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구씨 작가] 전시를 보러 가는 길, 지하철 역 입구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사람이 걸어간다. 주말도 아닌 주중의 오후다. 햇살이 좋은 거리에는 회사 목걸이를 목에 걸고 커피 한 잔을 손에 든 사람들이 삼삼오오 지나다닌다. 코트, 신발, 빛나는 머릿결, 향수 냄새. 건물 앞에는 셔츠차림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담배를 피우고 있다. 멍하니 바라보는 하늘, 사람 사이의 빈 공간, 연기가 피어올라오는 재떨이. 그들과 다른 심상치 않은 사람을 바라본다.
지하철에서 올라온 이는 빽빽이 늘어선 서울에 큰 건물들 사이, 아무도 모르는 골목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처럼 빠른 걸음으로, 작은 길로 멀어진다. 학생은 아닐 것 같은 누군가가 자기 몸만 한 백팩을 메고 어디론가 향한다. 아마도 저 토끼를 따라가면 지도를 보지 않더라도 전시장에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잠시 한눈을 팔며 동료의 약속을 합치거나 잠시 커피를 마신다. 다른 볼일이 있어 잠시 새어 버리더라도 우리는 결국 같은 곳에서, 그날 만난다. 그 사람의 백팩에 달려있던 파는 건지 만든 건지 모르겠는 키링, 가방 사이드에 안착한 텀블러 그것도 아니라면 플리마켓이나 빈티지 가게에서 샀을 것만 같은 멋진 모자나 부츠가 예쁜 스티커처럼 눈에 남아 있었나 보다. 그렇게 안면도 없는 누군가를 알아보곤 한다.
그 누군가는 프로그램 진행자였다가 참여자였다가 기획자나 작가가 되기도 한다. 그날이 아닌 다른 시간 속 전시와 공간, 워크숍에서 그 사람의 이목구비를 알아간다. 인사 한번 없이 정보가 쌓여간다. 여름과 겨울 그리고 두어 해를 그렇게 이름 없이 지낸다. 어쩌면, 그 사람은 내 이름을 알고 있을까? 어쩌다가 내 인스타그램 계정을 들어와 본 적이 있을까? 가볍게 스치는 생각들은 손에 잡힌 핸드폰만 놓아버리더라도 금방이고 그런 생각들은 휘발되어 버린다.
휘발되는 생각과는 다르게 또다시 생겨나는 물리적인 만남은 휘발된 줄 알았던 생각을 더 진한 세기로 불러온다. 우연이 계속되면 인연이라는데, 나는 이름 없이 반복되는 만남 속에서 반가움을 지우고 인연을 기다린다.
서울이라는 환경과 예술을 한다는 조건은 적어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들과는 계속해서 계속해서 마주하는 순간을 자아낸다. 그 마주침이 인연이 되거나 되지 않는 것은 어디에서 결정이 나는 것일까. 그 인연으로 발전될 가능성을 상상하며, 가끔은 모든 용기를 짜내어 말을 건다. 다가가는 다섯 발자국에서 생각한다. 슬쩍 건네는 눈인사도 간단하게 웃으며 고개를 까딱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잠깐 떠올린다. 다가가는 것, 말을 거는 것, 내 소개를 하는 것, 내 작업을 보여주는 것 그것들을 태어나면서부터 잘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길에서 우연한 만남은 천장이 있는 공간에서의 두 번째 만남이 되고 그 두 번째 만남은 ‘@’ 이를 앞세운 태그가 되고 그 태그는 친구의 지인이 된다. 그렇게 이어진 우리는 서로 모르고 또 안다. 우리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을 나뭇가지로 휘휘 저어 둥글게 말아 정신없이 뭉쳐버리고 싶다. 그저 좁은 예술계인지 우리가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냥 자주 만나니 언젠가는 커피나 한번 하고 싶다는 말을 아주 길게 길게 늘어놓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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