 포항 사람들은 껍질 아래 지방층을 수육이나 묵으로 먹는다. 내장 중에선 간과 창자가 별미로 알려졌다. 간은 기름지고 독특한 향이 나며, 창자는 소 양대창 같은 식감으로 감칠맛이 돈다. 초고추장에 버무려 먹으면 비린내를 잡아줘 더 맛있다.
한국에서 개복치를 먹으려면 동해안으로 가야 한다. 포항 죽도시장은 개복치를 해체하고 판매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주문진 어시장도 가끔 개복치를 취급한다. 공급이 적어 고래고기보다 보기 힘들지만 행사나 장터에서 접할 기회가 있다. 경주 일부 장례식장에서도 수육으로 제공된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선 전문점 찾기가 어렵고, 주로 지방 항구나 시장에서 신선하게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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