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분을 더 걸어 도착한 헌재 정문 앞.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의 막바지였던 2017년 3월 초를 빼닮은 풍경이 펼쳐졌다. 도로 양옆을 가득 메운 20여 대의 경찰 버스와 수많은 경찰, 탄핵 반대를 외치는 함성과 태극기 물결. “박 대통령 탄핵은 기각돼야 한다”며 가두 단식 투쟁 중이던 권영해 전 국방장관의 지친 모습이 뇌리를 스쳐갔다. 국회측 소추위원들이 자주 들른 덕에 반짝 특수를 누렸다는 유명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묵묵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타임 머신을 타고 8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언론계를 떠나있던 시절, 헌재 바로 옆 일터를 매일 오가며 질리도록 지켜본 장면들을 올해도 또 목격하고 확인한 것이다. 일반인은 물론 언론사 밥을 먹는 사람들 중에서도 겪어본 이가 흔치 않을 ‘같은 장소, 8년 시차’의 풍경 두 편이다.
헌재 앞의 과거와 현재가 달라진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헌재를 불신한다는 20~30대가 어느 세대보다 많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듯 탄핵 반대를 외치는 젊은 목소리가 과거에 비해 확실히 커져 있었다. “문형배 나오라”며 계속 소리를 질러댄 한 젊은이는 허공을 향해 연신 주먹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충돌을 우려한 경찰의 격리 덕에 탄핵 지지자들의 모습은 정문에서 보이지 않았다. 이들 역시 헌재 근처 어딘가에서 힘껏 목소리를 높이고 있을 게 분명했지만... 또 하나 차이는 헌법재판관들에 대한 비난, 비판과 공격이었다. 2017년 3월의 집회에선 재판관을 거칠게 공격하거나 야유를 퍼붓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올해는 상당수 재판관들에 대한 극도의 불신과 분노, 적개심이 헌재 앞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탄핵 심판 과정에서 줄곧 절차적 공정성과 중립성을 외면하며 친민주당의 정치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게 주된 이유다. 홍장원 전 국정원 차장의 수상한 메모와 곽종근 특전사령관에 대한 회유 의혹을 제대로 따지지 않는 등 졸속으로 심판을 끝낸 것 또한 비판 세력의 불만, 분노를 키운 불씨가 되고 있다. 헌재가 자초한 대가이며 무너진 신뢰가 부른 국가 기관의 권위 추락이다.
내전 상태에 빠진 정치권은 물론 두쪽 난 민심이 헌재 결정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일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8년 전과는 비교도 안 될 대혼란과 진통이 닥칠 수 있다. 대런 애스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은 공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한 사회의 위기는 결정적 전환점을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위기가 발생해도 제도적 변화가 단기적으로 충격을 수습하는 데 그치거나 이전보다 포용적 제도로 전환하지 못하면 다시 위기를 초래하거나 국가가 쇠약해지는 경로를 걷게 된다고도 했다. 2025년 3월의 한국은 어느 쪽으로 방향을 틀까. 근심과 화병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아진 사람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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